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 Perich Dec 23. 2023

트레이더 조 김밥과 소주(Soju)

낙담과 실망, 그래도 희망


며칠 전, 브런치 북 대상 발표가 있었다.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들이 그러하듯 나도 내심 기대를 했었다. 혹시나 내가 되지 않을까? 많은 구독자분들이 내 글을 좋아해 주셨는데, 출판사 관계자분들도 보는 눈이 비슷하지 않을까?

선정된 사람들에겐 대상 발표가 있기 일주일 전쯤 미리 연락이 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12월 13일부터는 브런치 알람과 메일을 시도 때도 없이 확인을 했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역시나 나는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처음엔 실망도 실망이지만 무엇보다 화가 났었다. 왜? 왜 난 아닌데? 왜?

화를 내는 내게 신랑이 말했다.

"네 글이 책으로 낼 정도로 좋은 건 아닌가 보지."

!!!!!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도 유분수지.

"아니면,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어?"
"또, 뭐?"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만나기도 어렵고 소통에 장애가 있으니까 선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게 어딨어? 요즘 세상에!"

위로는 못해줄망정...

"네가 실망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브런치 북 대상이 네 목표는 아니었잖아."

그랬다. 브런치 북 대상을 받는 것이 내 목표는 아니었었다. 물론, 선정이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작가가 되는 길도 보장이 되고 홍보 효과까지 누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너는 웹 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잖아. 브런치는 네 일상을 적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 아니었어?"

지난 4월,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내가 했던 말을 신랑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신랑의 말이 맞았다. 글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였고, 웹 소설 작가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시작한 브런치였다. 지금의 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내가 하는 일에 제법 자신도 있다. 글쓰기와 작가가 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작가,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기는 하지만 지금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절망할 이유도, 슬퍼할 이유도 없었다.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나는 꼭 그 꿈을 이룰 것임을 알고 있기에.

예상치도 못하게 단번에 브런치 작가 심사에 합격했고, 나의 어린 시절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독자분들과 소통도 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의 일상과 미국 간호사로서의 병원 생활, 신랑과의 결혼에 대해 적으면서 지금까지 총 28만 이상의 조회 수도 기록했다.(여섯 살 연하 미국 남자와 결혼했습니다는 구글 포털에 노출이 되면서 글 하나로만 약 6만 1천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꾸준한 글쓰기 덕분에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고 무엇보다 구독자 분들이 400분 가까이 생겼다.

새롭게 도전한 곳에서 이만큼의 성취로도 나의 2023년은 꽤나 알찼고, 성공적인 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 북 대상 발표가 있고 난 뒤, 지난 3일간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엔 욱하는 마음에 내가 쓴 글들을 다 지워버릴까? 그냥 탈퇴해 버려?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그제 [내 마음대로 혼술] 발행일이니 연재를 기다리는 독자분들을 위해 글을 발행하라는 알람이 도착했다.

'흥! 연재 따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객관적인 시야가 큰 그림을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글을 누군가가 기다릴까?.... 글쎄...'

........

'그래도 기다리는 독자분들이 계실지도 모르니까 글을 써볼까?'

.........

'아니...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도 글은 계속 써야 되지 않을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브런치 북 대상에 선정되지 않았다고 접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씁쓸한 마음을 다 잡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다시 글을 쓴다. [내 마음대로 혼술]을 연재하면서 계속 미루고 미루던 소주를 오늘 밤 마셔야겠다. 소주 한잔 마시고 탁 털고 일어나서 다시 열심히 적어보자고, 내년엔 내 책을 출판해 보자고 결심했다.



15년 만에 영접한 소주. 도수가 높은 데다 씁쓸한 맛이 겁이 나서 그동안 마시지 못했었는데, 웬걸. 소주가 이렇게 달았나? 아니면, 내 나이쯤 되면 소주가 달게 느껴지는 건가? 반주로 한두 잔 마실 생각이었는데 달달하고 상큼한 복숭아 맛에 취해 나도 모르게 반 병을 비워버렸다. 두 잔을 마시고 취기가 올라오는데도 서너 잔을 더 마신 것 같다. 취중에 글을 쓰니 글도 잘 써지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저녁에 쓴 내용은 내일 다시 수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고민 끝에 <나는 엇나가는 아이였다> <나는 비겁한 어른 아이였다>브런치 북을 삭제했습니다. 대대적인 수정과 보충을 거쳐 내년에 자가 출판을 할 계획입니다. 또한, 작년부터 계속 쓰고 있는 웹 소설도 수정과 보완을 해서 내년에 웹사이트에 도전을 해 볼 생각입니다. 책이 완성되는 대로 구독자 여러분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


긴 푸념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참치 마요가 더 맛있었다


Trader Joe's(트레이더 조)에 납품을 시작해 초대박을 친 한국의 중소기업 김밥.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까지 사재기에 동참해 품절대란을 일으킨 그 김밥을 정말 운이 좋게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겉 포장은 다르지만 트레이더 조에 납품하는 김밥과 같은 중소기업에서 만든 것임) 미국으로 이민 와서 수도 없이 김밥을 만들었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서 한 번 만들려면 거의 반나절이 걸리는 노동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간편하게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다니 ㅜㅜ 전자레인지에 2분. 김 비린내도 안 나고, 밥도 쫀득쫀득한 데다, 시금치랑 단무지도 아삭거리는 것이 진짜로 맛있다. 욕심이 앞서 총 40개를 샀는데 잘한 것 같다 ㅋㅋ 나보다 김밥을 더 좋아하는 신랑의 누나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사진을 몇 장 보냈더니 그녀는 내게 전화를 해서 소리를 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참 살기 좋은 세상!



매거진의 이전글 퐁듀와 올드 패션(Old Fashion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