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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HYE JI May 17. 2023

6. 나를 꽉 안아주던 아이들

'나를 힘들게 하던 벼룩쯤이야'



매일 7시 학교 버스 첫차가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학교를 나선다. 학교 버스 시동소리에 맞춰 사무실로 출근해 학생들을 기다린다. 이것이 나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학생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면 '미스(여자 선생님)'라고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처음에 아이들은 나를 참 신기하게 쳐다봤다. 아마도 에티오피아 사람들 중에서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무쌍, 긴 생머리, 에티오피아사람보다 하얀 피부색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꼭 내 머리카락과 피부를 만져본다. 하는 말도 똑같다.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생머리가 이쁘다, 그리고 간혹 쌍꺼풀 없는 눈이 이상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 앞에서(2013)

아이들을 만나고 나면 괴로운 것이 하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벼룩이다. 아이들이 늘 벼룩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부가 약한 나는 벼룩에 아주 잘 물린다(에티오피아 사람은 잘 물리지 않고, 물리더라도 빨리 회복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날부터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에티오피아 벼룩은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벼룩에 물리면 그 부위에 열이 나고, 붓고, 진물이 나고, 매우 가려운데 가려운 증상이 길게는 3개월 이상 지속된다. 물리는 부위도 아주 다양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고 한번 물면 여러 군데 물리기 때문에 나는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다. 낮에는 꾹 참고 있다가 밤에 잠이 들면 무의식 중에 초능력적인 힘을 발휘해 열심히 긁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손톱 밑을 보면 피범벅인 날들이 많았다.


수업 후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2013)


하지만 나를 괴롭게 한 벼룩과 상관없이 내가 아이들을 날마다 끌어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 주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먼저 아이들을 안아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나를 안아 준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신기한 외국인 중 한 명이 아니라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인정해주었다.  '네가 한국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같다'라고 말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날마다 말해주는 아이들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도 변하게 만드는 큰 힘이 있다고 믿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으로 변화되는 삶은 정말 값지다. 모난 내 삶을 둥글둥글하게 만들어가는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배운다. 그래서 에티오피아는 나에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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