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필사 노트

존재하지 않는 딸

앞서 나는 너에겐 장르를 가리지 않는 너만의 필사 노트가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 안에는 책에 몇 페이지를 옮겨 적은 것들과

드라마나 영화 속 대사들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들도 있다.

사흘 전에 구입했던 너의 노트는 이미 절반을 넘어 상당 부분이 적혀 있었다.

너의 잠, 식사, 휴식과 맞바꾼 결과였다.

나와 통화를 하면서

너는 그 노트를 있지도 않은 딸에게 물려 줄 거라고 했다.

이 노트로 한글을 떼고, 인생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와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이미 협의한 상태였다.

네가 먼저 제안했던 일이다.

그랬던 네가 요즘은 자꾸 딸에 대해 얘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네가 그 아이에게 그 노트를 물려 줄 일은 없을 거라는 걸.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다. 우리에겐 딸이라는 존재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네가 무언가에 빠지게 해 준 원동력이 되어 준, 존재하지도 않는 그 딸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그 딸에게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너를 말려야겠다.

너는 자학적으로 그것에만 매달리고 있으므로

왜 너는 정도라는 것을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