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캐나다, 호주를 거쳐 영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나는 10대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었다. 나에게 패션 디자이너는 예술과 상업에 사이에 있는 직업으로, 더 솔직하게 말해 '멋' 있어서 꿈꾸게 되었다. 노동착취하는 국내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 인턴을 시작으로 일본, 캐나다, 호주를 걸쳐 런던에 사는 지속 가능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많은 경험을 얻었다. 그 소중한 경험들은 현재 내가 패션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인식과 견해를 넓히는데 큰 도움이 돼주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패션에 '지속가능성'을 꿈꾼다.
소녀가장으로 자라온 나에게 패션은 ‘자신감'을 주는 하나의 표현 수단이 되어주었다. 한국 나이로 15살 때 한 옷가게에 알바를 갔었다. 그때 한 패션쇼 포스터를 보았고 살면서 처음으로 가슴 떨림을 느꼈다. 마음속으로 "나 저거 해야겠다"라고 되새기며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어린 나에게 꿈이라는 것은 꽤나 대단했다. 처음으로 인생의 목표와 동기가 생겼다. 이를 계기로 나는 중학교를 복학했고 공부에 매진하여 세그루 패션 디자인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KBS 스카우트 프로그램의 한 남성복 브랜드 패션디자이너 선발 편에 나가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내 인생의 여러 가지로 터닝 포인트였다. 각종 아르바이트들과 밤을 새 가며 했던 공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고생 끝, 나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내가 패션산업의 실태를 깨달음과 동시에 사라졌다. 20대 초반에 겪었던 한국과 일본의 패션디자이너의 삶은 나의 상상과 정반대였다. 내가 처음 접한 패션디자이너의 삶은 3D 직업-Difficult(어려움), Dirty(더러움), Dangerous(위험함)이었다. 유명한 브랜드일수록 열정페이와 야근은 기본, 경영상황의 이유로 공급업체에 매번 대금이 밀리지만, 주기적으로 있는 접대문화는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이때만 해도 패션디자이너의 삶들이 지속가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환경, 동물보호나 인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직업문화를 떠나기 위해 워킹홀리데이여정을 시작했다.
나의 첫 워킹홀리데이였던 캐나다의 삶에서 나는 디자이너의 삶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문에서 더 심도 있게 다룰 내용이지만 직업 환경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나는 안정적인 급여와 보장된 주 40시간 근무로 나의 직업에 평화를 찾았다. 서바이벌 모드에서 벗어나니 주위에 더 깊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7년, 영국 동물 인권보호 단체 PETA가 Canada Goose를 상대로 거위와 코요테 털 사용에 대한 반하는 시위를 벌였다. 가짜 피와 가죽이 벗겨진 코요테 모형 등 저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시위였다. 이 시위를 통해 패션산업이 그저 '멋'을 위해 동물들을 잔혹하게 학대 및 살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패션산업은 더 이상 그저 '멋'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비건패션'을 시작으로 패션산업의 문제를 인식하기 위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리서치 도중, 2015년에 만들어진 패스트패션산업의 실태에 관한 The True Cost라는 다큐멘터리를 2018년 초에 접하게 되었다. 더 트루 코스트를 처음 보던 날,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다. 디자이너로서 직업에 대한 혐오와 세일 기간마다 찾았던 에첸엠과 자라에서 쇼핑을 하고 만족해하던 무지함 등, 많은 감정을 느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의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석유 사업의 다음 주범 산업이 나의 직업군이라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패션산업이 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패션 산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의 직업이 부끄럽지 않게,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더 나은 산업으로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생겼다.
영어권에서 패션 산업을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느낀 건 아직 한국에는 패션 산업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의 지속가능한 패션 자료는 한국에서 찾기 어려웠고 모든 자료는 영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기에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많이 느꼈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더 깊게 배우기 위해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토론토와 가까운 뉴욕에 위치한 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진학을 꿈꾸었다. 하지만 1년 동안 열심히 모은 2만 캐네디언 달러는 미국 패션 학교 등록금을 내기로는 턱도 없었다. 하늘이 도왔던 걸까. 같이 FIT를 준비하던 캐네디언 친구가 한국에 FIT 분교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감사하게도 FIT SUNY KOREA에서는 해외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한정되어 있는 본교와 달리 장학금의 폭도 넓었다. '모 아니면 도', 나는 캐나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서류 준비, IELT 영어 시험 및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 호주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지 6개월 후에 장학금과 함께 합격 소식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돌아와 영어로 그리고 더 성숙해진 관점으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대학 생활 동안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리서치와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했고 지속 가능한 패션회사들에서의 인턴십을 수료했다. 그렇게 나는 지속가능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하고, 졸업 후 영국에서 지속가능한 패션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할 때까지 팬데믹이 이어졌다. 이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패션의 지속가능성의 필요성이 알려지는 큰 계기가 되었다. 패션 산업은 특성상 시즌에 맞는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한 시즌에 앞서 (최소 6개월 전) 디자인을 시작한다. 하지만 코로나 규제로 전 세계의 패션 매장들이 강제 폐쇄되었고 유행이 지나게 된 패션 의류들은 재고로 남게 되어 대규모의 자원 낭비를 초래했다. 의류 제조업체 수출협회(BGMEA)에 따르면 팬데믹의 영향으로 취소되거나 중단된 의류 주문은 31억 8000만 달러로 9억 8200만 개에 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의류 공장 근로자 (브랜드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는 패션 산업이 필요치 않는 의류들을 만들어 내고 그로 인한 피해가 비단 환경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에도 직결적으로 연결됨을 보여준다.
또한 패스트패션으로 인해 의복의 가격은 저렴해지고 이를 위해 환경오염을 미치는 저렴한 원단으로 저렴하게 (쉽게) 만들어지니 질이 떨어지게 되며, 그로 인해 의복의 가치도 함께 하락하게 되었다. 옷을 만드는 것은 많은 시간 비용이 드는 작업이다. 패스트패션이 저렴한 이유는 누군가는 그 비용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패스트패션은 화려함과 쉬운 접근성과 달리 인권침해를 발생하는 시스템 구조를 만들고 있다. 우리의 패스트패션 구매는 그들에게 수익성을 주고 이 부도덕적인 체계는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좋은 뜻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게 '나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이게 나한테 '왜' 중요한 건지 모르겠어.
패스트패션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는 패스트패션의 환경파괴와 인권 침해뿐 만이 아니라 패스트패션 산업의 대표적인 특성은 우리의 건강을 위한 것도 포함된다. 저렴한 원단 생산을 위해 독성 염료와 화석 연료 기반 직물의 사용을 통한 수질 오염과 바다에 치명적인 마이크로 플라스틱을 매년 증가시킨다.
Cox et al. 의 '인간의 마이크로 플라스틱 소비'라는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사람은 매년 78,000~211,000개의 마이크로 플라스틱 입자를 먹고 마신다고 하며, CalSPEC는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에 암을 유발할 수 있으며 소화기관, 생식 및 호흡기에도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팬데믹의 영향으로 패션산업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지속가능한 패션 은 하나의 해결 방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친환경 패션 또는 윤리적 패션 브랜드들이 생겨날 뿐 만 아니라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의 그린워싱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좋은 변화에는 필요한 과도기라고 생각하며, 이는 점점 진정한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속 가능한 패션이 트렌드화 돼 갈 수 있는 이유는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이 패션산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패션 산업은 니즈에 맞추어 의복을 만들어 소비가 되는 산업이며
모든 산업은 소비자 요구와 니즈에 맞추어 발전하고 성장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속가능성을 인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누가 디자인을 하는지 뿐만 아니라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그 과정이 주는 영향을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지속 가능한 패션에 참여하게 된다. 패스트패션을 지양을 하고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인식'을 가진 것만으로도 모두를 위한 더 나은 것을 요구하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패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패션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현재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꿈꾸고 이를 이루기 위해 London College of Fashion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의 Fashion Futures 패션 미래 석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기에 패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패션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함께 배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