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의 솔직한 속마음
엄마 이야기
쟤가 요즘에 왜 저러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작년만 해도 학교 끝나고 돌아와서 조잘조잘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었는데. 요즘엔 말도 안 하고, 뭘 물어봐도 몰라도 된다며 찬바람이 쌩 분다. 세상에서 자기를 제일 위해주는 사람이 바로 난데.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지난 주말에는 가을옷 쇼핑을 같이하기로 했었다. 오래간만에 화장하고 준비까지 다 하고 나왔더니 친구랑 가겠다고 그냥 카드만 달란다. 기가 막혀서! 엄마랑 같이 가기로 해놓고 갑자기 이러면 어쩌냐고 했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랑 가는 게 낫겠다고 모진 소리를 해댔다.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친구들이랑 쇼핑을 보냈더니 얼마나 민망한 옷을 사 왔던지. 저건 옷을 입은 건지, 천만 가져다 댄 것인지,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도 알 수 없어서 한소리를 했었다. 이번엔 반드시 같이 가서 점검을 해줘야지 했는데, 또 저렇게 나오니 너무 화가 났다.
같이 안 가면 돈도 안 준다고 했더니 지금까지 세뱃돈으로 받아서 모아놨던 돈을 내놓으란다. 아, 빚쟁이가 빚 받으러 온 줄. 기가 차고, 화가 나고,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국 딸에게 마지못해 카드를 건네주었다. 제대로 된 옷을 사 오라고 당부하면서.
내 이럴 줄 알았지. 또 이상한 옷만 잔뜩 사 들고 왔다. 화장품도 샀길래 적당히 좀 하라고 한마디 했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지수지, 글쎄 돈이 모자라서 진짜 사고 싶은 건 못 샀다고 오히려 짜증을 냈다. 아이고,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요즘 외모 문제로 딸과 너무 많이 부딪쳐서 속이 많이 상한다. 다 자기 좋아지라고 하는 소리인데, 왜 못 알아들을까? 뉴스를 볼 때마다 흉흉한 소식에 가슴이 덜컥한다. 계속 따라다니며 보호해줄 수도 없고. 옷이라도 얌전하게 입고 공부만 착실히 하면 얼마나 좋을까. 멋이야 대학 가서 내도 되는 거 아닌가? 돈 달라고 할 때만 말을 섞고, 그 외에는 말 한마디 붙이기도 무섭게 차갑게 구는 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쟤가 왜 저렇게 변했을까? 다정하고 웃는 게 예쁜 아이였는데. 빨갛게 바른 입술에서 내 마음을 찌르는 말이 나오고, 날렵하게 그린 아이라인으로 나를 흘겨보는 쟤가 정말 내가 배 아파 낳은 그 딸 맞나 의심이 드는 요즘이다.
아빠 이야기
안 그러려고 했는데 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약한 아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만 해도 방에 들어갔더니 또 게임을 하고 있다. 들어갈 때마다 게임을 하는 아들을 보니 너무 화가 났다. 또 게임 하냐고 한소리를 했더니 공부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혔다고 대들지 않는가? 공부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머리를 하루종일 식히는 걸까?
진짜 열심히 공부했으면 게임을 해도 뭐라고 안 한다. 지난 중간고사 점수도 떨어졌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 내가 방에 자주 들어가 보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 들어가 보는데, 그때마다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예 공부를 안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 아버지가 나같이만 해줬으면 난 아버지를 업고 다녔을 거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자란 나는 더 좁은 방을 동생들과 나눠 쓰면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다. 내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내 자식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직장에서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있지만, 처자식을 생각해서 꾹 참고 있다. 그런데 저 나약한 놈은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저러고 있다. 넓고 따뜻한 방에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으면서 어째 저렇게 답답한 행동을 할까? 좋은 말로 타이르려고 시작했는데,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키보드를 누르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러니 내 속이 안 뒤집힐 리가 있나?
세상 사는 것이 얼마나 팍팍한데, 왜 저렇게 생각이 없을까?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운 게 문제인 듯싶다. 아빠가 퇴근하고 왔으면 현관문까지 달려와서 인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아내가 애 공부한다고 하도 그래서 안 나와도 그냥 넘어가고 있다. 하루 이틀 봐줬더니 이제는 방으로 찾아가도 아예 인사할 생각도 안 한다. 왜 자꾸 노크도 안 하고 방에 들어오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쳐서 기가 막힌다.
프로 게이머가 될 것도 아니고, 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 할 거 아닌가. 제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을까 심히 염려된다. 인사성이라도 밝아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데. 빨리 정신을 차리게 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기숙 학교라도 알아봐야 할지. 그러면 공부를 열심히 하려나? 우선 저 답답한 꼴은 매일 안 봐도 되니 내 속은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엄마의 진짜 속마음
먼저, 엄마가 왜 이렇게 화가 나셨는지 살펴볼까요? 위 이야기에 등장한 엄마와 딸은 옷과 쇼핑 동행 여부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국, 엄마가 양보해서 딸의 의견을 들어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의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계시는 어머니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물론 배경과 상황,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자녀와 갈등이 발생하는 패턴은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엄마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딸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게 보입니다. 뉴스에서 범죄에 연루된 피해자들 이야기를 들을 때 그 걱정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딸이 나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옷도 단정하게 입고, 화장도 안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실은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염려이지요. 딸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엄마는 잔소리를 더 하게 됩니다.
전에는 대화도 잘하던 딸이 엄마와 쇼핑하는 걸 거부하고 친구를 선택할 때, 엄마는 마치 딸이 자신을 거부한 것 같은 좌절감을 느낍니다. 딸과 약속을 기대하면서 일찍부터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갑자기 친구랑 쇼핑하러 가겠다고 하자 황당하기도 하고, 속도 상합니다. 이런 불안과 좌절감은 화로 표출이 되었습니다. 같이 안 가면 돈을 안 주겠다고 협박도 하게 되고, 외출하고 돌아온 딸이 사 온 옷들과 화장품들도 눈에 거슬립니다. 그러다 보니 말이 곱게 나가지 않습니다.
엄마의 화를 불러일으킨 불안감과 좌절감은 사실 엄마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감정입니다. 위의 예에서 엄마는 사랑하는 딸을 돌봐주고 필요한 조언을 하며 서로 친밀감을 나누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쇼핑도 같이하고 싶고, 옷도 골라주며 딸과 교감을 하고 싶었던 것이죠. 이렇듯 보통 엄마들이 원하는 욕구는 자녀와의 친밀감입니다. 아이와 대화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일상을 공유할 때 느끼는 그 친밀감 말입니다.
아빠의 속마음
위의 예에서 나온 아빠는 아들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게임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아빠는 참 성실하게 사신 분입니다. 아빠는 어려웠던 유년 시절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고, 현재는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빠는 아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은 살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하는데, 아들의 성적은 떨어졌는데도, 게임만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한심해 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계시는 아버지들도 많이 공감하실 거예요.
전보다 삶이 윤택해진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더 나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빠는 조금 전까지 머물던 직장이나 일터에서 느낀 힘들고 치열한 감정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나약해 보이는 아들이 과연 성장해서 이 어려운 사회에서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투사가 일어난 것이지요. 투사는 자기의 감정이나 태도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미래를 준비한 나도 이렇게 힘든데, 미래에 대한 준비는커녕 게임만 하며 노는 아들이 나중에 얼마나 더 힘들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 또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걱정입니다. 무의식중에 계산된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빠를 불안하게 하고, 결국 그 불안은 아들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화가 나다 보니 요새 인사를 안 하는 아들의 모습이 마치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서운합니다. 아빠가 불안하고 화가 난 이유도 아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빠들은 자녀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빠의 희생과 수고에 감사를 표하고, 아빠 덕분에 편하게 살고 있다는 자녀의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인정을 자기도 아빠처럼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아빠는 화가 나고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아빠는 자신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모른 채 아들이 나약하고 예의가 없다고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퇴근 후에 반갑게 맞아주는 아들의 인정을 간절히 원하면서 말이지요.
부모의 진짜 욕구
부모님들은 전에는 안 그랬는데 갑자기 변해버린 자녀를 보면서 당황스러우실 겁니다. 보통 어머니들이 상담을 요청하시는데, “쟤가 갑자기 왜 저럴까요?”, “얘가 전에는 안 그랬어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어요.”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부모님들은 변한 아이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왜 저러는지 몰라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왜냐면 컸으니까요. 아동기를 지나 청소년기에 들어간 아이들은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 생각, 정서도 훌쩍 커갑니다. 그 과정에서 전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아이의 발달에 맞춰 성장하지 못한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직도 자녀를 아이 취급하거나 아이의 미래에 가장 필요한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녀와 관계가 힘들어집니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분류했습니다. 아래 하위욕구부터 위의 상위욕구까지 순차적으로 충족된다는 이론입니다. 수면욕, 식욕, 성욕과 같이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욕구인 1단계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안전과 보호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생깁니다. 2단계인 안전 욕구는 신체적 보존과 더불어 경제적인 안전도 포함합니다. 안전 욕구가 만족이 되면 3단계 애정 욕구가 나타납니다. 애정 욕구는 집단에 속하고 정서적 교감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로 사회적 욕구입니다. 다음으로 생기는 욕구는 존경의 욕구입니다. 자기존중의 욕구라고도 불리는 4단계를 충족하려면 내부적으로는 자아 존중감, 자율, 성취 등을 높여야 하며, 외부적으로는 지위, 신분, 인정 등이 필요합니다. 매슬로우는 1단계부터 4단계까지를 무엇인가 부족해서 채우려고 하는 결핍 욕구라고 정의합니다.
이 결핍 욕구가 모두 충족이 되면 비로소 성장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가 생깁니다. 5단계는 하위 단계들과 다르게 부족함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더 성장하고자 생기는 욕구입니다. 이후 학자들이 성장 욕구에 인지적 욕구, 심미적 욕구, 자아 초월 욕구를 포함하여 욕구 이론을 8단계로 확장하였습니다.
매슬로우가 욕구를 인간의 본능으로 본 점과 욕구 단계를 정리한 것에 대해 학계에 큰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욕구 단계 이론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단계별로 욕구가 나타나지 않고 복합적으로 생긴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바쁜 일정으로 끼니를 하루종일 걸렀다면 아무리 5단계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했어도 1단계 생리적 욕구가 강해집니다. 또 출장으로 외국에 방문했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면 2단계 안전 욕구가 생길 겁니다.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한 것과 상관없이 하위 결핍 욕구들도 때마다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사용하여 부모의 진짜 욕구를 파악하되, 순차적인 욕구 충족이 아닌 채우고자 하는 욕구의 종류로 보겠습니다.
겉으로 표현되는 말과 행동의 이면에는 숨겨진 속마음이 있습니다. 단어 자체가 보여주는 것처럼 가장 ‘속’에 있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혹시라도 꺼내놓으면 상처를 받을까 봐 마음 깊은 곳에 안전하게 숨겨 보호하는 것이 속마음입니다. 너무 꼭꼭 숨겨놔서일까요? 속마음은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속마음은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왜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은 본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욕구를 찾았다고 바로 욕구가 채워지거나 힘든 상황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숨어 있는 욕구를 발견하면 그동안 본인의 행동과 생각이 이해되고, 앞으로 취할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예측할 수 있어 마음이 전보다 훨씬 편해집니다. 욕구를 인식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더 나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에 상대에게도 자신의 필요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혹시 아이에게 화가 난다면 먼저 내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나의 숨은 욕구를 찾으면 의외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많은 경우, 해결의 실마리는 외부의 상황이나 상대가 아니라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