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e Min Oct 15. 2023

수면제

기이한 너의 수면 패턴

너는 첫 직장 이후 약 없이는 자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행을 떠날 때 네가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수면제였다.

약을 놓고 떠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다시 약을 가지러 간 적도 있었다.


너의 수면 패턴은 기이했다.

어느 날은 빨리 자기 아깝다며 새벽 5시까지 필사를 하고 다이어리를 꾸미고 라벨지를 뽑으며 놀았다.

어느 날은 저녁 20시부터 졸리다며 일찍 전화를 끊고 자자고 한 적도 있었다.

또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질 못해 여러 번 내 전화의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네가 먹는 약의 개수는 상당하다.

잠에 잘 들지 못하고, 새벽에 수시로 깨고, 깊은 잠을 이어 나가지 못했으므로

너는 농담 삼아 저녁에 먹는 약만으로도 배부르다고 했다.


너는 무언가에 꽂히면 밤잠도 잊어간 채 그것만 하는 사람이다.

필사 노트를 옮겨 담아야 했을 때 너는 새벽 네 시까지도 약을 먹지 않고 버티며 필사를 하던 사람이다.

아이패드로 드로잉을 배웠을 때 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새벽까지 몇 장의 그림을 완성해냈다.

책을 읽을 때면 목표를 정해두지도 않고 닥치는대로 읽기만 했다.


새벽에 너는 자유롭게 놀고 있었으나 내 눈에 너는 도망치는 것 같았다.

그 버거웠던 현실로부터 새벽이라는 시간에 잠 대신 못한 일을 해 가며 현실 도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때로는 잠으로 도망친 날도 많았기에 너의 수면 패턴을 나는 지금도 이해하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를 알려 준 네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