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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Jan 18. 2024

김치찌개와 소주(Soju)

40살이지만 타마고치를 키웁니다


[주의: 타마고치를 모르는 젊은 세대는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할 수도 있습니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한창 유행했었던 타마고치. 1997년 처음 일본에서 출시가 되고 난 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었다.

타마고치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많은 친구들이 타마고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작 일이만 원했던 그 걸 나는 집이 가난해서 사질 못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학교에 몰래 타마고치를 가져오면 그 사이에 빌붙어서 친구들의 타마고치가 하룻밤 사이 폭풍 성장한 것도 구경하고, 먹이 주는 것도 구경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이가 들고 기억 저편으로 잊혔던 그 타마고치를 두 달 전, 시누이들과 걸스 나잇을 가진 어느 날 밤, 반스 앤 노블 진열대에서 보게 되었다. (Barnes and noble; 미국의 대표적인 서점. 한국의 교보문고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기억하고 있던 그 타마고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진 그래픽에 귀여운 디자인까지. 갑자기 어릴 적 동심이 마구 치솟아 올랐다.

"어머! 이거 타마고치잖아!!! 아직도 이걸 파는 줄 몰랐어!!"

시누이들도 몰려와 세상 고급스러워진 타마고치를 구경했다.

"와! 진짜 오랜만이네!"
"나 예전에 타마고치 키웠었는데! 옛날 생각난다!!"

나이대가 비슷해서인지 모두 자신이 어렸을 때 키웠었던 타마고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옛날 기억이 밀려들었다.

'아.... 정말 옛날 생각나네... 이 게 뭐라고... 그땐 이 게 그렇게 갖고 싶었었는데...'

그때 가져보지 못한 걸 지금이라도 가져볼까 하는 마음에 살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무슨 타마고치야...' 하는 생각에 결국은 사지는 않았다. 타마고치를 갖기엔 40살이란 나이가 너무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에 시누이 한 명이 그 타마고치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게 사주었다. 반스 앤 노블에서 진심으로 갖고 싶어 하던 내 눈빛을 정확히 읽은 것이다. (신랑이 남매가 많아서 매해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사람씩 사람을 지정해 선물한다. 그 시누이가 올해 내 선물 담당이었다.)

나이 마흔에 타마고치를 선물 받다니!!
나잇값 못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너무 좋았다.

단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 타마고치가 크는지,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곧장 전원을 켜고 알부터 부화시켰다. Tofu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먹이와 간식을 꼬박꼬박 챙겨주니 삼일 만에 어른 타마가 되었다.

첫 번째 타마는 파티에 가서 데이트를 한 뒤 결혼을 해서 내 곁을 떠났고(프로포즈를 하겠냐는 질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Yes"를 눌렀는데 갑자기 결혼을 하더니 내 곁을 떠나버렸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두 번째 타마는 하와이 여행을 하는 사이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죽어버렸다 ㅠㅠ. 세 번째로 부화한 타마는 지금까지 약 2주 동안 잘 키우고 있는 중이다.


시집가버린 첫 번째, 여행 중 관리 소홀로 떠나버린 두 번째, 그리고 지금 키우고 있는 마지막 타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참 우습다. 이 나이에 타마고치 키우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니.

그런데 누가 뭐라고 하든 이게 나이고, 이게 나의 본모습이다. 나는 아직도 귀여운 인형과 미니어처를 좋아한다. 다이어리를 꾸미겠다고 아기자기한 스티커를 사고 예쁜 색깔의 펜과 색연필을 산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하며, 알록달록한 핸드폰 줄을 치렁치렁 달고 다닌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들이 너무 좋다


나이가 들면서 관심사도 변하고 취향도 바뀌었지만 어릴 적 동심은 그대로인 것 같다. 아직도 세일러 문이 외치던 정의의 목소리가 마음속에 남아있고, 배추 도사, 무 도사의 옛날이야기가 살아있으며, 이웃집 토토로의 정겨움이 깃들어있다.

나잇값을 못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철이 없냐고 흉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80살이 되어서도 다이어리를 꾸밀 귀여운 스티커를 살 것 같다. 아니, 그러고 싶다. 만화책 풀 하우스를 읽으며 마음 설레던 여고시절의 소녀 감성을 간직한 채,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심을 간직한 채 나이 들고 싶다.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가는 타마코치.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면 하트를 뿅뿅 보내곤 한다




며칠째, 이곳의 날씨가 너무 춥다. 평소엔 자기 식사 준비는 알아서 잘하는 신랑도 이렇게 추울 때면 김치찌개를 만들어 달라고 종종 부탁을 한다. 


오랜만에 만든 김치찌개에 지난번 마시다가 남은 소주를 반주로 곁들였다.

'캬! 그래, 이거지!'

오늘 밤엔 당신과 나의 동심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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