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과일 야채 주스' 라는데, 가게 앞에 적힌 상세 설명을 읽으니 물도 섞는다. 그럼 100%로는 아니지? 허나 내겐 아이의 마음이 읽힌다. 태어나서 만 10세까지 알레르기 수치가 높은 상태로 지내왔으므로, 아이에겐 알레르기 항원으로부터 안전한 음료가 필요했고 자신이 원하는 카페를 만들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딸은 식당은 물론, 카페에서도 늘 원재료를 확인한다. 지난 주말에 새로운 카페를 방문했다. 유자 에이드를 주문하면서,
"저희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러는데요. 혹시 유자 외에 어떤 재료가 들어 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꿀도 안 돼서요. 죄송하지만, 유자청 제품을 제가 직접 확인할 수 있을까요?"
감사하게도 작업대 아래서 유자청 통을 꺼내 보여 주신다. 그런데 제목부터 '꿀유자'라니. 재료에도 꿀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가 못 먹는다고 양해를 구하고, 대신 Tea를 주문했다.
아이가 알레르기 검사로 아산병원에 갈 때면 지친 진료 후 카페에서 시원한 주스로 피곤을 달랜다. 그곳에선 과일에 우유도 함께 넣기에, 주문할 때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저희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우유 빼고 물을 넣어서 갈아 주시겠어요? 그런데 우유가 남아 있어도 위험하니 깨끗하게 씻긴 도구로 부탁드려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에서 주인공 헨리 지킬 박사는 자신의 몸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화학 약물을 만들었다. 선을 대표하는 지킬 박사가 약물을 먹으면 전혀 다른 모습의 하이드로 변신해 악행을 일삼는다.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다가 약의 효험이 점점 떨어지면서 하이드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하인을 시켜 런던을 샅샅이 뒤져 혼합물에 필요한 분말들을 구해오게 했으나 소용없다. 처음 사용한 재료에 불순물이 섞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미지의 불순물이 변신 가능한 효과를 주었다.
불순물의 효과. 우리 아이는 소량의 불순물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알레르기 물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부주의하게 제조, 관리된 음식을 먹으면 아이의 몸은 즉각 반응한다. 친정 엄마가 쌀을 들고 시골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뽑아 보내 주셨다. 그 떡으로 떡국을 먹은 날, 아이는 밤새 잠 못 자고 구토를 했다. 밀가루라도 혼입 된 것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 뒤로 원재료명이 표시된 떡만 사 먹는다.
호텔 뷔페 주스 코너에서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묻고 우유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후 아이에게 블루베리 주스를 줬다. 마신지 20분 정도 지나자, 온몸이 빨개지면서 호흡 곤란으로 이어져 119를 불렀다. 다음 날 뷔페 총관리인에게 전화가 왔다. 부산 출장으로 호텔에 없었는데 지난밤 사건에 대해 들었다, 우유를 넣어 만든 주스였는데 직원이 몰랐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100% 순수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 어느 정도 불순물을 지닌 존재라서 나와 비슷한 타인을 이해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아이의 몸도 소량의 밀가루, 우유 등을 불순물로 밀어내지 않고 받아주길 바래왔다. 그러나 아직 몸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안전한 음식을 찾아 보호해야 한다. 엄마가 모든 음식을 확인하고 안전하게 먹이는 공간이 집인 것처럼 아이는 미술학원에서 그런 공간을 만들어 왔다. 재료에 대해 묻지 않고, 죄송하다 말하지 않고 주문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카페라서 작품 속 형형색색 과일이 더욱 싱그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