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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Dec 11. 2023

스트레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디스토피아

21세기 인터넷 시대, 진정한 위너는 고양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사랑받고 있는 동물이 고양이다. 동서와 좌우를 막론하고 고양이 동영상에는 모두가 서슴없이 좋아요를 누른다. 나도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외형도 아름답지만 그 움직임이 조용하고 우아하다. 게다가 개처럼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 주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재롱을 떨거나 간식을 무기로 한 훈련 따위 받지 않는다. 즉, 종이 아니라 주인 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이 때문에 오히려 고양이의 관심을 얻고 싶은 사람이 고양이 앞에서 재롱을 떠는 사태가 발생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자기를 고양이 “집사”라고 부른다.


또 고양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상에 급한 일이 없다. 하루 12시간을 잔다는 고양이는 느긋하고 매사 태평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어딘가 세상을 초탈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어디에서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데, 냉장고나, 담벼락이나, 지붕 위에 올라서 느긋하게 앉아 우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꼴이 마치 바쁘게 사는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지 않았을까? 인간 사회를 비꼬고 풍자하기에 고양이의 시선이 적합했기에.


널 항상 얕보진 않는데 고양이라서 사실 얕봄.

게임 <스트레이>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게임 버전이다. 게임의 시점은 인간이 아니라 고양이. 게임은 배경 설명 없이 치즈냥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게이머는 치즈냥이 되어 뛰어난 균형 감각과 점프력을 이용해 보통 인간이 지날 수 없는 세상 구석 구석을 탐색할 수 있다. 좁은 통로를 지나거나, 건물에 연결되어 있는 배관선, 에어컨, 공사 현장의 빔 위를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다. 야옹 소리를 내거나 나무 껍질이나 카펫에 스크래치를 할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고양이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고양이에게 센서를 부착해 모션 캡처를 했다고 하니, 정말 귀여운 고양이를 보는 듯한 사실감이 있다.

<스트레이> 주인공 치즈냥.

그러다가 우연히 커다란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컴컴한 하수구에서 시작해 빠져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찾기 위해 조금씩 주변을 탐색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어딘가 이상한 세계라는 걸.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황폐해진 도시에는 인간을 닮은 로봇만 있다. 도시는 쓰레기로 넘쳐나고 쥐를 닮은 이상한 생명체가 떼로 돌아다니며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달려들어 먹어치우고 있다.


그러다 길동무 로봇 B12를 만나게 되는데, 기억을 잃은 B12는 노랑이와 함께 세계를 탐색하면서 조금씩 기억을 되찾아 간다. 어쩌다 지구가 로봇만이 남은 이런 황폐한 세계가 되었을까?

노랑이 길동무 B12.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쓰레기 가득한 슬럼에서 시작한 여정은 위를 향한다. 슬럼가에서 시작해 앤트 빌리지를 지나 미드타운에 도착하고, 관제탑에서 끝이 난다. 각 층 주민들과 대화를 해보면 예전에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아래에서 위로 소통이 가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 엘레베이터가 작동이 멈추고 파란 하늘을 몇 백년 간 보지 못한 슬럼가 주민들은 바깥 세상이 신화라고 믿거나, 슬럼가를 자기 운명으로 받아들여 자포자기한 상태다. 슬럼가를 벗어나려고 한 모든 로봇은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슬럼을 벗어나려다 죽음을 맞이한 로봇을 보며 B12는 인간을 떠올린다.


인간 또한 위로 가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친다. 그래도 예전에는 노력이 어느 정도 보상되었던 것 같다. 가난하게 태어나도 열심히 일하면 내 집도 마련해 가족들도 먹여 살리고, 은퇴해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회 이동성 가능 인식은 2006년에서 2015년까지 계속 줄고 있다. 즉, 요즘 젊은이들은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현재의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잘 갖지 않는다. 위로 올라갈 엘레베이터가 파괴되어 자포자기한 슬럼가 주민들을 보며 오늘날의 청년 세대가 떠올랐다. 그럼 엘레베이터를 누가 파괴했나?

사회이동성 가능성 인식 통계

그 주범은 미드타운에 도착해서 밝혀진다. 여차저차 도착한 미드타운은 정말 예쁘다. 홍콩이나 마카오의 밤 풍경을 연상시키는 거리. 알록달록한 네온 불빛으로 환히 밝혀진 디스토피아적 밤 도시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슬럼가와는 달리 라멘집, 술집, 클럽, 이발소, 주거지 등 사람 냄새(?)가 나는 듯 하나, 여기에도 사람은 하나도 없고 로봇뿐이다. 고양이가 되어 미드 타운을 돌아다니며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다.

홍콩 밤거리를 연상시키는 미드타운.

미드타운을 지배하는 두 축이 있는데, 바로 센티넬과 네코 코퍼레이션이다. 이 둘은 각각 감시/통제와 부패한 기업을 대표한다. 센티넬은 돌아다니며 미드 타운 주민들을 감시하며, 즉각 체포하거나 사살한다. 네코 코퍼레이션은 쓰레기 처리 회사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들이 운영하는 공장에는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물론 주인공인 치즈냥은 공장에 잠입하게 되는데, 그 안에 센티넬이 많이 깔려있다(정경 유착이냐?). 그리고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슬럼가로 내다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쓰레기 처리하는 회사가 한다는 짓이 결국 이런 것이었던 거다. 자기 쓰레기를 이웃에 마구잡이로 버리는 이런 이기주의적인 행태. 북미와 유럽 국가가 자기 플라스틱 쓰레기를 매년 멕시코, 말레이시아, 인도, 베트남과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보내는 행태와 아주 닮았다.


이 네코 주식회사가 바로 엘레베이터를 파괴한 주범이다. 네코 주식회사에서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박테리아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 박테리아가 넘쳐나는 쓰레기 속에서 변이를 일으켜 저크라는 생쥐를 닮은 괴물이 된다. 저크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슬럼가로 밀어내고 슬럼가와 미드타운을 잇는 엘레베이터를 끊어버린 것. 재밌는 건 미드타운 주민들은 아무도 왜 엘레베이터가 갑자기 멈춘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부도덕하고 부패한 회사의 행태는 물론, 정경 유착을 통해 주민들을 감시하고 언론까지 통제하는 센티넬과 네코 주식회사의 행태가 왜이리 익숙한 것인지. 인간이 사라져 버린 세계인데, 인간이 개발한 로봇이 인간을 판박이처럼 따라하고 있었다.

항상 감시 중인 빅브라더 센티넬.

산전수전을 겪은 후 치즈냥은 드디어 관제탑에 도착한다. 관제탑은 이 게임에서 나온 환경 중 가장 깨끗하고 익숙하다. 공항 라운지처럼 깔끔하고, 로봇들은 다른 도시에서와는 달리 청소를 하거나 건물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마 인간이 있었을 때에 로봇들은 이런 역할을 했었을 것이다. 벽 곳곳에서는 “Walled City(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는데, 정말로 도시 전체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관제탑에 들어가면 B12와 함께 협력해 도시를 개방할 수 있다. 관제탑에서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지붕이 열리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장면이 장관이다.

인간은 넘쳐나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네코 코퍼레이션)을 필두로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박테리아를 개발한다. 그러나 이 박테리아가 문제를 일으켜 전염병이 발생하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벽으로 둘러싸인 지하 벙커 도시를 만든다. 그러나 벙커도 안전하지 못했다. 인간은 전멸하고, 인간을 보조하던 인공 지능을 탑재한 로봇들만이 남아 인간 흉내를 내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인간이 사라진 벙커 밖 환경이 자연 치유되자 치즈냥이 벙커로 들어가 도시를 개방하게 된 것이다. 도시를 개방하고 치즈냥이 도시를 나가면, 긴 모험이 드디어 끝이 난다.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치즈냥이 의미심장하게 게이머를 휙 돌아보는데, 마치 “이제, 어떻게 살꺼야?”하고 묻는 것 같다.


환경 문제와 전염병이라는 키워드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고양이의 관점으로 인간 사회를 조망하게 한 이 게임, 가히 예술적이다. 고양이의 시점으로 본 인간들이 얼마나 우습고 우매한지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다. 재밌는 건, 고양이에게는 그 어떤 곳도 살만해 보였다는 거다. 슬럼가도, 앤트빌리지도, 미드 타운도, 고양이인 내 시점에서는 그게 그거였다. 난 고양이라서 내 한몸 뉘일 곳 있으면 어디서든 웅크리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인간 사회를 닮아 계층화된 지하 벙커 도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귀여운 냥이. 어디서든 잘 살 수 있다.

또 비주얼이 끝내줬다. 홍콩 도시 카우룽에서 영감을 얻은 사이버 펑크 도시와 이에 걸맞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어우러져 멋진 세계를 만들어 냈다. 고양이가 되어 이 세계를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 인간 문명의 종말의 원인이 쓰레기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쓰레기는 왜 생기는가? 대량 생산과 자본 주의의 산물이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인간 문명이 욕망을 부추기고 채우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게임 스트레이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가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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