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김 Nov 13. 2024

너의 것이어도 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즌이 돌아왔다. 이맘 때쯤이면 상급기관에서는 인사 관련해서 여러 공문들을 보낸다. 그 중 각종 분야의 수상 계획을 수두룩 보내온다.

우리는 가뿐하게 스쳐넘긴다.

귀찮다는 듯이.

우리와는 관련없다는 듯이.


그러다 대뜸 밑에 직급의 직원에게 수상자 추천 명단에 올려보자는 제안을 해보았다.

요즘 mz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 직원은 요즘 애들과는 좀 다르게 많이 협조적이고 나처럼 오지랖 넓은 직원이다. 그러다 자기 일은 살짝 늦춰지는, 나를 닮은 직원이어서 안쓰러운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반응 역시 나를 닮았다.

" 그런 건 진짜 뭐 있는 사람이 하는거 아니에요? 아니면 아는 사람이 있던지..에이 안할래요.  "

이 말에 순간 당황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에 상을 받았다. 내 경력에 아직도 그런 상이 없다는 것에 다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런 상은 본인이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든지 상사의 권유가 있어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내가 자랑스럽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권유에도 거절을 해왔다.  

퇴직 앞둔 분들의 공적조서를 대신 써주기는 해봤어도 나를 자랑해야 하는 공적조서는 쓸 자신이 없었다.

'내가 무슨 상이야.. 상은 아무나 받나'

그러다 고집센 추천인을 만났고

'나도 경력이 꽤 됐으니 하나 정도는 받아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러겠다고 승낙을 했다.

그러나 공적조서를 쓰면서도 특별한 공적이 없어 곯머리를 앓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공적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을 못하는 걸까?

특별할 것은 없었어도 내 일을 해왔다.

오리가 물 속에서 발을 열심히 구르고 있듯이 티나지 않게,

큰 물의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내 할 일을 해왔다.

설국 열차 속 제일 밑 칸에서 연료를 넣고 있는 사람들처럼 아무도 모르게. 1등칸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싸울 수 있는 것 조차 연료를 넣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도 모른 채로.

그럼 나는 공적이 없는 것일까.  


나의 경우 성격적 결함이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드러나지 않는, 혹은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실적에는 관심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상은 늘 타던 사람이 타고 늘 먼저 욕심내는 사람이 탄다. 나와 같은 부류들은 그저 옆에서 내 것이 아닌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런 경험을 나도 겨우 작년에 해보긴 했으나 이제 2-3년차의 나이 어린 직원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니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아직도 후배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놔두었을까.

내가 느끼던 것을 똑같이 느끼게 놔둔 내 세대가 부끄러웠다.

물론 진짜 쿨하게 그 따위 상 필요없다! 라고 생각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아직도 그런 세상이라는 것에 지레 포기해버리는 마음이 깔려있지는 않았을까.

별 것없는, 지연도 학연도, 심지어 욕심도 없는 이들은 이런 혜택들이 자기에게 오지 않을거라 믿고 있는 현실이 싫었다.

 나 역시 아무런 것 없이 그저 나를 보고 추천해주신 상사분이 없었다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며 상 하나 받지 못하고 퇴직했을 지도 모른다.


별 것없는 내가 받고 나니 별 것없는 내가 나서서 그까짓 상 받게 해주고 싶다.

받아도 된다고.

충분하다고.

실적이 눈에 드러나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열심히 애써주고 있으니 직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그게 제일 큰 실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별것 없는 내가 추천자 명단에 올려준다고 해서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가능성이 0%는 아니지 않은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이런 나라도 괜찮겠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