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코로나19 유행이던 몇 년 전, 출장을 위해 대구를 다녀왔다. 그때는 일의 특성상 출장이 잦았다. 서울, 경상도, 전라도를 주기적으로 오갔다. 기차도 자주 타고 기차 시간 중간중간 짬을 내어 빠르게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다니던 때였다. 교통비는 지원받았지만 숙박비까지는 지원되지 않아서 아무리 멀어도 되도록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체력이 달리고 힘들다는 생각도 했지만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재밌고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첫 직장인 데다가 일 때문이기는 해도 처음으로 혼자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게 되어 좋기도 했다. 혼자여행 도전이랄까.
한 번은 대구를 가게 되었다. 마침 당시에 대구에 일하러 이사 간 친한 동생이 있어서 연락을 해보았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해진 아이였는데 꽤 오랜만에 연락을 했었다. 나는 대구를 처음 가보았다. 그래서 일 끝난 저녁 시간에 시내도 둘러볼 겸 만나서 밥이라도 먹을까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자취를 하던 그 동생은 흔쾌히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까지 해주어서 고마웠던 기억이다. 미안한 마음에 조금 고민했지만 동생도 진심이라고 오라고 여러 번 말해주다 보니 짧게나마 대구 여행을 할 기회라 생각하고 묵어 가게 되었다.
일을 잘 마치고 시내에서 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내가 퇴근이 더 빨라서 지하철로 근처 역에 가 한 카페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정신없이 일-집콕의 연속이었는데 여유롭게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좋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것도 잠시. 드디어 만난 동생과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꺅꺅 거리며 인사를 나누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무엇을 할지도 구체적으로는 정하지 않았었다. 그냥 시내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한 나에게 동생은 그럼 시내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후에 함께 걸으며 시내 구경을 떠났다. 압축적으로 시내 구경을 하는 느낌이라 좋았다. 게다가 선선한 가을날 밤 산책이라니.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유인 것 같다.
대구 근대골목을 쭉 따라 걸으면서 밤 산책을 했다. 대구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시가 써진 거리도 지났다.
서울 명동 느낌이 나던 동성로도 걸어가며 구경했다. 아직은 코로나 유행 당시라 원래 더 북적북적했겠구나 싶어 조금 씁쓸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밤에는 동생네 집에서 수다 삼매경을 즐겼다. 이때가 현재 남편을 처음 만난 지 별로 안 되었을 때였다. 좋은 분위기로 몇 번 만났을 때였는데, 이 사람을 사귀어야 할지 말지 정말 고민이 되었을 때였다. 계속 만나도 될지. 그냥 연애 자체가 두렵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많지 않던 차에 여행의 분위기에 취해 속 깊은 고민까지 다 이야기했던 것 같다.
“언니, 정말 마음 맞는 사람이라면 한 번 도전해 봐요. 나라면 그럴 것 같아요.“
정확한 멘트는 기억나지 않지만 진중하게 들어주고 생각을 나눠주던 동생의 응원에 용기가 났던 것은 확실하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동생의 응원만은 맴돌았다. 결국 서울에 가서 만난 다음 사귀게 되었으니 동생의 응원은 효과만점이었던 셈이다.
다음 날 아침은 집밥을 둘이 야무지게 차려 먹고, 주택을 개조한 느낌 좋은 카페에도 들렀다.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며 서로를 응원하고 나왔다. 예쁜 생김새와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빵과 쿠키를 구경하는 재미도 누리고 말이다.
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는 동생이 일하는 기관에도 같이 가 보았다. 나와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그녀가 새삼 멋져 보였다. 당시에 그 아이도 새로 취직해 몇 달간 자리를 잡아가던 때로 기억하는데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분야라 신기했다. 또 관광지만 가는 것보다 대구의 여러 동네를 가보는 것 같아서 좋기도 했다.
설 연휴를 맞아 문득 생각이 나 돌아보는 대구 여행. 이 동생과의 고민 상담을 통해 남편과 처음 사귀게 되었으니 나는 종종 우리 부부를 이어준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갑작스레 1박을 묵고 가는데 흔쾌히 받아준 동생에게도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지금은 서로 바빠 연락이 뜸해졌지만 언젠가 나도 그녀에게 여행이든, 일상의 고민 상담이든 무언가 좋은 기억을 선사해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