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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Nov 30. 2023

피자와 올드 패션(Old Fashioned)

본능적으로 어떤 사람이 싫을 때


오래전,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이유 없이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사람에게서 나의 결점을 보기 때문이고, 내가 간절히 바라는 자질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결점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꼭꼭 숨기고 있던 약점이나 결점을 영화를 보듯 눈앞에서 지켜보는 격이니 그 사람이 이유 불문하고 싫어지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발전시키고 싶은 자질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그런 자질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막상 그런 성장통을 회피하고 무시하는 한심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싫어지는 것이다. 질투의 마음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상대방이 싫은 이유는 이것 말고도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심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 겪었던 불행한 경험이나 상처 때문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무례한 말투나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과도한 경쟁이나 나와는 다른 성격, 일하는 스타일 등의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상대방을 싫어하는 이유가 나름 명확한 편이고,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가 있다.

내가 흥미롭게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상대방을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

누군가가 "나 저 사람이 이유 없이 너무 싫어!"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들은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몰라! 그냥 주는 것 없이 싫은 거 있잖아. 나한테 말 거는 것도 싫고, 내 옆에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 딱 잘라서 뭐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든데.... 그냥 싫은 거. 뭔지 알지?"

나도 그랬고, 당신도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내 말투가 은근히 명령조 거든. 그런데 저 사람 말투가 딱 나 같은 거야. 나의 결점을 저 사람을 통해 보는 것 같아서, 감추고 싶은 내 점을 저 사람을 통해 보는 것만 같아서 저 사람이 불편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을 평생 친구로 삼길 바란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그런 쓸데없는 감정 소모와 부정적인 생각들이 싫어서 한창 심리학 책을 찾아 읽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 나도 이런 생각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이렇게 글로 다시 쓰는 이유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 저 사람 이유 없이 진짜 싫네...' 하는 생각을 가끔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병원이 새 건물을 짓고 이사를 했다. 얼마 전에 "짤린" 과거의 매니저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서 여전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것도 있지만, 중구난방으로 달라진 업무에 팀원들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스트레스 레벨이 올라가다 보니 서로에게, 또는 다른 부서의 직원들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해서 종종 불화에 휩싸이곤 한다. 다른 부서 직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우리를 향해 공격적인 말을 할 때도 많고 말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스트레스의 이유와 원인이 명확하다.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 그 원인을 없애주면 스트레스는 완화될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윗선의 움직임은 느리다 못해 방관적이기까지 하다.


지난주에 우리 팀원들과 윗선의 만남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 디렉터 한 명과 그보다 계급이 낮은 두 명의 매니저였다. 시종일관 자신의 생각이 옳고, 자신이 말한 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디렉터는 우리의 의견을 제대로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의 편견이 개입되어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디렉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저런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지? 경청을 할 줄도 모르고, 건설적인 비판을 수용할 자세도 안 되어 있고, 저렇게 독단적이기까지 한데?'

반감의 마음과 함께 디렉터가 싫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른 사람 말 잘 안 듣고 내 고집대로 밀어붙일 때도 많은데... 나도 건설적인 비판을 들을 때면 방어 기전을 발동해서 공격적으로 변할 때도 있는데... '

나도 완벽하지 않은 만큼 다른 사람들도 완벽하지 않다. 그 디렉터는 자신보다 더 높은 윗선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도 했고, 우리와 비슷한 불만과 요구사항을 표현하는 부서가 많다 보니 우리의 말을 전부 다 들어주기 힘든 것도 있었던 것이다. 무조건 절차를 따라, 정책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미국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도 있고 말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회의는 끝이 났고, 여전히 우리 팀은 지정된 오피스가 없어 집 없는 거지처럼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았던 한 주를 보내고 주말엔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신랑과 크리스마스트리 데코레이션을 하고, 외식도 했다. 늘 건강식만 챙겨 먹는 신랑이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피자도 시켜 먹었다. 피자에 올드패션 한 잔을 곁들였는데 은근 잘 어울렸다. 진심 강추이다.





내 마음대로 올드 패션 레시피. 위스키 2 oz (대부분은 Bourbon을 사용하는데 Bourbon 도 큰 카테고리로 보면 위스키이기 때문에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위스키를 사용했다), 칵테일 시럽 1/4 oz, Angostura bitters 3번 톡톡톡 넣고 잘 섞어준 뒤 얼음을 넣는다. 그리고 오렌지 껍질 트위스트 한두 개를 올려주면 완성이다.



P.S, 그렇다고 그 디렉터를 전부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나도 디렉터 같은 결점이 있다는 걸 한 번 더 알아차렸을 뿐이다. 결론은, 아무리 심리학 책을 많이 읽어도 마음이 넓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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