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합니다
아니, 진지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진지하게 고민한 내용은 아니고 머리 식힐 겸 쓴 글
돈 버는 거 말고 회사 다니면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뽑아보았다.
1.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심리 테스트 해보면 '중독'과 '절제'에 약한 타입이라고 나온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맞는 것 같다. 왜 시험 전날 밤새 공부를 안하고 게임을 했을까... 그런 나도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에 가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챙겨 먹고 정해진 시간 만큼 일을 한 후에 정해진 시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 매일 일정량의 운동도 보장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밖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최소 하루 5천보 이상은 걸을 수 있을 것이다.
2.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같은 지역, 같은 나이 대, 맘이 맞는 친구들과 논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나와 비슷한 전공,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선후배들을 따져봐도 나이 차이가 많아봐야 7-8살 정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다 고만고만한 어린 것들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그제서야 '아니,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싶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다양한 나이, 다양한 출신지, 다양한 전공, 다양한 직군, 다양한 성격 등.
그 안에는 정말 본 받고 싶은 롤 모델이 있을 수도 있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싶은 반면교사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 점검해보는 기회가 된다.
* 그리고 은근히 중요한거! 회사의 동료들이 좁아진 인간관계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점점 친구가 사라지는데 그 자리를 마음 맞는 현직장 동료와 전직장 동료들이 차지하고 있다. 휴, 안 그랬음 친구 0명 될 뻔...
그리고 이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연습을 할 수 있다. 물론 연습 뿐 아니라 실전까지도. 드물긴 하지만 분명 한국 사람이 맞는데 한국어로 소통이 안되는 사람이 있다. 분명 소통은 잘 한 것 같은데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으로 놀래키는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인간 탐구의 장이다. 어디 가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고 일을 같이 하겠는가. 하나 하나 다 경험치라고 생각하고 버티면 내 레벨이 오른다.
3.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 열심히 일하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따라오겠지.
- 일 잘하면 당연히 누구나 나의 능력을 알아주고 나는 그에 맞는 보상을 받겠지.
-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당연히 다들 믿어주고 기회를 주겠지.
이처럼 학교 다닐 때 '성적'을 통해 경험했던 당연한 것들이 기대만큼 현실 회사에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어긋나는 부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뭘 해야 되나 고민하는 것이 아마 은퇴하기 전까지 짊어지고 가야할 직장인의 최고 난제 아닐까.
아, 하나 또 생각났다.
- 내가 위해주고 도와주는 만큼 당연히 저 사람도 나에게 보답을 하겠지.
4. 우울과는 거리가 먼 생동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나에게 한정된 내용일수도 있지만, 우울증? 그게 뭔데! 진짜 모르겠다.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일하면서 우울하진 않냐고. 생각해보니 걱정, 불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우울하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솔직히... 분노할 일이 많아서 우울할 새가 없다.
"분노"는 나의 힘, 삶의 원동력이 된다.
퇴근할 때마다 하루를 반추한다. '아까 왜 더 강하게 싸우지 밀어 붙이지 못했을까.', '내일은 또 어떤 방법으로 내 일의 방해꾼들을 처리 설득할 수 있을까.'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힘들어하는 유약한 인간이었으나 회사에서 갈고 닦은 전투력 덕분에 어디 가서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어버버하지 않고 따질 수 있게 되었다.
5. 자신의 밑바닥, 본성을 알 수 있다.
나도 학교 다닐 땐 몰랐다. 내가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을거라곤. 누군가를 싫어하고 쌍욕을 하게 되리라곤.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은 인간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다. 쪼잔하고 치졸하고 유치한 인간이 될 수도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건 남을 해코지 하고 부적절한 짓을 저지르는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냥 나쁜 인간인거고.
내 마음 속에서 오만가지 혼란한 감정들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노라면 아주 그냥 지옥불이 따로 없다.
이건 부둥부둥 해주는 어른들과 오래 알고 지낸 또래 친구들 속에서 아무런 갈등 없이 지낼 때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나도 몰랐던 내 본성과 마음 깊은 곳의 심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6. 자기수양과 절제하는 법을 알게 된다
2번에서부터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예측 불가한 시장의 부조리, 조직 안에서의 불합리,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 과도한 인정욕구로 인한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 등, 이런 것들을 다 소화해내려고 받아내다 보면 사람이 망가진다. 그러다 진짜 병 나서 퇴사하는 사람도 봤었고.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간 전투력을 다른 에너지로 치환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라던지, 내 마음이 사방에서 물수제비가 날아오는 번뇌의 연못이라면 고요하게 다스리는 방법이라던지,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생긴다.
7. 쉬는 것이 즐겁다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서 야무지게 쓰는 휴일이나, 아무 계획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휴일이나 상관없다. 휴가, 쉬는 것이 정말 즐겁다.
여가 시간의 소중함은 직장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맨날 쉬는 백수가 공휴일이 즐거울 것 같은가? 아니다. 나는 1년 동안 쉬면서 휴일, 여행, 쉼에 대한 기대 가치가 완전히 떨어졌다. '아,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었더라면 10배는 더 신나게 즐기고 있었을텐데.' 이런 기분이 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원래 이런 건 겁나게 바빠 뒤지겠을 때 해야 꿀 맛이다.
이 글은 일부러 비꼬는 글도 아니고 냉소를 가득 담아 쓴 글도 아니다.
직장 다니면 좋은 점,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자기 계발>, <커리어 개발>, <인맥> 말고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에서 뭐가 있었을까 정리하다가 쓴 글이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멋지지 않은 부연 설명을 달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