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예술가'로 알려진 알렉스 카츠. 현재 인천 중구에 위치한 뮤지엄엘에서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알렉스 카츠의 작품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우선 뮤지엄엘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2024년 7월에 개관했고, 복합문화공간인 상상플랫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올해 개관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해외에 소재해 있는 알베르티나 미술관과 공동 기획전을 진행하는 거 보면 시작이 매우 좋은 거 같아요.
이번 전시는 오는 11월 1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고 알렉스 카츠의 원화 총 67여 점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알렉스 카츠는 정말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제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최근에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프리즈 키아프에서 알렉스 카츠의 작품들이 유독 눈에 잘 들어왔고 때마침 뮤지엄엘에서 알렉스 카츠 전시회를 개최했다는 소식에 좋은 타이밍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예전에 다녀왔던 열렸던 작가님의 개인전과 프리즈 키아프에서 봤던 작가님의 작품들도 함께 섞어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지난 9월 4일에 열렸던 프리즈 키아프 아트페어에 출품된 알렉스 카츠의 작품들, 출처. 프리즈.
전시회 초입 부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작품은 1970년대에 그려진 <Orange Hat2>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 여름의 청량함과 작품의 모델이신 에이다의 매력과 외모,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 덕분인지 유독 주황색 모자가 눈에 띄었어요.
작가님이 작품 활동하면서 많이 그린 인물은 아들 빈센츠와 그의 아내인 에이다였습니다. 작가님은 아내를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80번 이상 그렸어요. 이 기간에 작가님이 그렸던 초상화는 매우 스타일화 되고 이상화되어 있습니다. 에이다를 모델로 한 작품들을 보면 매우 다양한 상황들로 표현되었음에도 에이다는 더 이상 성숙하거나 늙지 않았고, 작품 속 그녀의 침착한 태도는 손쉽게 변하지 않아 보입니다.
Orange Hat 2, 243.8cm X 182.9cm, Oil on linen, 1973, 출처. 뮤지엄엘.
또 다른 모자를 쓴 작품들 중에 , 제 눈에 띄었던 작품은 <Black Hat2>입니다. 배경은 쨍한 햇살을 노란색 단색으로 표현을 했고, 이와 대조적으로 검은색을 이용해 절제된 분위기, 극도의 클로즈업된 구도가 눈에 띄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대상에 대한 감정을 배제한 게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의 모델은 에이다가 아닌 울라이고 검은색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목걸이를 보면 작가는 액세서리와 같은 아이템들을 주의 깊게 그렸죠. 이러한 물건들은 그 시대의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품 소재로 많이 넣었다고 전합니다. 이렇게 코디한 패션은 70년대 뉴욕의 미니멀한 패션을 잘 보여주고 있죠. 시대를 반영하는 패션을 표현하는 거 보면 1927년생으로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패션이나 디자인업계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거 같습니다.
알렉스 카츠의 작품을 보면 작품 안의 내포된 의미보다 외관 혹은 스타일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였어요. 인물이 나온 작품들은 하나같이 '내가 곧 패션이고 스타일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을 쓰면 되니깐 감상하기 편했어요.
추상회화를 감상할 때는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작가의 숨은 의도도 찾아야 하죠. 찾게 되면 또 그걸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을 생략하고 그저 보이는 것과 미학적 측면만 감상하면 된다는 점이 작가님의 작품이 보다 더 대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왜 현대 미술에서 가장 뉴욕적인 작가로 평가되고 많은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알 것 같았어요.
Black Hat 2, 72cm X 101cm, Oil on linen, 2010, 출처. 뮤지엄엘.
출처. 뮤지엄엘
작가님의 작품에는 꼭 여자 모델만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바로 <존>이라는 작품인데요. 작품을 보면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입니다. 특히 오토바이의 계기판을 보면 75 mph로 시속 120km를 달리고 있습니다. 굉장히 빠른 속도죠. 하지만 작품은 매우 정적입니다. 인물뒤로 그려진 배경이 차분한 색감으로 평온해 보여서 정적인 효과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빠른 속도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속 남자는 관객들과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게 재밌기도 했어요. 그냥 보면 단순한 그림인데 작가님은 단순함 속에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John, 183cm X 244cm, Oil on linen, 1982, 출처. 뮤지엄엘.
뮤지엄엘 개관전<알렉스 카츠> 전시를 연 뮤지엄엘 전시 전경. 출처. 뮤지엄엘.
알렉스 카츠는 스타일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색깔에도 매우 신경 써서 사용합니다. 색은 작품에 있어 작가님의 내면을 드러내죠. 표현하고 싶은 바를 색을 통해 삶과 그 속의 감정을 표현해요. 인물화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요소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자연과 주체적인 식물 작품들은 작가님의 자연을 좋아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릴 적 나무와 숲으로 둘러 쌓인 곳에서 자란 환경 덕분에 상당한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식물을 그린 작품 중에서 제 눈에 띄었던 작품은 바로 <Flags>입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창포' 꽃인데요. 우리나라 명절 중 하나인 '단오'를 생각나게 해주는 꽃이죠.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이 마치 서양화가가 그린 동양화의 느낌을 받아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품을 보면, 평면적 표현으로 검은색으로 칠해진 꽃들은 튤립, 장미 등과 같은 전형적인 꽃의 미학을 깨버리는 것처럼 보였어요.
작품은 붓으로 그린게 아닌 물리적이고 투박한 매력이 있는 목판화이지만, 꽃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한층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 조금 더 차별점이 있다면 색을 두 가지만 썼기 때문에 심미안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작품의 내포된 의미를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감성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 눈에는 자연광에 비친 창포꽃의 그림자를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작가님의 특유한 평면적 표현과 하얀 배경은 비현실적인 정원처럼 보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매우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Flags, 106.3cm X 304cm, Woodcut, 2013, 출처, 뮤지엄엘.
작가님은 인물 초상, 꽃뿐만 아니라 자연을 그린 많은 풍경화 작품들이 있습니다. 알렉스 카츠의 <Black Brook> 시리즈 중 하나인 <Black Brook 8>을 처음에 보았을 때, 솔직히 풍경화인 줄 몰랐습니다. 'Brook'은 우리나라 말로 '개울'이라는 뜻인걸 알게 된 후에야 왜 이 작품이 풍경화 인지 깨달았어요. '검은 개울가를 배경으로 한 나뭇가지를 그린 풍경화이구나.' 하고요.
작품의 어두운 배경은 앞서 언급한 <Black Hat 2> 작품에서 햇빛을 노란색 단면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평면적인 요소 덕분인지 멀리서 풍경을 관찰하기보다는 가까이 있는 자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자연이 저를 감싸주는 것 같았죠. 색이 적어서 단순해 보이지만, 나뭇잎 속이나 나뭇가지에 디테일하게 묘사된 그림자는 작가님 특유의 빛의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잘린 화면은 회화적 공간을 확대해서 <Flags> 작품처럼 관람객들을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죠. 어두운 배경과 대조된 나뭇가지는 색을 교묘하게 단순화해서 빛과 그림자의 자연적인 효과를 내는 건 알렉스 카츠만의 색채의 도식화 그리고 절제된 묘사방식이 아닐까 싶었어요. 다채로운 색으로 풍경을 묘사한 작품들과 아주 차별화된 풍경화 <Black Brook 8> 이였습니다.
Black Brook 8, 213cm X 645cm, Oil on linen, 1990. 출처, 뮤지엄엘.
뮤지엄엘 개관전<알렉스 카츠> 전시를 연 뮤지엄엘 전시 전경. 출처. 뮤지엄엘.
이번 전시에서는 알렉스 카츠의 기법인 '컷아웃 기법'의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1959년부터 윤곽을 따라 자른 평평한 목재나 철제 판에 페인트를 칠하거나 인쇄한 컷아웃을 만들기 시작했죠. 작가님이 당시 콜라주 기법을 실험하다가 고안해 낸 기법입니다. 이 기법은 평면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에 공간 자체를 유입해 버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제 풍경이 자연스럽게 통합되도록 했는데, 풍경 앞에 인물을 배치하거나 자신의 회화 앞에 작품을 배치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미지, 추상성, 피상성과 같은 개념이 작품의 실제 주제가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림을 조작해 버리죠. 개인적으로 컷아웃 기법으로 자신의 작품 앞에 놓은 것을 보고 작가만의 유머러스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외에도 처음으로 작가님의 습작도 함께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뮤지엄엘 개관전<알렉스 카츠>에서 전시된 '컷아웃 기법'의 작품들. 출처. 뮤지엄엘.
뮤지엄엘 개관전<알렉스 카츠>에서 전시된 습작들. 출처. 뮤지엄엘.
<큰 목련>을 위한 습작, 91.4cm X 121.9cm, 2002. 출처, 뮤지엄엘
마지막으로 <Beach Stop>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다른 작품에 비해 색이 많이 들어갔고, 사람 수도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정말 정적인 느낌이 드는 특징이 있죠. 이 작품은 2001년도에 완성되었고, 알렉스 카츠의 독특한 스타일과 '쿨 페인팅'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해변에서의 순간을 포착한 것으로, '쿨 페인팅'의 특징인 대형 캔버스에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감과 형태를 보여줍니다.
해변 가게에서 해안가의 인물들은 바다에 대한 낭만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님은 작품 속 테이블을 비워놓아 인물을 설명할 만한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플라스틱 의자와 파라솔 이외에는 인물의 형상을 한 형체와 색 조합만이 작품 속 형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작가님은 종종 일상적인 장면을 대담한 색채와 평면적인 구성으로 표현하여, 관람객들이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죠.
'쿨 페인팅'은 알렉스 카츠의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해요. 스타일은 얇고 균일한 페인트 층과 사실적인 묘사를 특징으로 합니다. 날카로운 윤곽선과 딱딱한 그림의 평면성이 합쳐져서 일상 현실에 대한 감정적으로 분리된 묘사가 인상적이고 감각성과 추상성이 잘 혼합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에는 대형 캔버스, 폭넓은 붓질 그리고 선명하고 강렬한 색상이 특징인 게 많습니다. 주제에는 일반적으로 친구, 문학 인물 그리고 풍경 장면도 포함되죠. '쿨 페인팅' 덕분에 작가님 자신만의 구상 회화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고,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화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알렉스 카츠에 대해 얘기 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Beach Stop, 244.3cm X 487.7cm, Oil on Canvas, 2001. 출처, 뮤지엄엘.
1954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회화, 드로잉, 조각, 판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평평한 색면으로 인물, 꽃, 풍경 등을 단순화하여 미국의 일상적 풍경을 기록하는 상징적인 회화 작품을 제작하죠. 또한 거대한 캔버스에 두 인물의 얼굴을 배치하는 구성법이나, 매우 얇고 납작하게 처리한 바탕색, 평평한 판에 그린 형태의 윤곽선을 따라 잘라내는 컷아웃 기법 그리고 먼저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음 획을 더해 신속하게 작업하는 웻온웻 기법이 있어요. 주제의 비율을 조율하는 방식, 절제된 색채와 화면 구성을 통해 작가는 인물과 사물의 본질만의 남겨 현재의 순간에만 존재하는 찰나를 담아냅니다.
알렉스 카츠가 50년대 활동하던 당시 미국은 잭슨 플록의 액션 페인팅 기법이나 마크 로스코의 색면으로 이루어진 추상표현주의류의 작품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많은 작가들은 추세에 맞게 활동했지만, 알렉스 카츠는 추상이 지배적인 예술계의 경향과 달리 인물과 정물, 풍경 등의 구상화를 자신만의 화면 구성과 표현 기법으로 선보임으로써 독자적인 화풍에 정착합니다.
뮤지엄엘 개관전<알렉스 카츠> 전시를 연 뮤지엄엘 전시 전경. 출처. 뮤지엄엘.
이번 개인전을 다녀오고 작가님에 대해 알아가면서 알렉스 카츠처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으로 작품활동 하듯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나만의 독창적인 글을 적을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시회를 다녀와서 이렇게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기 위해 많은 리뷰들을 읽으면서 연구를 합니다. 솔직히 사람들은 제 감상보다는 전시회의 객관적인 정보나 설명을 더 읽고 싶어 하는 걸 저도 잘 알아요. 최대한 간략하고 핵심만 적어야 한다는 게 트렌드인 걸 알지만, 나만의 글이 있어야 차별성을 가지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보도자료만 보고 글을 적던 그 시절에 일에 대한 현타가 와서 시작한 브런치스토리에서 나만의 글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알렉스 카츠의 작품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초심을 잡았습니다.
좋은 전시는 그림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배울 점을 주는 전시가 좋은 전시라고 늘 생각했었죠. 그래서 이번에는단순히 작품을 감상했다기보다는 앞으로 제가뭘 해야 할지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어 의미 있는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