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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건강한 삶

의사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응급실 갈 뻔한 이야기

by 신백

(23.5.3. 작성한 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의사도 사람이니 의사라고 안 아플 수 없다.



응급실 갈까?


토요일, 딸이 학원에 가있는 동안 시간이 좀 비어 헬스장에 갔다.

어깨 운동을 했는데, 자세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처럼 저강도-고반복으로 했다.


문제는 일요일이었다.

하루 전 어깨 운동을 했고 운동 시간도 없어,

충분한 스트레칭 없이 바로 고강도-저반복으로 들어갔다.

어깨 힘줄이 약간 덜컹 거리는 것 같았는데, 특별히 아프진 않았다.

주말에 쉬면 회복되겠지 쉽게 생각하고 마무리 운동도 않고 집으로 바로 왔다.


그날 밤, 자기 전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도 팔을 돌려보니 움직일 만해서 안 하던 고강도 운동을 해서 생긴 근막통이려니 했다.

잠을 청하고 자고 있었는데, 새벽 5시 정도에 아파서 깼다.

팔은 당연히 움직일 수 없고,

몸을 아내쪽으로 돌릴 수도 없을 만큼 강하고,

나도 모르게 최대한 얼굴을 찌푸리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곧 출근준비해야하는 아내를 깨울까 말까 고민했다.


응급실을 가면 피검사, 엑스레이 하고

수액, 진통제 맞고 처방전 받아올 텐데

그렇게 되면 딸 등교준비는 누가하고,

회사에는 뭐라고 한담...


겨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 서랍장 약통에서

진통제와 스프레이를 찾아

빈 속에 먹고, 뿌렸다.

파스 냄새가 부엌에 한 가득이다.

안 아픈 팔로 아픈 팔을 들고 있으니 좀 낫다.


한 시간 정도 있으니 아내가 눈을 반 쯤 뜨고 나와서 괜찮은지 물어봤다.

응급실 갈까 하다가 깨우기가 그래서 그냥 약먹었어~하고 대답했다.

아내와 딸은 아침을 대충먹고 허겁지겁 나갔다.


안 아픈 손으로 그릇을 싱크대에 올리고 물로만 씻었다.

욱씬 욱씬 박자에 맞춰 찌르는 듯한 신경통이

움직일 때마다 심해져 누울 수도, 걸을 수도 없다.

아침 일찍 다른 병원에 들렀다가 갈까?

그래도 약기운이 돌아 움직일 수는 있을 것 같다 병원으로 출근했다.


오전에 담당 환자들 회진을 돌기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도 아픈데 나는 누가 고쳐주나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거울을 보며 피식 쓴웃음이 나왔다.



석회화 건염


새벽에 어깨 통증으로 응급실 오시는 분들은 십중팔구 석회다!


비슷한 증상으로 오신 분들을 보는데 내가 아파보니 엄청 불편함을 깨달았다!

환자분들에겐 많이 아플 수 있어요. 약 드시고 그래도 심하면 주사드릴게요.

이렇게 틀에 박힌 말씀만 드렸는데, 많이 답답하셨을 거다.


이두근 힘줄이라 팔을 (손가락 말고) 거의 쓸 수가 없다.

샤워, 옷입기, 양치, 용변처리, 식사준비, 식사, 세수, 핸드폰 꺼내기 등... ㅠㅠ

오더를 넣기 위해 타이핑을 해야 하는데 왼팔로 오른팔을 들어 키보드와 마우스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운동하다 다친 분들에게 거의 하는 말인데

정작 스스로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헬스 하다 다치면 도로묵이니, 최대한 안 다치고 긴 호흡으로 하세요.

웜업(준비) 운동으로 그날 타켓 근육이 포함된 관절을 잘 풀어주세요.

자세가 무조건 중요합니다.

근육 키우려다 다치지 말고, 저강도로 지칠 때까지 해도 근성장은 되니 안전이 우선입니다!

쿨다운(마무리) 개념으로 근막이완 스트레칭 꼭 하세요.

완치가 될 때까지는 상체 운동 절대 하지 마시고, 팔을 써서 자극 주지 마세요.


노파심에 이런 말씀 오래 드려도, 수가도 안되고, 오히려 질문만 더 늘고 진료 시간만 오래 걸린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오신 분들은 전문가 뺨치는 수준으로 물어보신다.

(맞는 것도 있지만, 어떤 건 틀렸거나,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거나, 근거가 부족하거나, 아직 실현가능성이 없는 치료들.)

몇 개월 후 또 다쳐서 오시는 분들은 안 지켰다고 솔직히 말씀해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소리처럼 설명을 드리는 건

열 분 중에 한 분이라도 완치가 되어 건강하고 오래 헬스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 분이 간혹 계시니 바쁘더라도 조언을 안 드릴 수가 없다!


무조건 주사만 놓아달라는 분들도 계신데,

죽어가거나 암성 통증이 아닌 이상, 심하게 말씀드리면 마약과 같다.

아픈 사람에게 마약을 주면, 그 때는 안 아프겠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또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소리가 듣기 싫은 분들은 결국 다른 병원에 가셔서 주사를 맞는다.

(주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강력히 염증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을 때 스테로이드 주사를 당연히 처방한다.

그러나 통증이 없다고 무리해서 빨리 재발하기도 하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인대, 힘줄, 근육도 약해지고 너덜너덜해진다. 더 빨리 늙는 것이다.)



환자입장


통증을 안 느끼는 편인 나도 자다 깰 정도니

병원에 오시는 분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도 누가 안 아프게 하는 주사만 주면 좋겠다였으니.


그런 것도 모르고 자, 환자분! 이런 검사 등을 토대로 배제할 수 있는 것들은 이렇고

감별진단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요놈이 진단명이니

교과서대로 이렇게 치료받으면 됩니다.

인터넷에 의사가 한 말 아니면 읽어는 보셔도 따라하진 마세요.

사람마다 다 다른데 만병통치약, 주사, 운동, 시술은 없습니다.

이렇게 단호박으로 말했으니 환자 입장에서는 그냥 서운하셨을 거다.



아이고~ 많이 아프셨을텐데 꾹 참고 바로 오셨네요~잘 하셨습니다!

지금 상태를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꾸준히 치료 안 받으시면 간단한 움직임을 통해도 염증이 자극되어

일상생활도 많이 불편하실 거에요.

만성은 아니라 아직 단단하진 않지만, 그동안 서서히 생겼을텐데

운동 중이나 팔 쓰시다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치료는 기본적으로 약 7일분 드시고, 물리치료 2주 동안 자주 오시는 게 좋습니다.

초음파 보면서 주사기로 시술하는 방법도 있는데 엄청 아프실 거에요.

그리고 포도송이처럼 석회가 몇 개 있어서 완전히 제거하기도 어렵고요.

저 같으면 충격파 해서 조금씩 부수겠습니다.

이 정도면 아직 큰 건 아니라 주 2회 8~10번 정도까지도 가능하고요.

일주일마다 엑스레이로 크기 변화를 지켜보시죠.

3개월 후까지 전혀 호전이 없으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지만

대개는 여러번 받으면 50% 이상은 줄어들고요.


비급여치료니 나가셔서 비용 설명듣고, 궁금하신 거 상담받으면 치료여부 말씀주세요.

매일 오시기 힘들면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물리치료 받은 후에 치료 경과를 지켜보겠습니다.

이두근 쪽이라 팔을 쓰면 염증이 좋아지다가도 나빠지니 가능한 안 쓰는게 좋습니다.

통증약은 좀 쓰릴 수 있으니 아침 저녁 식후에 드세요.

술은 염증에 도움이 안되니 그동안 삼가세요.

운동도 다 나으면 하세요.

나중이라도 궁금한 건 적어오시면 다음 번에 설명드릴게요~


이렇게 말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덜 섭섭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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