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준비생_1. 어쩌다 수학(1)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인가?

by 다정빛이나

"쌤~ 저 일자리 좀 알아 봐 주세요!"

어느 날 아주 다급하게 일자리 알선을 요청하는 카톡이 왔다.


내가 영어학원 강사로 근무하던 시절에 만난 제자들 중 한 명인데, 어느덧 성장해 24살이 되어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고 본인이 스스로 용돈을 벌어야 하는 가정상황을 이야기하며 알선을 부탁했다.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기 전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취창업담당 연구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운명처럼 연락이 닿은 제자가 반가웠다. 나는 그 마음하나를 연료로 삼아 최적의 직장을 찾아주기 위해 엄마를 간호하는 동안 잠시 꺼 두었던 뇌에 시동을 걸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위치를 물어봤고, 그 집에서 도보로 10분을 넘지 않는 곳부터 마땅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15분 거리, 20분 거리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갔고 20분 거리에서 수학강사를 구인한다는 광고를 찾았다. 일일이 전화를 다 걸어서 광고사항에는 나와있지 않는 직원 복리후생에 대한 내용도 꼼꼼하게 여쭤보고 나는 내가 알아낸 정보를 전달했다. 선택의 여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자에게 내가 찾아 준 곳 중에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직접 전화해 보라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저 엄마를 병간호하는 동안 멈추었던 나의 시간에 잠깐의 활력을 넣어준 거였다고, 딱 그렇게만 생각했다.


일주일 후 내게 저장되어있지 않은 번호로 연락이 왔다. 이전에 내가 광고를 보고 연락을 했던 수학학원이었다.


"전화해서 복리후생까지 속속들이 다 물어봐 놓고 일한다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 죄송합니다만 어디시죠?"


"나 **수학학원 원장이에요."


내가 제일 괜찮다고 생각했던 취업장소다. **수학학원 원장님의 전화였다.


나는 조금 많이 황당스러웠다. 보통은 전화가 안 오면 안 오나 보다 하고 넘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뭔가 다급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먼저는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파악했다. 통화를 하다 보니 본인 생각에는 집에서 학원 위치까지 20분 걸어가는 것보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진행된 상황을 나에게 진작 알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 어리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수학학원 원장님께 전화를 드려서 나를 통해 취업하고자 했던 제자의 상황을 최대한 잘 풀어서 설명하며 전달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이해를 하는 듯한 추임새 끝에 돌아온 한 마디는 너무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은 하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네에?!?!? 원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허허; 어쩌다 보니 내가 강사를 급히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물어보는 거예요~ 허허;;"


"아이고~ 그러셨군요. 저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간호를 하느라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중이긴 합니다. 그런데요 원장님, 저는 수학전공자가 아니에요. 고등학교도 이과가 아니라 문과 나왔고요~ 하하하!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하하! 저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수학과 안 나왔어~ 중3까지는 쉬워서 금방 가르칠 수 있어요~!! 하하하!"


"아휴~ 아무리 그래도... 제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수학을 손에서 놓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럼 요즘애들은 어떻게 배우는지 교재 구경이나 한 번 가 볼까요? 먼저는 제가 내용을 직접 보고 생각을 해 볼게요. 그래도 괜찮죠? 분명 교육과정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서요."


"안 그래~ 비슷해요!! 오늘 시간 안되나? 오늘 와요 오늘!"


"아닙니다~ 오늘은 너무 갑작스럽고요, 내일 꼭 가겠습니다!"


"그래요! 1시 어때요? 1시!"


"알겠습니다! 내일 1시에 뵙겠습니다. 아! 위치는 제가 알고 있으니 따로 주소는 안 보내주셔도 돼요."


정말 당혹스러웠다.

불쾌하게 당혹스러운 것은 아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화연락에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났다. 나는 이 웃긴 소식을 바로 엄마에게 공유했다.


나는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네이버 검색창에 중등 수학에 대해서 폭풍검색을 해보았다.


중1수학

중2수학

중3수학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흐른 건지는 모르겠고, 우리 집 베란다 쪽 통창이 새까맣게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 심히 놀라웠다.


나는 모니터 안으로 정신이 빨려 들어가 한참을 검색하다가 통창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등이 잔뜩 굽어 거북목을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참 열심히도 집중력을 발휘했다. 고1 때 이랬어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스쳐 나도 모르게 통창을 흘겨보며 혀 끝을 찼다.


내 인생에 다시는 등장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학을 허겁지겁 애타게 찾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낯설면서도 설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제안일 뿐인데,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면서도 오랜만에 수학공식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설렘이 내 안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종이와 샤프펜을 노트북 앞에 놓고 중1문제를 랜덤으로 풀어보았다. 영어단어 외웠던 것들은 그렇게도 기억이 안 나더니만, 수학 문제는 보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중2 때까지는 나도 학원을 다녀서 그런지, 몸이 기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3 수학은 가물가물했지만.) 나는 중1, 중2 수학내용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정답을 맞혀내는 내 몸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샤프를 쥐고 있는 내 오른손 끝에 그때 그 시절이 저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엄마의 병간호를 동안 잠시 닫아두었던 나의 감정의 댐을 개방하니 즐거움의 감정이 방류되어 내 마음은 금세 차올랐다.

초등수학은 거뜬했다. 수학은 "반복학습"이 중요하다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구몬학습지로 수학공부를 했는데, 방문교사가 매 수업마다 초를 재서 빠르고 정확하게 연산을 실수 없이 풀어내는 데엔 도사였다. 수학을 손에서 놓은 지 10년도 더 지났는데도 풀이법을 기억해 내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내일이 오는 게 두렵지 않았다.


다음날, 12시 30분.

나는 목소리로만 두 번 만난 원장님을 대면하러 수학학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