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1999(3)

경춘선과 추억 수필

by 이현

세 번째 출입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세일러문처럼 강해져 있었다. 과감하게 손잡이를 쥐고 문을 잡아당겼다. 철컥 소리를 내며 가볍게 문이 열렸다. 세 번째 객실도 이전 객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곳엔 다양한 탑승객들이 있었다. 우리처럼 가족 단위의 승객도 있고,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다정한 남녀도 있었다. 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옆으로 중절모를 쓰고 종이 신문을 쫙 펼쳐 읽고 있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상념에 깊게 빠져있는 군인 옆자리에는 중년의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가 통로를 따라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객실 앞쪽에서 갑자기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재빨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곳에선 노인 네 분이 마주 앉아 화투를 치고 있었다. 외갓집에서도 어른들이 모이면 매번 하던 놀이였기에, 나는 익숙하게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화투판을 구경했다. 한 할머니의 패가 계속 맞지 않았다. 화투판을 곁눈질하던 옆자리 아저씨는 그 모습이 답답했던지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듯한 두 사람은 ‘이기는 방법’에 대해 심각하게 의논했고, 다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짜고 치는 게 어디 있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와 할머니는 계속 상의하며 화투를 쳤고 결국엔 이겼다. 게임이 끝난 후 나는 ‘아저씨와 할머니가 반칙했다고 서로 싸우면 어쩌지?’라고 걱정했으나, 다들 쿨하게 웃으며 다음 화투패를 섞었다. 다음 판에선 아저씨가 맞은편 할아버지의 편이 되어 함께 싸워주었다. 이번에도 아저씨와 함께 화투를 친 할아버지가 이겼다. 신이 난 할아버지가 섞은 화투패 뭉치를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아가야, 네가 한번 떼어볼텨?”


유난히 낯을 가렸던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생소했다. 그러나 좋아 보였다. 나도 낯선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나는 언제가 외갓집에서 보았던 대로 화투패에 손가락을 댔다 떼고는 외쳤다.


“퉁!”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며 박장대소했다.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크게 웃었다.

내가 화투판을 뒤로하고 다음 모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간식 카트가 보였다. 기차 안에는 두 유형의 역무원 아저씨가 있는데, 한 사람은 기차표를 검사하고 다른 한 사람은 간식을 판매한다. 나는 기차표를 검사하기 위해 객실을 돌아다니는 역무원 아저씨를 만날 때면 왠지 모를 긴장감에 손이 젖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땀에 젖은 손을 바지에 쓱쓱 닦곤 했다. 그러나 간식 카트 아저씨는 언제나 반가웠고 기차를 타는 동안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한 세 번쯤은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엄마와 동생이 있는 객실로 향했다. 돌아갈 때는 더 이상 기차의 덜컹거리는 흔들림도, 출입문을 열 때마다 들리는 큰 소리도, 발밑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철길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자리로 돌아와 출입문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문이 열리고 ‘커피나’라고 쓰인 땅콩 스낵을 앞세운 간식 카트가 우리 객실로 들어섰다. 나는 엄마에게 바나나 우유와 오징어를 사달라고 했다. 기차에서 먹는 짭조름하고 달짝지근한 소스가 잔뜩 배어 있는 오징어는 최고였다. 엄마는 작은 맥주캔을 들고 홀짝이며, 내 오징어를 뺏어 먹었다. 한 개만 먹는다던 엄마가 세 개째 내 오징어를 홀랑 집어 갔을 때 나는 항의의 눈빛으로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내게 엄마는 혀를 날름 내밀어 놀리고는 웃으며 맥주를 비웠다.


나는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아껴둔 뚱뚱한 바나나 우유를 만지작거렸다. 기회를 노려 자리를 양보해 준 옆자리 언니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잠시 후 옆자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언니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나는 호기심에 언니가 무슨 책을 읽는지 슬쩍 훔쳐보았는데, 영문으로 쓰인 책이었다. 나는 입이 떡 벌어진 채 언니에게 존경심을 담은 눈빛을 발사하였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산발한 머리와 입에 오징어 소스를 잔뜩 묻힌 내 꼴을 보고 그 정도만 웃어준 게 다행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언니에게 바나나 우유를 내밀었다.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나 주는 거야?”


나는 ‘네’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고마워. 잘 먹을게. 책 같이 볼래?”


언니는 바나나 우유를 받아 들고는 내 쪽으로 책을 기울여 주며 말했다.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참 동안 책을 보는 척했다. 나를 향한 언니의 유난스럽지 않은 그러나 따뜻한 배려가 고마워서 지루해도 금방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청량리역을 떠난 지 2시간 후, 우리 가족은 춘천역에 도착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기차에서 내렸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기차가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안녕, 잘 가. 다음에 또 만나’ 하며 내게 인사하는 듯했다. 나도 기차에 ‘안녕, 다음에 또 봐’라고 짧게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춘천역의 작은 대합실을 빠져나오자, 역 앞 화분에 활짝 핀 여름꽃들이 ‘춘천에 온 걸 환영해’라며 인사해 주었다. 저 멀리 마중 나온 외할아버지가 보였다. 나와 동생은 ‘할아버지!’하고 외치며 뛰어갔다. 그해 외갓집에서 보낸 여름휴가는 짜릿했다. 마음만은 이미 세일러문이었던 나는 좀 더 깊은 개울로 물놀이하러 갔으며 산속을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 땅벌에 쏘여 엉엉 울다가, 할머니가 벌에 쏘인 부위에 된장을 발라주겠다고 하여 기겁하고 도망 다니기도 했다. 또한 아빠에게 투덜거리던 것이 무색할 만큼, 아빠가 기차에서 산 대나무 수저로 야무지게 밥도 잘 먹었다.

경춘선이 우리 가족과 춘천을 이어주던 운명의 끈이었을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 가족은 그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인천을 떠나 춘천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춘천에 살면서부터는 예전만큼 기차를 탈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게 경춘선은 예전 아빠가 말한 ‘우연히 만난 동향 사람’처럼 반갑고 친근하다. 내 기억 속 한 편엔 1999년 여름 경춘선의 그림책 같은 풍경이, 여름을 닮아 뜨거웠던 내 마음이, 봄날처럼 따뜻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기에.

사람들은 경춘선 철길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 누군가에게는 젊음의 생기가, 누군가에게는 실연의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고향의 그리움이, 그리고 나에겐 호기심과 모험으로 가득한 추억이 있다.


사진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경춘선19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