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오 김세미 Jan 06. 2024

너는 뫼비우스의 띠


목에 뭔가 걸린 듯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물 한 모금이 간절하지만 기상 후 첫 한 모금은 양치 후라는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더구나 오늘처럼 목이 아픈 날은 더더욱 그렇다. 치약을 묻혀 칫솔질을 한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선물같은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앞으로 직행. 깨끗한 컵을 놓고 물이 채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내 망막을 통해 사진 처럼 찍히는 장면들을 마주했다.


외면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건조대에 세워져 있어야 할 녀석들이다. 아침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 다음 날을 위해 다 치우고 잔다.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으로 행한 날이 많다. 분주한 아침 시간에 한몫을 하게끔 놔두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는 외면해야했다. 내 몸이 중하니까.


내심 누군가 해주길 바란 마음도 있었을 거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현실을 마주하니 물맛이 쓰디 쓰다. 뫼비우스의 띠를 떠올린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설거지 감옥안에 갇혀있다는 불편함이 치민다.


" 알약이 있었으면 좋겠어 한 알만 먹어도 포만감을 일으키는 식사 대용 영양제랄까"

얼마전 커피수다 말미에 누군가 꺼낸 얘기에 나두 나두를 외쳤다. 모두의 공감버튼을 누르게 하는 이유는 집안일 중 가장 싫은 일로 꼽힌 설거지 때문이다.


 "나는 한 자세로 벌서듯 서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싫더라. 그래서 가끔 수북이 쌓아 놓고 이틀에 한번 식기세척기를 이용해. 물론 뭐라고 하지 .. 그래도 본인이 하지 않을거면 그냥 놔두라 했어 " 설거지 기싸움에 승리했다는 친구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설거지만큼 귀찮은 일이 또 있을까? 그 일이 귀찮은 이유중 하나는  전처리 후처리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릇 몇 개를 세제 묻혀 닦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일단 그릇을 싱크대로 옮기고 식탁을 정리해야 한다. 식탁 정리가 끝나면 건조대에 놓인 그릇이 있는지 살핀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도 있잖은가. 씻어서 올릴 공간 확보가 급선무다. 씻긴 그릇들이 놓일 자리를 마련하는 일.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단순 원리를 적용한다.


그리고 가스레인지 주변을 말끔히 닦아 낸다. 설거지를 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우선적으로 끝내려 한다. 그리곤 그릇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부터 너희들을 기꺼이 단장시켜 주겠다는 사인을 보내는 거다.


육 남매의 북적임 속에서 자랐다. 우리 자매들은 집안 일을 분업화했다. 그때 내가 자청했던 일은 설거지다. 무릎을 굻고 방을 닦는 일보단 서서 하는 설거지가 좋았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세제 묻힌 그릇을 한편에 쌓고 물속에 입수시켜 1차 2차 헹궈내는 동안 물이 뽀얗게 변할때 좋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으니 나는 설거지 예찬론자가 되기로 한다. 설거지가 좋은 점은 첫째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거다. 실행 전과 실행 후가 이보다 확실한 게 또 있으랴. 오염물질이 붙은 그릇들이 매끄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은 기분을 맑게 해준다.


또 하나 퐁퐁 날리는 세제가 작고 빛나는 투명함을 띠다가 향긋한 거품으로 사라질때가 좋다. 거품 옷을 입던 녀석들이 물속에서 샤워를 끝내면 시각적인 청량감을 선물한다.


마지막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그 소리들이 좋다. 달그락달그락 뽀드득뽀드득  쏴아쏴아  다양한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내 마음까지 개운하게 하는 그 소리들이 시원했으니까  굳이 좋다는 수식어를 붙여본다

 

하지만 귀찮은 집안일은 아무리 미화시키려 해도 미화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설거지.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같은 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찾던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