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스토리에 입문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첫 글이라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걸까. 글머리가 잡히지 않아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친 듯한 느낌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남편과 함께 집 근처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빌렸다. 이 책은 수필 중 가장 구조적인 글로 평가받는다는데,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단편으로 접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수필집 전체를 읽어보게 되었다. 호수가 보이는 언덕 위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가을바람과 색색이 물든 단풍, 따스한 햇볕 덕에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나는 책을 펼치고 첫 번째 글 '수필'을 읽어 내려갔다.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_17~19쪽
이 문장이 마치 나에게 ‘길’을 알려주는 듯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였다. 책상 앞에 앉아 초조해한다고 글이 써지는 게 아니었다. 서두르지 말자. 황소걸음으로 느릿느릿 가자.
나이 오십에야 지천명(五十知天命)을 안다고 했던가. 인생을 돌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았다. 늦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은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글감은 무궁무진하지만, 아마도 나의 가려진 마음 때문에 그것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내 주변에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볼까 한다. 일상 속에,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아름다운 자연 속에 숨겨진 보물들이 넘쳐날 것임에 틀림없다. 진솔한 인생의 향취와 여운을 남기는 글, 남들과 소통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