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흐르는 대로
한여름 낮 매미가 맴맴맴. 아주 우렁차다. 울창한 나무아래 서 있으면 매미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다. 폭염 속 인적이 드문 낮시간 매미소리는 적막을 깨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적막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 고요하고 뜨거운 한낮에 매미소리마저 없다면 과연 우리는 거대한 고요를 견뎌낼 수 있을까.
어릴 적 낮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의 고요함을 기억한다. 막 낮잠에서 깨어난 어린 나에게는 온 세상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풍경만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에 생명체라고는 나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쓸쓸함을 어린 나는 감당하기가 어려워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어디선가 오빠가 나타나 ‘ 일어났어?‘ 하고 말을 건넸고 그제야 안심하고 울음을 그쳤다. 오빠도 없을 때면 나 혼자 울다 텔레비전 소리라도 듣기 위해 텔레비전을 켜야 안심이 되었다. 그때 매미소리라도 있었더라면 나의 감당하기 힘든 쓸쓸한 순간이 좀 더 줄었을까.
나는 늘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견딜 수 없는 고요함을 느껴본 적 있는지. 몇 해 전 어느 책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 같은 경험을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고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매미를 나는 H2라는 만화책에서도 보았다. 작가는 한여름 낮 풍경 그림을 그려놓고 맴맴— 이 문구 하나로 만화책 한 장을 다 채워 넣기도 했다. 만화 속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풍경과 함께 견디기 힘든 더위를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는데 실제 만화 속 주인공은 그런 한낮에 야구를 연습하기도 하고 경기를 하기도 한다. 야구를 향한 열정과 수고로움을 풍경과 매미소리가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기에 그런 말없는 풍경이 담긴 여백을 나는 참 좋아했다. 만약 만화 속 풍경 속에서 ‘맴맴—’ 이 문구가 없었다면 그 분위기를 표현할 길이 달리 뭐가 있었을까. 그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읽어주던 책에서 매미의 생태에 대한 내용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따르면 매미의 수명은 7년이 넘는다고 한다. 의외로 한해살이 곤충이 아니었다. 여름에만 잠깐 나와 큰소리로 울어대는 매미는 성충일 뿐 성충이 되기 전 굼벵이 시절이 7년이나 된다. 눈도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7년을 살던 매미는 성충이 되어 바깥으로 나와 짝을 찾기 위해 그렇게도 애타게 울어대는 것이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암컷 매미는 울 수조차 없다. 우리가 듣는 매미소리는 수컷매미의 암컷을 부르기 위한 노래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짝짓기를 마친 매미는 곧이어 죽는다. 물론 짝을 찾지 못한 매미도 죽는다. 그러니 여름이 깊어 가을이 오기 직전까지 울어대는 노총각 매미는 얼마나 마음이 초조할지 상상이 되는가. 그 글을 읽은 뒤로 나는 매미소리가 들릴 때마다 너무나 귀하고 안쓰럽다.
더 크게 울어라 매미야. 7년을 굼벵이로 살며 지금 이 짧은 순간을 위하여 버텨왔으니 맘껏 원 없이 울어라. 그렇게 너의 삶을 완성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