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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김 Oct 24. 2024

현덕과  미영 2편

함께한 에포크

점심을 함께 먹게 된 친구의 이름은 현덕. 꽤나 도도해 보여 가까워지긴 힘들 것 같다. 작은 눈에 동글동글한 얼굴이 아주 예쁘진 않지만 매력 있는 얼굴 이었고 의류학과 지망생이라 그런지 옷에 관심도 많고 잘 사는 집 아이였다. 촌티나는 우리랑은 많이 다르다. 아니 왠만큼 옷을 잘입는다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좀 많이 튀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말하는 게 애가 참 성격이 수더분하다. 우리 셋은 겉모습도 성격도 다르고 사는 곳도, 살아온 가정환경도 다 각기 달랐으나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겨울이 다가올 즈음 길을 걷다 내가 말했다.

‘아~ 겨울냄새!’

옆에 같이 길을 걷던 현덕이가 말했다.

‘와~ 너도 겨울 냄새를 아는구나. 맞아. 이게 겨울 냄새지.’

하면서 우린 마주보고 웃었다.

서로의 한마디 한마디에 깔깔대며 웃는 우리는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아니 어쩌면 고등학생 때 미처 경험하지 못한 여고생의 풋풋함과 순수함을 마지막으로 발산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무언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사이 우리는 대학이라는 낯선 곳과 문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고 남들은 다들 잘해나가는 것만 같아 그것이 우리를 절망스럽게 하는 도중 빠른 변화에 적응을 실패한 사람들끼리 만난 것이다.

기숙사 꼭대기 층에는 다 같이 모여 영화나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떡볶이나 빵 같은 간식거리를 사 와 같이 나눠먹으며 놀던 추억, 대학로에서 2500원짜리 떡볶이를 먹고 1시간에 3000원짜리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를 부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서 키가 큰 미영이가 키가 작은 내 가방에 손을 올려놓으며 장난스레 걷던 모습, 룸메이트 언니가 집에 내려갈 때면 같이 방을 쓰며 밤새 두런두런 얘기 나누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우린 셋이 함께 하기 위해 같은 동아리를 들어가기로 했다. 동아리 모집기간은 한참이 지났으나 미영이가 먼저 들어가 있던 동아리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에포크’라는 곳으로 한 때는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하던 사회운동동아리였다고 하지만 우리 때에 와서는 정체성을 잃은 채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다시 말해 술동아리였다. 문제는 그곳 동아리 회원들 전원은 공대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체 동아리였지만 술 외에는 하는 일이 딱히 없어 알음알음 들어가게 되는 구조라 그런지 공대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영이가 공대생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차저차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게 참 사실은 우린 그곳에서도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현덕이와 나는 공대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어떤 벽이 있었다 치더라도 미영이는 같은 공대생인데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뭐가 그렇게 우리와 달랐던 것일까.

 우선 공대의 여신과도 같았던 여자애들의 영향이 컸다. 공대에 여자애들이 흔치 않은 것은 알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먼저 터를 잡고 있던-물론 우리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정도지만- 여자애들은 보통, 그러니까 우리 삼총사 보다도 훨씬 예쁜 축에 속한 무리였다. 우린 현덕이 정도나 옷을 잘 입고 해서 좀 나아 보였지 다 평범하고 아직 고등학생 테를 벗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뒤에는 더 나아졌다고도 말하기 어렵다만. 쩝.

 무리들은 우리와 겉으론 친한 척했지만 결코 친해질 수 없는 무리였다. 벽을 치고 그들만의 대화를 했고 특히, 예쁜 척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당시 유행하던 띠가 굵고 컬러풀한 머리띠에 앞머리를 내고 예쁜 가디건에 미니스커트를 그들은 입을 수 있었고 우린 할 수 없는 종족이었다. 그만큼 우린 종이 달랐다. 그리고 소외감을 느꼈다. 그런데도 우린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1년은 버텼다. 동아리 모임에 나가기 싫었으나 우리가 여기서도 적응 못하면 다른 데서도 적응 못한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각자 학과가 다른 삼총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러다 농활이라는 것을 가게 되었고 내가 동아리 들어가서 제일 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농활에서도 우린 셋이서만 주로 어울렸지만 그곳의 자연환경과 분위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무주 어느 고지대에 있는 배추밭으로 트럭 뒤에 타고 더운 바람을 맞으며 가는 길에 보이던 아름다운 풍경, 배추를 심으며 국수 새참을 먹었던 기억, 힘든 농사일에 소주를 맥주 글라스 잔으로 벌컥벌컥 들이켜던 되간한 아저씨의 모습, 앵두를 따먹고 밤에 술사러 나가며 보이던 쏟아지는 별들, 같이 온 옆 동아리 잘생긴 남자애에게 시선이 가던 일, 동아리 내 커플이 된 누구누구에 대한 이야기 까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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