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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우 Sep 03. 2024

다니엘 아샴이 생각하는 3024년 미래의 발굴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 미래에 우리는 혹은 이 시대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현재 2024년도에 살고 있는 우리...'과연 천년 뒤인 3024년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이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롯데뮤지엄에서 다니엘 아샴의 개인전 <서울 3024 (Seoul 3024)- 발굴된 미래>라는 타이틀로 오는 10월 13일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우선, 다니엘 아샴은 많은 해외 유명 브랜드와 협업했던 걸로 굉장히 유명합니다. 예를 들면, 티파니 앤 코(Tiffany & Co.), 디올(Dior), 포르셰(Porsche) 그리고 이케아(IKEA) 등등. 그래서 예술과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들어봤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 전시는 작가님이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했기 때문에 전시를 봐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상상의 고고학'이라는 작가만의 세계관으로 천년 후의 미래인 3024년 서울이 어떤 모습인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혼합하여 시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전시회에 들어서는 순간, 2024년이 아닌 3024년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봐야 한다는 특징이 있죠. 작품 속 테크닉이나 스킬, 어떠한 손기술 보다는 다소 철학적인 전시입니다. 요즘 전시가 그러하듯 작가의 스토리텔링이 인상 깊은 개인전이고 총 9개 섹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초기작은 물론이고 다니엘 아샴의 첫 한국 전시인 만큼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까지 250여 점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꽤 규모가 큰 전시회입니다. 


<서울 3024 (Seoul 3024)- 발굴된 미래> 전시를 연 롯데뮤지엄 전시 전경. 출처. 롯데뮤지엄.


동굴을 연상하게 만드는 초입 부분을 지나면, 루브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전 조각 시리즈가 나옵니다. 하지만 차이점은 비너스 조각상들이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있어 다니엘 아샴만의 재해석이 돋보입니다. 파손된 부분은 마치 조각상 안에서 식물처럼 자라는 듯 수정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파손된 부분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고 넣었는지 아님 비너스의 미(美)를 살리고 싶어서 넣었나 하고 생각했지만, 작가의 의도는 세월의 흐름에 의해 물질이 금속이나 광물과 같은 고체로 변하는 걸 표현한 거라고 합니다.


참고로 아를의 비너스상은 발견 당시에 오른팔은 없었고 왼팔 일부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절대왕정의 상징인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지요. 하지만 밀로의 비너스상은 오늘날 복원을 하려고 했는데 여론의 반대로 하지 않습니다. 절대왕정에서는 왕의 명령이 중요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에는 다수의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사실 여기에서는 파손된 부분에 수정과 같은 광물을 넣어서 표현한 것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시대 어떤 정치이념 그리고 어떤 가치관에 작품을 보는 입장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절대왕정 시대에 비록 원래의 모습과 다를지라도 완성된 모습이어야 작품을 인정을 받았다면, 하나는 민주주의 시대에 비록 파손된 상태일지라도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면서 보는 시점이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파손된 비너스상들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밀로의 비너스상(왼쪽), 아를의 비너스상(오른쪽) 출처. 롯데뮤지엄.


여기는 비너스상들과 더불어 <Valley of the Sublime> 아크릴 회화작품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신비롭고 영화 속에서만 있을법한 느낌이죠. 하지만 뜬금없이 왼쪽에는 스타워즈 캐릭터 오른쪽에는 현대 건축의 건물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석상 작품 속에 있고 비탈길에 포르셰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 시간대의 작품들이 섞여있죠.


이 작품은 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만약 2024년도를 기준으로 작품을 감상한다면, 현재의 것과 과거의 것이 혼재되어 독특하게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3000년대 시점에서 보면 과거와 대과거 그저 과거의 덩어리로만 보입니다. 현재에서는 포르셰가 부의 상징으로 보일 수 있지만, 미래에는 작품 속 포르셰가 중세시대의 마차처럼 보일 수 있는 거죠.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먼 미래에는 전기차보다 성능이 더 좋은 것들이 나올 텐데, 화석연료로 쓰이는 자동차는 유물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번 개인전의 주제와 제일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술과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느낌이었어요.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이 작품은 사실 작가님만의 독특한 기법은 없었고 르네상스 고전회화 그리는 방식과 독일 낭만주의 회화기법 서로 다른 시대의 기법을 섞어서 그렸죠. 그래서 구상화 그릴 때 테크닉적인 요소를 보는 것보다는 작가만의 철학을 초점으로 감상하는 게 전시회를 보다 더 즐길 수 있는 방법 일 것 같습니다.


Valley of the Sublime, Stubaital, 212.1cm X 516.9cm, Acrylic on Canvas, 2023


다음으로 넘어가면 애니메이션 포켓몬과의 협업 작품들이 나옵니다. 다니엘 아샴은 원래 일본 문화를 되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팬심과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여겨 이렇게 작품으로 만들었어요. 어릴 적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면서 자란 저로서는 작품을 감상할 때 어릴 적 제 모습을 회상하곤 했습니다. 포켓몬 빵 사 먹으면서 스티커를 모았던 제 모습 그 당시 전설의 포켓몬 '뮤츠' 스티커를 구하지 못해 속상해했을 때가 생각나서 작품들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가 보여주고픈 것은 작품들을 전시한 방식입니다. 만약에 이 포켓몬스터 조각들을 그냥 바닥에 내려놨거나 흰색 큐브 박스 위에 올려놓았다고 상상을 하면 크게 임팩트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먼 미래에 동굴에서 발굴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5미터의 벽을 설치해서 파버렸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동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콘셉트에 집중해서 작품 감상보다는 참여하고 경험하는 느낌을 관람객들에게 제공합니다.


일반 전시회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전시하는 방식을 생각하지만, 이 섹션 같은 경우는 포인트를 전시하는 방식으로 둬서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되게 몰입도 높은 전시하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상상력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 들이는 연출력이 정말 대단한 거 같았어요.


<서울 3024 (Seoul 3024)- 발굴된 미래> 전시를 연 롯데뮤지엄 전시 전경. 출처. 롯데뮤지엄.


포켓몬스터 조각상들을 지나면 고전 조각상과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얼굴을 결합하여 한 화면에 배치한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앞서 말한 것과 차별점이 있다면 Chat GPT와 같은 AI 프로그램에 명령어를 이용해서 고대와 현대의 우상을 배치했습니다. 다니엘 아샴은 신기술에 호기심이 많고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80년대 애니메이션 히로인' 같은 뉘앙스의 키워드를 넣어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반은 고대의 아이콘이고 또 다른 반은 현대의 아이콘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시대에 따라 인류의 아이콘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옛날에는 권력자나 힘센 사람들이 시대의 아이콘이었죠. 종교적인 성격을 띠는 예수님 같은 성인들, 왕권이 강할 때는 왕이나 귀족들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TV나 영화관이 생기면서 과거에는 광대로 취급받던 연예인들이 대중매체에 나와서 지금 이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어 선망하고 열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SNS가 나오면서 시대의 아이콘이 엄청 뒤섞이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우리에게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Fractured Idols VI, 279.4cm X 243.8cm X 5.1cm, Acrylic on Canvas, 2023


<서울 3024 (Seoul 3024)- 발굴된 미래> 전시를 연 롯데뮤지엄 전시 전경. 출처. 롯데뮤지엄.


 동굴 같은 터널을 지나가면 발굴 중인 현장인 콘셉트가 공간이 나옵니다. 이 공간은 빗살무늬 토기와 청동기 시대 때 쓰이던 유물이 아닌 현재 혹은 과거에 쓰인 물건들이 우리 밑에 놓여서 토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시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죠. 유적지 모습으로 세팅해 놓은 것이 메인인 것처럼 놓여있지만, 솔직히 조형물보다 회화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유적지 모습보다는 벽에 걸린 <Rome Deified Found in Buhansan> 작품이 눈에 더 들어왔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이 작품은 AI 생성이미지에다가 3024년 '서울 북한산 유적지'라는 키워드를 이용해서 나온 이미지를 핸드프린팅으로 다시 옮겨 그리는 방식으로 완성했습니다. 분명 서양화인데 소나무 때문인지 제 눈에는 동양화로 느껴지는 게 재밌었습니다.


작가는 현재 2024년도에는 문화가 글로벌화되기 시작하면서 문화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천년이 지나면 자연의 특성 외에는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구별할 수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문이 없는 전시회이다 보니 작품이 창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 동굴이라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천년 후의 모습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죠. 창문이 없는 공간 속에서 창문 역할을 하는 작품이고 북한산 속 소나무가 유독 눈에 띄어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서울 3024 (Seoul 3024)- 발굴된 미래> 전시를 연 롯데뮤지엄 전시 전경. 출처. 롯데뮤지엄.


Rome Deified Found in Buhansan 3024, 166.4cm X 181.6cm, Acrylic on Canvas panel, 2024. 출처 롯데뮤지엄.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다니엘 아샴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사라진 형상들>이라는 작품이 배치되어 있는데 옷이 휘날리는 방향을 보면, 자연에 대한 불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벽에 걸린 <Falling Clock>은 예전에 이케아와 협업해서 나오는 한정판 시계와 비슷해서 반가웠습니다. 이 작품은 중력에 왜곡되어 시간을 끄집어 당겨버려서 시간이 멈추어 버리는 형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시간 앞에서 덧없다는 걸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살아있는 순간에 사유하고 집중하며 사랑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죠.


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은 흔하지만, 작가만의 유머러스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매우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길다고 생각하겠지만, 우주의 거시적인 시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인생은 찰나의 순간 같은 거죠. 영원한 거는 존재하지 않고, 우주에 비하면 정말 먼지 같은 인생인 거죠.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고민하고 작품을 보게끔 만드는 게 다니엘 아샴의 매력인 거 같습니다.


벽에 걸린 <Falling Clock>과 중간에 위치한 <사라진 형상들> 츨처. 롯데뮤지엄


이 외에도 섹션 <드로잉 호텔>, <31세기 시네마>에서는 작가님의  드로잉 작업을 한 그림과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영향을 끼친 영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 작가님의 초기회화 작품들도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뉴욕에 있는 아샴 스튜디오를 그대로 따온 모습도 있습니다. 여기는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함께 협업하고픈 브랜드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스튜디오를 보면 다니엘 아샴은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잘 흡수되고 융합되어 있는 예술가인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는 작가님의 피날레 작품은 미디어 아트인 'Future Stage'입니다. 클래식한 조각상들이 나오고 고급스러운 수영장도 나옵니다. 아레스 신전과 20세기를 대표하는 미니멀리즘의 건축물을 함께 넣어 시간이 뒤섞인 느낌을 줘서 되게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영상입니다.


다니엘 아샴의 초기 드로잉들. 출처 롯데뮤지엄.


Arsham's New York studio and features collaborative works. 출처. 롯데뮤지엄.


이번 전시회에서 본 다니엘 아샴의 개인전은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거 같았습니다. 철학적인 전시였던 만큼 이제는 작품에 작가만의 철학이 없다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다가왔다는 거죠. 아티스트가 단순히 그림 그리는 테크닉만 좋아서 심미안적으로만 아름다우면 그 작품은 그저 인테리어 잘 어울리는 소품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점점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지지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선 넘는 작품으로 일반 관객들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은 나오지 않았으면 하고 작가들의 철학이 들어가되, 시대적 맥락에 맞게 잘 녹여서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러한 미술이 나왔으면 해요.


다니엘 아샴 개인전 미디어 아트 'Future Stage'. 출처. 롯데뮤지엄.


전시를 다 보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였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요즘에는 시대의 아이콘들이 엄청 뒤섞이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저는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제가 느꼈던 바를 인용해서 써보면 이제는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수많은 미디어와 하나가 뜨면 그와 비슷한 콘텐츠들이 우르르 쏟아지니, 엄청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나오고 또 금방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예술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자극적인 미디어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예술이 길다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던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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