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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Nov 16. 2023

월동 준비

첫눈이 오고 난 뒤, 대대적인 월동 준비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여름 동안 신선한 채소를 수확했었던 화분의 흙을 버리고 깨끗하게 씻어 말렸다. 여름밤을 불멍의 기쁨을 선사했던 화로도 말끔히 치워 뒷마당에 있는 쉐드(Shed) 안으로 옮겼다.


신랑이 스노우 블로워(Snow blower, 눈 치우는 기계)를 점검하는 동안 나는 차량용 비상 키트를 살피기로 했다. 운전을 하다가 눈 속에 고립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겨울에는 이런 비상 키트를 늘 차 안에 비치해 두는데, 미네소타에선, 특히나 Duluth에선 아주 흔한,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져 눈더미에 파묻히거나 눈 폭풍에 차가 고립되어 시동도 켤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든 눈을 파내고 밖으로 나와 도움을 요청하든지, 직접 길을 뚫어 차를 몰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이다. 견인차를 부르거나 가족, 보험회사, 경찰을 불러서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하는 순진한 생각은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 정말 심한 눈 폭풍이 몰아치는 날은 위에 나열된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꼬박 3일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진에서 오른쪽 편에 있는 빨간색 작대기 처럼 생긴 것이 차 창문의 눈을 치우는 것인데, 겨울 동안 거의 매일 사용할 예정이다.


비상 키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삽과 체온 유지를 위한 코트나 장갑 따위이다. 그리고 미니 삽을 사서 키트 안에 넣어 두는데, 눈 밭에 차바퀴가 빠졌을 때나 바퀴가 헛돌 때 직접 삽질을 해서 빠져나오기 위함이다.

이곳에서 처음 차를 샀을 때, 시아버지가 준 선물이 바로 이 비상 키트였다.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도 눈 속에 고립된 적은 없지만, 병원 주차장에 세워 두었던 차의 엔진 오일이 얼어붙어서 차 시동이 걸리지 않은 적은 한 번 있었다. 신랑이 올 때까지 병원 건물 안에서 기다릴 수 있었기 때문에 정작 비상 키트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도로 한복판이나 갓길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아주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월동 준비는 바로, 만두와 하나의 부츠이다. 3년간 사용한 부츠가 낡아서 올해 새로 주문을 했다. 날이 추워서 부츠를 신기는 날이 많은 것도 있지만, 눈과 얼음을 녹이기 위해 도로나 인도에 사용하는 소금이나 염화칼슘아이들 발바닥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방수가 되는 부츠는 필수이다.


하니스도 오래돼서 같이 주문을 했는데 겨드랑이에 너무 껴서 반품을 해야 할 것 같다. 몸에 뭔가를 걸치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만두는 짜증이 제대로 났다.


눈이 얼마나 오길래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나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시는 분들을 위해 동영상을 하나 올리겠다. 바로 내 생일이었던, 올해 3월 12일 날 찍은 동영상이다. 이것도 심한 눈 폭풍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도로가 하루 동안 막힐 정도는 되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예약해 놓았으나 휘몰아진 눈 폭풍에 아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날, 신랑과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삽질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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