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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May 27. 2023

전세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아무리 두드려도 문제는 생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이곳에 나의 첫 전셋집이 있었다. 정확히는 지유가 어쩌구 저쩌구 대출을 받아 들어가게 된 집이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나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인 지유가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대출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지는 않았다. 물론 대출 이자는 정확히 5:5로 나누어 함께 갚아갔다.  


요즘 '세 사기'가 판을 치고 있다지만 그때는 전세 값과 매매 값이 비슷한 '깡통 전세' 논란이 이슈였다. 우리가 들어간 집도 깡통 전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기에 건축사인 아빠가 걱정을 많이 하셨고, 그의 등쌀에 밀려 보험도 들어놨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험을 들어놔도 이사를 가는 날에 딱 맞춰, 모든 걸 보장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은 2년 뒤에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세탁기, 냉장고 등 모든 게 마련되어 있던 월세집과는 달리 첫 전셋집에는 그야말로 집만 있을 뿐이었다. 아, 가스레인지는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중고 물품 매장에 가게 된 우리는 가전제품에 대해 1도 몰랐기에 지유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적당해 보이는 물건들로 살림살이를 마련하였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아는 능력이 있었다면, NEW 제품들로 살림을 마련했을 것이다. 누가 알았을까 우리가 이렇게 오래 함께 살고 있을 줄은.



"봄아, 다닐 때 사람 많은 길로 다녀야 해"


우리가 이사를 오고 난 뒤부터 갑자기 동네가 흉흉해졌다. 동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들썩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당시 내가 하던 프로그램에서도 이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으니) PC방에서 어린이집에서 길거리에서 예상치 못한 곳들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동네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 불문 집에서 가만히 자다가 죽는다고 해도 그것이 팔자라고 생각하는 편인 나는, 살인 사건들이 우리 집 근처에서 벌어졌음에도 되려 무덤덤했다. 주변 사람들이, 특히 엄마가 내가 해야 할 걱정을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사실 뉴스 속 사건들보다 내가 더 걱정해야 했던 것들은, 이사를 오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집의 하자들이었다. 이전 세입자들의 짐들에 가려져 있던 문제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때마다 집주인이 아닌,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부동산 대표에게 연락을 취해야 했는데, 계약 전에는 똑 부러지던 그는 잡은 고기인 우리에게 깐깐하게 굴기 시작했고, 지유와 나는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그에게 누가 연락을 할 것인가'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켜보던 강서구 사건 사고들보다 더 큰 걱정거리였다.    


"결로란?"

포화 수증기압보다 현재의 수증기압이 높아질 때 물체 표면에 이 응결되어 맺히는 현상을 말한다. 주로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는 저녁 ~ 새벽에 일어나며, 계절적으로는 실내외 기온차가 심한 겨울에 일어난다. (출처 : 네이버)

누가 물감 뿌렸냐

결로의 생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결로'의 생김뿐 아니라, 단어의 존재도 모르고 살았다. 처음에 결로를 접했을 때, 내가 모르는 곰팡이의 종류 중 하나가 벽지를 뚫고 나온 것이라 생각하였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갖고 있는 인터넷 친구들에게 내 방 사진을 찍어 올렸을 때, 그들이 '결로'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곧장 나는 부동산 대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곳을 나갈 때에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 이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두어야 한다는 걸 그와의 몇 차례 대화를 통해 느꼈기 때문이었다.


"집안 온도를 좀 높여서 지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결로'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싶은 그의 말투 속에,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생각이 없어 보임을 느낀 나 역시 알겠다 하였지만. 지금과 달리 '재택근무'보다 회사 출근이 더 잦았던 당시에 집의 온도를 올려놓고 출근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연한 소리를 들은 뒤 얼마 후, 다른 벽에서 '곰팡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인터넷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들의 경험상 도배를 해주는 좋은 집주인은 극히 드물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따로 연락을 취하지 않고 나 혼자 곰팡이를 없앨 방법을 찾아보았다. 일단 미관상이라도 그들을 없애보자는 마음에 쿠팡에서 곰팡이 제거제를 구매해 벽에 발랐고, 신기하게도 3일 만에 곰팡이들은 모습을 감추었다. 물론, 다음 해 겨울에 그들이 여전히 벽지 뒤에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렇게 강력하면 호흡기에도 안 좋은거 아니냐


"세면대가 없는, 언덕 위에 빨간 집"


지금에 와서 지유와 내가 왜 그 집을 선택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전 집보다 집이 넓다, 우리가 받으려는 대출을 허용해 주었다 그 외에는 특별한 장점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우리가 그 집을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건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저희 여기서 추가로 세 달 정도 사는 게 가능할까요?"


출 문제 때문에 퇴거 기한을 세 달 정도 연기 하고 싶었다. 부동산 대표에게 연장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연기는 확정해 줄 수 있으나 기간은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답변과 함께 '새로운 임차인이 등장할 시 한 달 일찍 집을 비워줘야 할 수도 있다(?)'는 우리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한 답변을 받았다.  지유와 나는 그를 설득하거나, 부탁이라는 것을 더 이상하고 싶지 않았기에 원래 계획대로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였다.


계약이 끝나기 두 달 전부터 집을 보고 가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도 다음집을 위한 발품 팔기를 시행 중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한 우리는 그날 바로 부동산 대표에게 이사 날짜에 대한 언급을 한 번 더 해두었다.


"다음 세입자가 생겨야, 돈을 줄 수가 있어요"

 

이 집 들어올 때, 전세보증보험을 들 때, 걱정 말라고 깡통전세 그런 거 없다고 했던 분 어디 가셨죠? 문자를 보고 발작버튼이 눌린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소송까지 할 생각으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마음에 드는 집은 가계약도 못하고 보내줘야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건 '임차권등기' 뿐이고, 집 빨리 나가라며 말도 안 되는 미신 중 하나인 '현관에 가위 거꾸로 걸어두기'를 시전 하였다는 것. 그만큼 우리는 이사에 진심이었다.



가위의 위력 때문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집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생겼고 우리는 무사히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다음 집에 대한 체크리스트 또한 훌쩍 늘어 있었다.

탈출(?) 축하한다고 케이크 해 온 친구

<체크리스트>

- 가장 중요한 금액 (+관리비)

- (계약 전 등기부등본 확인을 위한 정확한) 주소 및 연식

- 거실, 방 개수 및 크기

- 엘리베이터, 도어록, 베란다 여부

- 샷시

- 화장실, 세면대, 창문 여부

- 부엌 수압

- 곰팡이, 결로 흔적 (제거 스프레이 있는지)

- 옵션 : 냉장고 / 에어컨 / 세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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