하루도 인생 전체도 결국 하나의 태피스트리
씨줄:
1 피륙이나 그물을 짤 때, 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
2 적도에 평행하게 지구의 표면을 남북으로 자른 가상의 선. 위도를 나타낸 선이다.
날줄:
1. 피륙이나 그물을 짤 때, 세로 방향으로 놓인 실.
2. 지구를 남극과 북극을 지나는 평면으로 잘랐을 때, 그 평면과 지구 표면이 만나는 가상적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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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1차 항암제로 사용하던 젬시타빈+아브락산 치료제가 더 이상 효과가 없어서 항암제를 바꾸기로 한 지 18일 만이다.
흔히 젬아 요법이라고 하는 1차 치료제는 매주 1회씩 3주에 걸쳐 항암 주사를 투여하고, 1주를 휴식해서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맨 처음 수술을 하시고 예방적 성격으로 항암을 할 때는 젬시타빈을 단독으로 맞았었는데, 그때도 진행 일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차 항암제로 결정된 폴피리녹스 요법은 2박 3일에 걸쳐 항암제를 투여하게 되어 당일 치료가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했다.
외래에서 2차 항암제로 바꿔 치료하게 된다는 안내를 받을 때도 중간에 휴일이 끼어 있어서 이미 예정된 치료 일정에서 2주가 지난 뒤였다. 주사제도 치료 일정도 달라진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스러웠고, 4차까지 치료하는 동안 암 수치가 다시 재발 당시 수준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데 실망이 컸다. 그래도 (부작용이 크지만) 효과가 좋다는 2차 치료제가 있다는 설명에 바로 치료를 시작하면 좀 나아지겠거니 희망을 갖기로 했다.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니 입원 예약을 하고 귀가하라고 안내를 받을 때만 해도 이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초조해져서 입원 안내 연락처로 전화를 하니 1-2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하... 하루이틀도 아니고 1-2주라니,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어쩌겠는가,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게 2주일이 지나고도 연락이 없었다. 애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연락을 했다. 하지만 입원 안내에서는 여전히 같은 응답이었다.
‘1-2주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지난번에도 1-2주라고 하셔서 기다렸는데 2주가 지났거든요. 아직도 알 수 없나요?’
‘저희도 매일 당일 기준으로 입원하실 분들 연락 안내 오더를 받아요. 1-2주라고 했지만 더 길어질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는데,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니 준비하고 계시면 연락드릴게요.’
안내하는 분의 목소리도 지친 티가 역력했다. 이렇게 저렇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저 기다리라는 말뿐.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러다가 엄마가 치료 의지라도 꺾이면 어쩌나 속이 탔다.
토요일 늦은 오후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연락이 왔다. 일요일 오후 7시 30분까지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하게 되었다. 직장으로 내려가려던 버스표 시간을 바꾸고, 2박 3일 병원에 계실 동안 필요한 짐을 캐리어에 담았다. 드디어 가는구나. 다행히 병실도 간호간병통합병동이라 하니 보호자 상주가 불가능해서, 지방에 직장을 둔 나로서는 의료진이 돌봐줄 수 있는 상황에 안심하고 감사했다.
드디어 일요일 오후. 입원 수속하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병상을 배정받고, 간단한 정보를 확인 후 이어지는 간호사의 말.
‘퇴원하시기 전에 케모포트 관련 교육을 받으셔야 하는데요, 내일 1시까지 가능하시죠?’
‘네? 내일 1시는 어려운데요. 퇴원하기 전에 받아야 하는 거면 꼭 내일 받아야 하는 건 아니죠?’
‘아니요. 내일 퇴원하실 건데요.’
‘네? 뭐라고요? 2박 3일이라고 들었는데요. 캐리어도 2박 3일 동안 계실 짐을 싸 왔어요.’
‘어머. 내일 케모포트 시술하시고 홈 펌프 착용하시고 퇴원하시는 일정이에요. 재원 기간 1일로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아니 1일이라니..! 이게 웬 날벼락 인지!
간호사도 나도, 엄마도 모두 당황스럽고 난처하기는 마찬가지. 애타게 기다리던 치료 일정이 늦게라도 잡힌 것에 안도하기도 전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입원 일정 안내를 들으니 진땀이 났다. 외래에서 안내받은 대로 2박 3일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면 안 되겠냐고 간청했다. 하지만 간호사도 입원 기간 변경은 권한밖의 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당직의 에게 내부 통신망을 이용해 전달을 하는 것 같았는데, 결과는 마찬가지. 다음 날 담당의에게 전달해서 판단을 기다려보겠지만, 요즘 병원 사정 상 변경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 예정대로 1일 입원 기준으로 알고 있으라고만 했다. 개강도 했으니 매일 곁에서 돌봄을 해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입원 치료가 아니라면 낯선 방법에 혼자서 어떻게 적응하실 수 있을는지 아득했다.
어쩔 수 없이 담당의에게 엄마의 상황(1차 치료 때 심한 부작용으로 입원했던 병력)과 안내 내용(외래에서 안내받은 2박 3일 입원 치료)을 최대한 설명해 달라 부탁하고 엄마를 병원에 두고 내려왔다. 버스만 타면 감기던 눈은 말똥말똥, 잠도 오지 않고, 머리만 무거웠다. 심야에 집에 도착해서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여기서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그저 화살기도나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분 손에 맡기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조금 가벼워졌다.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아침에 등교하기 전 엄마와 통화를 했다. 부디 1회 차라도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자며 어찌 되든 마음 편하게 하시고, 혼자라서 힘드시겠지만 시술과 치료까지 잘 받으시라고 응원했다. 1교시부터 이어지는 수업,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확인하니 엄마로부터 톡이 와 있었다.
‘딸, 이번이 처음이라 2박 3일 해주고 다음에는 무조건 1박 2일 해야 한 대. 걱정 말고 오늘 안 와도 돼.’
‘와 정말 다행이네요. 다음은 다음 대로 일정 조정해서 대처하면 되니 이번에라도 안전히 다 맞고 나오시길 기도한 보람이 있네요.’
지난 4월에 1차 치료 후 심한 부작용으로 입원해서 고생했던 것을 고려해서 판단한 모양이다. 환자에게 당연해야 할 권리가 협상하고 떼쓰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개탄스러웠지만, 새로운 시술과 바뀌는 치료 방법을 1회라도 병원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수업을 다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가 왔다. 지난주 타임캡슐을 탈출한 ‘10년 후 일기’를 받아 든 졸업생 두 명이 학교에 온 것이었다. 주말이나 휴일도 아니고, 한창 바쁠 월요일, 점심시간에 맞춰 서울에서 내려오려면 서둘렀을 생각을 하니 반가움과 고마움에 표정 관리가 잘 안 됐다. 월요일에 월차까지 쓰고, 이직 준비에 바쁜 귀한 시간을 내서 이렇게 만나러 와 주다니!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두 사람. 한 명은 결혼 4년 차.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아이유의 피켓팅을 매번 성공할 정도로 다정한 남편이 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요식업으로 제법 돈도 모으고 살림도 불렸지만, 가족의 건강이 좋지 않아 간병하는 일이 잦아지는 바람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지난주에 ‘10년 후 일기’를 발송할 때만 해도 ‘학교에 한 번 놀러 가겠다’는 말을 그저 지나가는 말로 이해했었고, 며칠 전 정말 오겠다는 말에도 반신반의했었다. 약속했다가 엄마 입원 일정이 정해지면 만나지 못할까 봐 확신에 찬 약속은 하지 못하고 미리 양해를 구해 두었었다.
다행히도 엄마의 병원 일정에 지장 없이 졸업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반갑고 기뻤다. 월요일부터 먼 길 한걸음에 달려온 둘은 지친 나를 위로하러 온 사절단 같았다. 입맛이 없어 점심 생각도 별로 없었는데,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함께 공유했던 지난 추억들로 감상에 젖을 수 있어 훈훈했다. 한때는 객기를 부리다 내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던 그들은 어느덧 누군가를 깊이 공감하고 위로할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점심도 먹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3시간이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속도로 사정을 고려해서 내가 상경길을 재촉하지 않았다면 둘은 오래도록 연구실에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중에 한 녀석이 ‘10년 후의 일기’를 받아 든 그날, 직장에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골치 아픈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에, 나의 톡을 보고 처음에는 살짝 긴장했다가, 막상 내용을 열어 보고는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릴 만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조금 오글거리는 내용이긴 했지만, 감성과 낭만이 살아 있던 20대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 그 추억을 다시 꺼내 볼 수 있어서 잠시나마 행복했다고 말해주었다. 피곤한 시간을 보내던 한 편, 10년 후 일기로 또 다른 시간을 만날 수 있었다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의 입원으로 심란하고 근심 어린 하루를 보낼법했던 내게 졸업생 둘은 위로를 선물하고 갔다. 힘겨운 시간과 반갑고 고마운 시간이 교차하는 하루. 오늘 하루 나의 씨줄과 날줄이 이렇게 엮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