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학생들과 여행 프로젝트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자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의 인생에서 오롯이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는 다소 제한적이다.
우선 나는 월화수목금 직장에 출근을 하고, 월차나 연차 따위는 없다. 평일엔 9 to 6을 직장에서 보내며 출근준비, 수면 등에 필수불가결하게 소모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하루 중 나의 자유시간은 취침 전 두세 시간뿐이다. 가끔 야근이나 주말근무가 필요할 때면 그마저도 줄어든다.
유일한 휴가는 방학이지만 교사 출근일, 당직 등이 있어 온전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는 없다.
또, 시간만이 문제는 아니다. 숨만 쉬어도 바닥을 드러내는 급여와 무섭게 치솟는 물가 역시 자유를 제한하는 커다란 걸림돌이다. 작고 소중한 나의 소득으로 여행 한 번 가려면 몇 달은 집과 직장만 왕복하며 소비를 최소화해야 한다.
내가 동양인이며 여자라는 점도, 인종차별이 심하거나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를 선택지에서 배제하게 하는 조건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할 배짱은 나에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변인들 중 비교적 여행의 자유를 누리는 편에 속한다.
나의 지인들은 돌봐야 할 식구가 있어서, 충분한 휴가를 내기 어려워서, 인터넷 활용이 익숙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마음껏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여행은 더욱 제한적이다. 정보를 얻기 어려워서, 소득이 적어서, 이동이 어려워서, 문제상황에서 홀로 해결이 어려워서 등 다양한 이유가 발목을 붙잡는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대체로 보호자 없이 낯선 곳에 가는 경험이 드물다. 대중교통이용이나 소비활동, 지역사회이용 등이 원활한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여가를 즐기기도 하지만 주로 익숙한 활동반경 안에서 이루어진다. 새로운 곳이나 활동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는 현저히 적고, 그나마도 나이가 들어 학교를 졸업하고 부모가 돌볼 여력이 없어지면 훨씬 더 줄어든다.
여행은 단지 순간의 유희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의지로 선택하고, 내 발로 찾아가고, 내 힘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상징하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다.
우리가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이유는 그저 신나게 놀고먹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고자 함이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자유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수업의 처음은 항상 여러 가지 선택지를 비교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은 1학년의 버킷리스트는 ‘기차여행’이었다. 우선은 다 함께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기차여행을 검색해 후보지를 추렸다. 춘천, 강릉, 군산, 부산, 정선 등 여러 후보지가 나왔다.
처음에는 가깝고 익숙한 춘천을 희망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각 장소별로 놀거리, 볼거리 등을 비교하고 나니 아이들은 군산으로 마음을 바꿨다. 시간여행마을에 있는 옛날 군것질거리, 영화 촬영지 등에 마음이 끌린 것 같았다. 온돌마루가 있는 서해금빛열차를 탈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였다.
기차는 단순히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수단을 넘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낭만이 있다. 관광열차는 그 낭만을 극대화한 열차로 동해산타열차, 서해금빛열차, 백두대간협곡열차, 남도해양열차, 정선아리랑열차, 바다열차 등이 운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넓은 창으로 바다를 마주 보며 달리는 바다열차도 무척 좋았는데 곧 운행을 중단한다고 해서 안타깝다.
어쨌든 우리가 타기로 한 서해금빛열차는 용산에서 출발해 서해안을 따라 익산까지 달리는 관광열차로, 서해안의 금빛노을을 보며 달릴 수 있고 온돌마루실이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군산으로 가는 기차는 시간대 별로 있지만 서해금빛열차는 하루에 한 대, 그것도 주말과 월목금만 운행한다. 그중 온돌마루는 딱 9칸뿐이라 예약이 쉽지 않다.
되도록이면 예약도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온돌마루를 얻기 위해서는 이용일 한 달 전, 오전 7시에 오픈런을 해야 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예약은 일괄 교사들이 하게 되었다. 게다가 온돌마루실은 모바일에서는 불가능하고, 꼭 PC로 접속해야 해서 교사들 역시 시간 맞춰 가능한 사람이 몇 없었다.
다행히 한 분이 재빠른 예약으로 4칸이나 확보해 우리는 고대하던 온돌마루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순식간에 매진이 된 온돌마루실 외에도 기차를 예매하는 과정은 꽤 험난했다.
첫 번째 난관은, 여행을 준비하며 정보를 더 찾다 보니 온돌마루실이 생각보다 비좁았다는 점이다.
안내에는 1실당 3~6인까지 이용가능하다고 되어있었는데, 성인 6명이 이용하기에는 객실이 다소 작아 보였다. 거기에 1인 이용금액과 별도로 온돌마루실 하나당 3만 원씩을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에 온돌마루 이용여부에 대해 아이들과 재논의 과정이 필요했다.
온돌마루의 장단점을 비교한 후에 각자 선호에 따라 좌석을 나누었다. 좌식이 불편하고 추가비용을 내기 싫어 그냥 일반석이 타겠다는 아이들도 있고, 그래도 따뜻한 온돌마루를 이용하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고, 온돌마루가 좋지만 좁은 건 싫어 원하는 친구가 많다면 일반석으로 가겠다는 아이들까지 제각각 욕구가 달랐다.
온돌마루실을 확보한 것과는 별개로 이용하는 인원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열차표를 취소 후 다시 예매를 해야 했다.
두 번째 난관은, 아이들마다 승하차 역이 다르다는 점이다. 서해금빛열차는 용산, 영등포, 수원역을 거쳐가는데 우리 학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이 다 있다 보니 가까운 역이 모두 달랐다.
편의를 위해 영등포는 제외하고 용산과 수원, 두 곳으로 승하차 역을 나누어 따로 예매를 했고, 여행 후 기숙사로 입소할 아이들을 위해 청평행 ITX도 예매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승하차 역을 바꾸거나 기숙사 입소 여부를 바꿀 때마다 표를 새로 끊어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매를 어렵게 한 것은, 장애인 할인을 받는 과정이다.
코레일은 중증 장애인과 동반 1인에게 할인 혜택을 준다. 정부나 지자체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우리 학교 입장에서는 활동마다 소요되는 경비도 상당한 부담이기에 승차권 할인 혜택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할인과정은 상당히 복잡해서, 한 번에 최대 9명까지 밖에 결제가 안 되는 데다 할인대상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심지어 왕복 티켓도 한 번에 적용이 되지 않아 편도로 각각 입력을 해야 하고, 동반할인을 받는 티켓이 있으면 개별 변경이나 취소가 되지 않아 변동이 생길 때마다 전체 티켓을 전부 취소하고 다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예매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40여 장의 열차를 예약하기 위해 몇 번의 예매와 취소, 재예매 과정을 반복했는지… 카드회사와 코레일에서 부정사용으로 연락이 올까 봐 염려가 될 정도였다. 그나마 우리는 월요일에 이용해서 취소수수료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단체예약을 하거나 금토일에 이용하면 장당 최소 400원씩 취소수수료를 내야 한다.
머리에 지진이 날 것 같던 예매과정을 거치고, 조별로 세부여행 계획을 세웠다.
서해금빛열차는 용산에서 08:31에 출발해 군산에 11:39에 도착한다. 돌아오는 열차가 군산에서 16:32에 출발하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고 한두 군데 정도 구경을 하면 될 것 같았다. 조별로 먹거리, 놀거리 등을 조사하고 동선과 이동방법, 비용 등을 고려해 계획을 정했다.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요즘 MZ들에게 유행한다는 릴스도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쉬운 릴스를 하나씩 골라서 연습도 해보고,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짬뽕거리, 경암동 철길마을, 테디베어 박물관, 해망굴, 해양테마공원, 초원사진관 등 조별로 흩어져 두어 군데씩 돌았다. 취향에 따라 조별로 나누어 다니고 나면 나중에 사진과 후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다. 좋았던 곳은 추천을 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조가 다녀온 곳을 보며 다음에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기도 한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예상치 못하게 문을 닫은 식당과 카페가 있어 계획을 변경하기도 했고, 릴스는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처음이다 보니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어설펐다.
그래도 괜찮다. 자유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다.
나는 자유여행을 좋아하지만 그건 패키지보다 비용이 저렴하거나 몸이 편하거나 코스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애써 준비했음에도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에 따른 멍청비용을 내기도 하고, 기껏 찾아간 식당이 맛이 없기도 하고, 사진과 사뭇 다른 숙소를 예약하기도 하고, 길을 못 찾아 헤매기도 하고, 뒤늦게 더 좋은 정보를 알게 되어 아쉬운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곳을 나의 의지로 선택하는 자유는, 그 자체로 만족감과 성취감을 준다. 자유가 배제된 채 아무리 좋은 것이 주어진 들 어찌 행복할까.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 원하지 않는 곳, 원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라면 적은 비용, 맛있는 음식, 호화로운 숙소, 아름다운 풍경 같은 건 하등 소용없는 것들이다.
자유는 그 자체로 좋다. 그래서 우리는 우당탕탕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쳐도 자유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