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종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정말 화제가 되었죠. 드라마에서 '이사라 그림 원작자' 였던 권현진 작가님의 개인전이 현재 표갤러리에서 오는 10월 31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눈에 띄는 작품들을 보면 꼭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특히 드라마 속 작품들의 강렬한 이미지가 저의 눈을 사로잡아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사실 작가님의 작품들은 드라마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유명했습니다.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단체전과 내로라하는 아트페어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적도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이 왜 캐스팅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림 덕분에 드라마 속 이사라의 캐릭터가 한층 더 잘 표현되어 <더 글로리>의 숨은 공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현진 개인전 <Visual Illusion> 전시회를 표갤러리 전경, 출처 표갤러리.
표갤러리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총 15여 점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의 2024년도 작품인 'Visual Poetry Cube' 시리즈와 'Visual Poetry Pixel' 시리즈가 함께 전시가 되어 작은 3차원의 큐브 작품을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는 이전의 전시회와는 다른 차별성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비잔틴 모자이크와 고딕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아 채도 높은 픽셀 조각을 배열하여 시각적 착시효과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명상에 잠기게 하는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전달합니다.
Visual Poetry Cube Series#676, 15cm X 15cm X 15cm, Mixed Media, 2024, 출처. 표갤러리
갤러리를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된 작품들은 2022년도에 제작된 Pixel Series입니다. 빨간색계열의 베이스와 노란색계열의 베이스로 된 2점의 픽셀 작품들이었어요. 이 두 작품들을 보면서 이제는 점점 짧아지는 가을이 떠올랐습니다. 권현진 작가님은 불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하나는 단풍이 빨갛게 물들어 가는 과정을 표현한 거 같았고, 또 하나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과정처럼 보였어요.
가을을 맞아 물들어 가는 과정을 '픽셀'의 단위로 나누어 나열함으로써 시간의 실재성을 나타내는 속도감을 표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인상이 깊었습니다. 작품과는 별개로 기후변화로 인해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아쉬움도 더 커졌고요.
Visual Poetry Pixel Series#144_02 & #144_03, 61cm X 61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출처. 표갤러리.
다음으로 전시된 작품 중에 유일하게 유화로 제작된 'Visual Poetry'입니다. 2024년도 작품이죠.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거친 표면으로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죠. 그리고 유화의 질감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생동감이 잘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면, 블루계열의 색을 사용한 작품은 성난 파도가 매우 거칠게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이 있고, 그 밑에 있는 작품은 불들이 발화점에서 서로 겹쳐 매우 진한 불이 활활 타는 모습 같았습니다.
네 개의 작품의 크기는 작지만, 그 어떤 작품들보다 강렬함이 보였어요. 이렇게 유화로 매우 두껍게 표현한 작품들을 볼 때마다 '과연 AI도 이렇게 유화의 질감 표현을 잘 나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어요. 마띠에르 기법에서 각각의 매력을 뿜어내는 게 느껴져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었습니다.
Visual Poetry, 20cm X 20cm, Oil on Canvas, 2024, 출처. 표갤러리.
작가님은 어릴 적부터 보이지 않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예를 들면 주위의 공기나 바람, 사람의 감정들이 중요하게 느꼈다고 합니다. 항상 작업 전에 두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환영들을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내려는 시도를 많이 합니다. 아마도 3층에 있는 'Visual Poetry Series' 세 작품들이 그 환영들이랑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작품 모두 2023년작들입니다. 작품을 보면, 픽셀의 작은 그림을 현미경으로 확대한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보다 더 강렬하게 보이죠. 정확한 형태와 경계가 없이 휘몰아치는 듯 보이고 단조로움을 깨는 효과는 관람객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화려한 색감들이 섞이면서 오묘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게 너무 신비로워 보였어요. 앞에서 언급했지만, 작가님은 불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래서 작품들을 봤을 때 제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대자연의 변화와 탄생의 모습을 표현하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예를 들면, 숲과 바다 그리고 대지가 실제로 저렇게 변하거나 탄생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Visual Poetry Series, 91cm X 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출처. 표갤러리.
권현진 개인전 <Visual Illusion> 전시회를 표갤러리 전경, 출처 표갤러리.
마지막으로 권현진 작가님 작품에는 현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변성이 있습니다. 고채도의 색상과 물감의 가변적 표면 효과는 추상적 이미지를 극대화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시각적 감각을 넘어서서, 공감각적 체험을 통해 관람객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는 드라마 속 이사라의 캐릭터 때문인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작품들이 혹시나 악의 기운과 어둠의 기운이 강렬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실제로 봤을 때 색감이 너무 예뻐 사실 그 반대로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과 은행 그리고 대자연의 변화와 탄생 등등... 모든 작품의 느낀 점을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제 생각과는 달리 긍정적인 바이브를 얻어 매우 좋았던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