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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 Oct 04. 2023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세 가지 덕목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나는 그 애의 양극성에 깊은 애정을 느끼는 것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꼽는 그 애의 키워드는 장난스러움이거나 말괄량이, 또는 솔직함일 것이다. 간혹 도가 지나치게 솔직할 때면 주변 친구들이 대신 해명하거나 손사래 치는 경우도 있었다. 무례에 가까운 발언에 당황하면서도 가끔 나로선 차마 뱉지 못할 말을 그의 입을 빌려 듣고 속 시원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 애와 우정을 쌓은 지 올해로 꼬박 15년이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그를 무척 사랑하기도, 한때는 이해할 수 없음에 열심히 미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날엔 그만 멀어져야겠다고 마음 먹은 적도 있었다. 시간으로 우정의 깊이를 판단할 수 없으나 당시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큰 존재여서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일상을 지옥으로 바꾸어둘 수 있는지를. 나의 결심에 그애는 변하겠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고 반신반의로 믿었던 것이 살며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가 되었다. 그가 변한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믿음이 깨끗히 사라졌다. 나와 약속을 지금껏 지키고 있는 그가 곁에 있으므로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달라지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나조차 내가 밉고 이해되지 않을 때 그럼에도 변할 수 있다며 격려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나와의 우정을 지켜준 덕에 나의 삶은 꽤 많은 부분이 변했다.


대개 사람들은 그의 사려깊고 진지한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따금 친구들 속 한데 섞여 아무 걱정 없는 듯 맑게 웃는 얼굴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틈으로 그가 내게만 보여준 조용한 모습들을 몰래 비추어본다. 내가 겪는 힘든 일을 그에게만 고백한 날, 사람들 틈에서 내 안색을 살피며 괜찮냐고 귓속말로 물어보던 때. 그 애의 집에서 자던 날 홀로 출근하며 내 잠을 깨울까 살금살금 움직이던 걸음걸이. 같이 에어팟을 나누어 낄 때 본인이 듣고 싶은 노래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꽉 채워두며 흡족해하던 표정. 출장용 가방에 몰래 숨겨둔 간식과 편지. 나도 기억나지 않는 호의를 꼭꼭 기억했다가 베풀어주던 살가운 마음씨. 나의 숙제는 좋아하는 친구의 세 가지 덕목을 적는 것이었는데 그에 비해 알고 있는 덕목이 매우 많아 글이 구구절절이었다. 아무튼 결론은 나는 앞으로도 그 애를 오랫동안 사랑하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그의 앞에 서면 나는 아주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모든 단점도 실수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오롯이 나라는 사람 자체로 마주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우정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애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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