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사에서 만난 부부 따라 툴루즈에 가다

20대 청춘을 만난 툴루즈 여행

by 김별


우연이 선물한 툴루즈 호스트와의 인연


프랑스 한 달 여행을 기획하며 막연하게 20대에 5년을 살았던 툴루즈를 가봐야지 했는데 우연히 호스트를 받으며 3박 4일을 머물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디종에서 “서바스 국제총회”에 참석 중이었는데 첫날 저녁 마침 툴루즈에서 온 피에르를 만나게 되었다. 이런 걸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나 할까? 내가 항상 믿는 여신(여행의 신)이 도운 것이다. 피에르의 아내 브리지트가 프랑스 서바스 회장이었기에 나는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호스트를 받아들였다.


디종에서 행사를 잘 마치고 우리는 하루 더 머물렀다가 피에르 브리지트 부부의 자동차를 타고 툴루즈까지 내려갔다. 프랑스 중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내륙 경로를 따라 약 650km 정도, 6~7시간의 여정 동안 프랑스의 대표적인 센트랄산맥 (Massif Central)과 구릉지,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피에르는 중간중간에 자동차를 세우고 우리에게 주변 경치나 풍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디종에서 툴루즈까지 자동차여행


낭만적인 여정과 서바스 정신이 담긴 대화


함께 가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뒷자리에 함께 앉은 브리지트와 가족이나 일과 은퇴, 그리고 우리의 공통분모인 서바스 활동에 대해 두루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는 회장을 투표로 선출하는데 그녀는 지난 3년에 이어 다시 재선되어 연임으로 4년째 서바스 회장 일을 맡고 있었다. 얘기를 나누면서 원칙과 목표는 고수하되 회원 간 열린 소통을 통한 조율과 균형을 이루는 그녀의 역할이 느껴졌고 그런 장점은 책임 있는 사회복지사로 일한 그녀의 지난 경력이 밑받침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녀는 세계평화를 지향하면서 호스트조직이기도 한 서바스가 단지 숙식과 가이드의 역할뿐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게스트를 받아드리는 단체라 보며 그러하기에 자신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호스트 (host)란 말보다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는 불어로는 'accueillir' (welcome)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그 말은 물질 문뿐 아니라 마음의 문도 활짝 열어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뜻이니 나 또한 감동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클레르몽페랑을 지나고 붉은 벽돌 건물의 알비와 툴루즈로 내려갈수록 산맥이 완만해지고 포도밭, 포도주 농장으로 이어지며 따뜻한 남프랑스의 햇살이 조화를 이루는 전형적인 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 풍경이 펼쳐졌다. 중간에 멋진 휴게소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우리가 샀는데 남편들은 치킨 요리를 브리지트와 나는 연어를 먹었다.


평화로운 전원주택과 툴루즈의 맛, 역사 탐방


드디어 툴루즈 근교의 전원주택에 도착했고 집에 가기 전 마을의 치즈 가게에 들러 신선하고 좋은 치즈를 종류별로 듬뿍 고르는 걸 보며 역시 프랑스인이라 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은 치즈와 바게트 그리고 수프로 먹었다. 피에르와 브리지트 집은 오래전 마련한 전원주택인데 최근 7개월 동안 다시 손수 개조하여 1층 베란다를 확장하였기에 뒤뜰이 환히 보이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치즈를 고르는 부부, 툴루즈 호스트 피에르와 브리지트집 거실과 베란다



우리는 창문이 달린 넓은 베란다에서 아페리티프(애피타이저)를 마시며 음악을 좋아하는 피에르가 틀어주는 노래를 들으며 편안한 여유를 즐겼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나윤선 씨의 노래를 틀어주었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지만 내가 좋아하는 패티킴 못지않은 창법과 고운 목소리에 놀랐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좋아하는 우리나라 가수를 틀어주는 피에르의 센스와 정겨운 마음씨에 더욱 고마웠다.


이튿날 우리는 툴루즈 시내로 나갔고 나는 삼 년 전 들렀다 갔지만, 남편은 36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온 툴루즈에 새삼스러워했다. 마침 카피톨 시청광장에는 밴드 음악과 함께 농작물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낯익은 거리와 시내 풍경이 다가오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카피톨 광장과 생 세르넨 교회, 가론느 강변으로 나가 추억과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도 하며 의미 있는 순간들을 보냈다.

뚤루즈 시청앞카피톨광장 농식물축제

생 세르넨 교회에서 카피톨 광장으로 걸어 나오다 한 식당을 선택해서 바깥 자리에 앉았다. 나는 툴루즈 대표요리인 카술레 (Cassoulet)를 시키고 남편은 근처 알비 지역 음식인 알리고 (Aligot)를 시켰다. 카술레는 하얀 강낭콩을 기본으로, 오리 다리를 넣어 오랜 시간 천천히 오븐에서 익히면서 콩이 고기 지방과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알리고는 감자 퓌레(purée)에 치즈, 버터, 크림, 마늘을 넣고 아주 오래 저어 늘어지게 만든 요리다. 치즈가 길게 늘어날 정도로 쫀득하여 “프랑스판 치즈 감자 퓌레”라고 할 수 있고 부드럽고 진한 치즈 풍미에 마늘의 은은한 향이 어우러진 감칠 맛이다. 카술레는 콩과 오리가 들어가니 좀 무거웠던 반면 치즈를 좋아하는 남편은 알리고를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툴루즈 생 세르넨 성당과 점심 카술레와 알리고


점심을 느긋이 먹고 좀 거닐다 나는 이전에 왔을 때 보수공사로 닫혀있었던 툴루즈의 또 다른 상징인 자코뱅 수도원을 찾아갔고 이번엔 볼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13세기 초 툴루즈 중심부에 설립된 자코뱅 수도원은 두루 역사적 의미가 있고 수도원은 길게 늘어선 아름다운 회랑을 중심으로 건축되었다. 속세와 단절되지 않은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은 수도원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신자들은 수도원 성당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수도원은 시내 중심부에 있었고 오늘날도 도미니크 회는 전 세계에 존재하며 설교와 다양한 봉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툴루즈 추억의 가론느 강변과 자코뱅 수도원




저녁엔 우리를 마중 나온 피에르와 장을 봐서 삼겹살을 굽고 미역국을 끓였다. 아쉽게도 정육점에서 너무 얇게 썰어온 삼겹살이 오븐의 높은 온도에 구웠더니 과자처럼 바삭해져 버렸다. 나는 순간 몹시 당황했지만, 피에르와 브리지트는 쌈장과 상추로 사 먹으며 맛있다 해 주어서 고마울 뿐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프랑스인들에게 쌈 사 먹는 문화를 소개할 수 있었다는 거로 속상했던 내 마음을 스스로 위로했다. 어쨌든 밥을 조금 해서 미역국을 끓여 우리가 생일에 먹는 피를 맑게 하는 건강식이라 하니 가을부터는 수프를 즐겨 먹는다며 좋아하셨다.


잊지 못할 소풍과 소중한 추억


브리지트는 자유롭게 짐도 풀어놓고 편하게 지내라며 방 두 개와 따로 욕실을 내어주었다. 나는 정말 내 집처럼 편했기에 머리 염색까지 할 수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은 피에르가 우리를 위하여 근교 아름다운 중세마을과 강변과 골짜기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 하여서 따라나섰다.

아름다운 중세마을탐방과 시장 구경


그 전날 피크닉을 할래? 아니면 레스토랑에서 먹을래? 하길래 나는 그냥 야외로 나가니 피크닉을 하면 좋겠다 했다. 그런데 나중에 피크닉을 위하여 각종 그릇이랑 음료, 과일, 따로 점심 먹을 요리까지 챙긴 걸 보고 그냥 간단히 사 먹자 할 걸 싶어서 브리지트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날씨가 좋았고 생 안토닌 노블 발이란 아름다운 중세마을에 도착하여 그곳에 열린 시장도 돌아보고 한참을 동네 한 바퀴하고 나서 지대가 높은 보스크 동굴 옆 풍경 좋은 숲속에 도착했을 때는 소풍 온 들뜬 기분에 피크닉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느긋이 준비해 온 점심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 소풍맛난 피크닉과 마을 산책


마지막으로 펜네 마을로 가서 멀리 산성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동네 산책을 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한 집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리 네 명은 길옆 성처럼 생긴 집 현관에서 아주 오래된 문손잡이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분이 다가왔고 우린 행인으로 착각하고 먼저 지나가시라 길을 비켜주니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라며 관심 있으면 집안을 보여줄 테니 들어오라 하셨다.


우린 함께 따라 들어갔고 JM, 그분은 우리에게 오래된 집을 개조한 3층집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리고 옥상에서 시원한 맥주까지 꺼내와서 맞아주니 우연히 만난 이방인의 환대에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주인장은 오랫동안 국제 비즈니스를 한 분이었는데 지금은 은퇴해서 자녀들이 가까운 이곳에 세컨드 하우스로 장만하여 거주하며 손녀딸의 등·하원을 돌봐주며 지낸다고 했다.




암튼 그분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마을의 정경과 옥상 뷰를 만끽하는 행운까지 누리며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돌아와서 다들 점심을 늦게 많이 먹은 탓에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하다가 남편과 내가 전날 툴루즈 모노 프리(Monoprix 프랑스 대형상점)에서 산 *라면을 끓일까? 하니 두 사람은 한 번도 안 먹어보았다며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끓이고 보니 우리가 한국에서 먹던 그거보다 더 매웠고 요즘 k 드라마, 무비 때문에 매운맛이 트렌드 라더니 프랑스 상점에도 불닭 면 등 더 매운 거로 진열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둘은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예의상인지 괜찮다 하는데 나는 한국에서 나도 잘 안 먹는 매운 라면인 데다 전날 삼겹살도 너무 바싹 구워진 탓에 이래저래 더 죄송했다. 두 사람의 사려 깊은 배려심과 따뜻한 마음에 정말 잘 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어 아쉬웠다.


피에르 브리지트 부부와의 3박 4일 시간은 정말 하루처럼 빨리 지나갔다. 아침에 바게트를 사서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던 피에르,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브리지트처럼 그렇게 사람의 말을 깊이 경청하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한 거 같다. 그래서 두 사람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내내 살아있을 거 같다. 내가 다시 프랑스를 가든 아니면 두 사람이 한국으로 오든 혹은 다른 국제행사에서 만나든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나고픈 사람들이다.


이 글은 오 마이 뉴스에도 채택되었습니다.

https://omn.kr/2fvdt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디종 행사와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