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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덩이 Nov 23. 2023

경쟁과 쟁취 1: 시작하는 글

입시의 단상 - 외고부터 취업, 대학원까지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

서른까지의 인생을 되짚어봤을 때 기억에 남는 많은 순간들이 경쟁에서 쟁취했을 때더라.

슬프거나 놀랍지는 않았다.

승리하려면 운과 실력이 따라야 한다는데 그 둘이 모두 작동했을 몇 안 되는 희귀한 순간이었을 테니까.

노력하면 노력한 대로 희열이 잇따랐을 거고, 예상치 못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 하늘이 도왔다 느꼈을 거다.

씁쓸하다면 씁쓸할 것이, 내가 거쳐온 경쟁보다 내가 앞둔 경쟁이 더 수적으로도 많고 거셀 거라는 사실.

조금은 지치지만 가야 할 길이 멀기에 다 잊기 전에 내가 겪어온 경쟁과 쟁취들을 나열해보려 한다.

이것은 승전의 기록, 지나쳐온 기억에 대한 미화, 앞으로 가야 할 길에 있어서의 독려일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경쟁의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처음으로 반에서 3등을 했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다. 원래 3등이었던 친구는 말을 아꼈지만 주변 친구들도 잘했다며 칭찬해 줬다. 아마 내가 외국에서 오래 살고 들어온 터라 한국 물정도 모르고 반에서 이름난 순진한 애로 통해서 친구들이 조금 더 챙겨주기도 했을 거다. 칭찬받는 게 너무나 좋아서 그 무렵부터 성적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엄마도 희망을 봐서 그런지 학원 개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반에서 1등을 한 적은 없다. 웬만큼 잘하는 것에 꽤나 만족했다.


그러나 6학년 때 목표가 바뀌었다.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1등이었는데 담임이 눈에 띄게 그 친구와 같은 무리의 나머지 인원들을 차별했다. 나도 그 차별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학년 마지막에 학년 부록 정리작업을 나와 1등 친구, 담임이 같이 방과 후에 남아서 했다. 특정 페이지를 펴서 책을 늘어놓는 단순 작업이었다. 나름 열심히 하겠다고 집중해 있던 그때, 담임이 한 말은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있다.


이런 거 잘하네. 나중에 이런 거 하면 되겠다.



굳이 "이런"게 뭔지는 콕 집어 설명하지 않았지만 하던 게 단순 작업이었기에 좋은 뜻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별거 아닌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날부터 뭐든 잘해야겠다, 내가 더 잘하지 않아 그만큼 이쁨 받지 않은 걸 걸 거다, 어중간한 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더 잘해서 이 선생 코를 눌러줄 테다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간 직후 나는 바로 반 1등을 차지했다. 우연하게도 6학년 1등 친구와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배정됐기에 어떻게 보면 내가 그 친구가 계속 꿰차던 자리를 가져오게 됐다. 우리의 사이는 그렇게 점점 멀어졌지만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는 알 것만 같았다. 


꾸미는 것에 관심도 없고 게임, 컴퓨터에도 큰 흥미가 없었다. 낙이라면 시험 끝나고 만화방에 들러 만화책 수십 권을 빌려 집에서 하루종일 만화책 보는 거. 부모님이 엄하셔서 반항할 용기도 없었다. 그 무엇보다 강렬했던 건 시험을 잘 봤을 때의 희열이었다. 교과서에 있는 모든 걸 이해하고 외워서 시험에 100점을 받으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었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결과라니 얼마나 좋은가. 어려운 시험이었는데 다 맞았다며 선생님이 박수를 쳐주시거나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 친구들이 날 찾아주는 것도 뿌듯했다. 중학교 교과목들이 쉽고 재밌던 것도 분명 한몫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렇게 반 1등에서 전교권으로, 전교권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며 나의 대한 기대가 한껏 올랐고 그렇게 자동적으로 학교와 학원으로부터 외국어 고등학교 진학을 권유받았다. 나도 싫은 건 아니었기에 흔쾌히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그 길로 중학교 2학년 때 외고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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