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el Cruise 2016에서 찾은 '문화적 전유'
‘문화적 전유(도용)’란 어느 한 문화집단이
다른 문화집단의 전통문화를 자신의 것인 양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해 타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 없이
그저 겉모습만 카피한 상황을 일컫는다.
예로는 블랙페이스 분장,
타문화인의 드레드록스 헤어 스타일링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어색한 표현일진 몰라도,
다른 문화권에선 꾸준히 대두되고 있는 문제이다.
가끔 K-pop 아이돌 의상에서도
해당 종교의 상징물 사용, 드레드록스 헤어 등
타문화의 스타일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해당 문화인들은 그들의 고유한 전통을
가볍게 다루고 모방함에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듣기 쉬운 단어가 아니기에,
단어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적 전유’라는 정의를 이해하고 있고,
패션에 집중해 온 당신이라면
이 컬렉션을 모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에 '문화적 전유'라는 평으로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컬렉션,
Chanel Cruise 2016.
컬렉션을 통해 ‘문화적 전유’를 소개한다.
Chanel Cruise 2016은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의 볼륨감과
대담한 색상 조합 등 다양한 한국의 미를
당시 샤넬의 수장, 칼 라거펠트가 풀어낸 컬렉션이다.
그는 K-드라마, K-pop의 흥행을 치켜세우며
한국 패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컬렉션이 한국에서 열리고 또 한국의 미를 풀어낸 만큼
칼 라거펠트의 하이패션은 독창적이고 신선했다.
인터뷰에서 언급한 ‘조각보(패치워크)’의
재해석도 보여주면서
다채로운 컬러의 조화도 함께 즐기도록 했다.
곡선구조의 쇼장과
컬러 도트가 새겨진 스테이지 위를 걷는 모델들은
동양화나 동양의 인형처럼
모두 인조 속눈썹으로 눈 아래를 강조하고
라인으로만 눈썹을 그리며 오리엔탈 무드에 집중했다.
‘영감’인가 ‘모방’인가?
무엇을 ‘문화적 전유’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를 구분짓는 핵심 요소는 타문화에 대한 ‘이해도’이다.
이는 영감을 받은 타문화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이며,
문화를 수용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절차이다.
그래서 보통 타문화에 영감을 받은
컬렉션(미디어, 스타일링 등)에서는
해당 문화의 장인과 함께 콜라보를 하거나
정확하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진행한다.
타문화의 수용과 재창조를 위한 노력으로
그들이 느낀 ‘영감’을 잘 풀어낸다면
그들의 작품은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Chanel Cruise 2016에서는
한복에 대한 이해도가 보이지 않고,
다소 불편한 부분들이 눈에 띄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위 3가지 착장을 살펴보면,
샤넬이 놓친 '한복의 이해도'가 보인다.
한복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직선’의 연속이다.
어깨선과 치마도 물론 모두 곧은 직선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샤넬 측은
직선의 패턴이 겹겹이 쌓여 표현된
한복의 ‘볼륨감’을
‘옷의 단편적인 구조’로 오해석했다.
그 예로 첫 번째 사진을 보면,
저고리의 겨드랑이 부분이 접히는 형태를
단순히 눈에 보이는 표면으로만 따 와
곡선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2번 착장에서 재킷 라펠 부분은
저고리 깃 부분을 형상화한 듯 보인다.
기존 한복의 깃은 동정에 의해 겉이 마감되는데,
그저 장식적 요소로만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번 째 착장에서 치마 부분을 살펴보면,
허리 부분에 약한 턱(TUCK)을 주어
치마를 볼륨있게 장식했다.
한복 치마는 일정한 너비 폭만큼
한 방향으로 계속 주름을 접어 주는 형태인데,
그저 한복의 외형만을 모방한 것이라는
인식이 바로 들 정도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들은 한복의 기본적인 구조적 특징을 놓치고
형태를 변형한 셈이다.
Not ORIENTAL but “KOREAN”
컬렉션의 무드에만 집중해서 보면,
한국적인 요소들이 조화롭게 풀어진 듯하다.
하지만 룩들을 하나씩 떼어보면,
KOREAN 스타일이
그저 ORIENTAL 스타일로 표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앞서 말한 한복의 구조적인 이해도를 떠나서
그들은 그저 한국을 ‘동양적인 스타일’의 일부로만
여긴 건 아닐지 의문이 든다.
위 착장들은 한복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실루엣과 라인들을 가지고 있다.
실루엣은 길고, 슬림하게 떨어져
중국의 치파오를 연상시키는 착장이다.
얼핏 보면 '한국과 한복'이 주제인지
잘 가늠이 안 갈 정도다.
머리 장식으로 쓰인 ‘가채’ 또한
동양권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국가별로 그 형태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모델들이 착용한 가채는
다른 동양권의 디자인으로 된 경우도 많았다.
다시 말해, 문화적 요소들을
‘겉핥기’ 식으로 전유했다고 볼 수 있다.
구조와 형태를 모두 깨 버린 착장의 등장은
‘문화적 전유’를 충분히 의심해 볼만 했다.
서구의 시각으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권의 문화를 모두 ‘동양풍’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을 주제로 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만큼,
마땅히 동양 문화의 일반화는 지양했어야 할 부분이다.
동양에 대한 환상과 왜곡
‘문화적 전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타문화의 전통이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위 3가지 착장을 보면
전통 의복인 한복에 섹슈얼한 요소들을 더했다.
보통 서구에서 동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환상이 어김없이 드러난 착장이었다.
#샤넬에서 풀어내는 #다채로운 스트라이프
#드레스가 컬렉션의 주제였다면,
전혀 문제 될 일 없는 드레스이지만
타문화 주제의 컬렉션에선 매우 무례할 수 있는 해석이다.
샤넬에서 해석한 '한국적 미와 한복'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건 아니다.
다만 타문화를 수용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지식과 전통을 무너뜨리지 않는
절충선을 충분히 찾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아름다운 해석은 존재했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타문화를 향한 존중을 통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에,
‘문화적 전유’에 대한 문제는
각국 전통의 헤리티지를 더 예민하고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사진출처: WWD, VOGUE, Marie 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