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oyage Apr 14. 2023

연약하지만 묵묵히 반짝일 하나

다정 is free

수시로 강박처럼 누군가에게 다정해야 함을 다짐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피곤할 때, 귀찮을 때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말지만 그래도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어김없이 다짐하게 된다. ​

말이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사사로운 응원이 삶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돈이 드는 것도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일 수도, 빗길에 운전 조심하라는 걱정일 수도 있다. 내일은 날이 춥다니 따뜻하게 입으라는 당부일 수도 있다. 다정을 건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내 안에 이러한 믿음이 자라게 된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평범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내며 불안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았다. 당시 내 이런 상황을 잘 알던 어른이 있었다. 친한 친구의 엄마였다. 나는 종종 불가피하게 그의 집에서 자야 했고, 한동안은 살기도 했다. 우리 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기 때문이다.

친구의 엄마는 별다른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왜 집에 갈 수 없는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그래도 집에 가야 하지 않겠는지 등등. 돌이켜보면 나를 위한 배려였고 지켜주기 위한 상냥함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른이 된 내가 그런 아이를 마주한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참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때는 추석이었다. 친구의 엄마는 친구에게 명절 용돈을 주셨고 나에게도 주셨다. 내가 받아 든 봉투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세상의 중심이 될 사람에겐 많은 일이 일어나는 법이란다.”


그 말을 읽고 나는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 되지? “라는 분노와 슬픔으로 괴로웠는데, 비로소 받아들일 힘이 생긴 것이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어 성인이 되기까지. 그 말은 나의 어딘가에 남아 자꾸만 살게 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간혹 위기를 마주칠 때마다 그 말을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러면 나는 넘어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토록 무거운 다정

요즘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시한 다정을 건넨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이 예쁘면 찍어 보냈고, 어느 날 유달리 파란 하늘을 찍어 보냈다.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파도 소리를 담아 보냈고, 보름이면 밤하늘에 뜬 달을 보냈다.

그러면 답이라도 하듯 내가 힘들 때 하나둘씩 나서 손 내밀어주었다. 우울에 갇혔을 땐 문 두드려주는 사람이 나타났고, 내가 주저앉아있으면 업어서라도 일으키겠다는 사람이 생겼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에 밤부터 아침까지 응원의 메시지를 빼곡히 적어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구구절절 설명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 순간마다 여태껏 내가 전한 다정의 실체를 마주한다. 그것이 결코 사사롭지는 않았음을 또다시 깨닫는다.

종종 나는 그들이 모여 이룬 집합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따금씩 그들의 다정을 받고 자라 지금의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다짐한다. 작은 폭풍에도 무너질 마음이겠지만, 한 줌의 햇볕으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건넨 다정이 돌고 돌아 언제고 다시 내게 올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keywo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