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커피 한잔으로 아침잠을 쫓아본다. 나는 여전히 아침형 인간이 되긴 어려운 모양이다. 알람을 맞춰 놓아도 일찍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어젯밤 언니와 전화로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것이 떠오른다. 거의 두 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평소엔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보통 '전화는 용건만 간단히'라는 주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전업주부로서 누리는 여유 때문일까. 한밤중에 누군가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준다.
태어나면서부터 무척 몸이 약한 언니는 학교 다닐 때 자주 쓰러져서 업혀 오곤 했다. 세월이 흘러 의학이 발달하면서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결혼 후엔 튼튼한 아들 셋까지 낳는 뚝심도 보여줬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도, 여러 아픔도 겪었다. 이제 육십의 나이를 넘어선 언니는 옛날 얘기 하듯 웃으면서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회상한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더라. 지나고 보니 늘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어."라고 어렵던 시절을 회상한다. 언니랑 얘기하다 보면 인생의 여러 굴곡을 살아낸 자로서의 지혜가 스며있고 현재에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배어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언니는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화 상담 활동을 했다. 남을 향한 애틋함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이 오히려 자신이 처한 힘든 상황들을 극복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언니를 보며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안타까워만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가 직장을 잡지 않고 방황했던 시절, 언니는 늘 내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언제나 묵묵히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이 가족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추억들도 하나둘 떠오른다. 엄마가 1년에 한 번 강원도 친정 나들이를 가실 때마다 기르던 돼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울타리를 뚫고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아! 그때마다 우리 자매는 막대기를 들고 돼지 쫓아 삼만리!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그땐 창피하고 싫었던 일들이 지금은 함께 떠올리며 웃음 짓게 만드는 우리 자매의 추억이 되었다.
신영복 작가의 '처음처럼'에서 읽은 한 문장이 떠오른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
가족이란 바로 그런 존재일 것이다. 함께 비를 맞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첫 번째 사람들이니까.
인생의 여정에서 때로 마주치는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함께 비를 맞아 줄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과 함께 한 따뜻한 추억은 겨울처럼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는 온기가 된다. 그래서 이 겨울도 춥지 않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나눌 언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늘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