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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버니 Sep 19. 2023

로드트립과 연애사 (7)

웨스트버지니아 - Morgantown 


작년 이맘때쯤에는 박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박사 시험은 음악 이론과 역사 시험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중세 시대의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모든 시대에 걸친 역사와 이론 공부를 해야 했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암기하고 이해해야 하는 시험이라서 정말로 힘들었다. 특히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은 내가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다양한 리서치를 통해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게다가 시험 직전에는 코로나에 걸려 열이 펄펄 나도록 아팠는데도 불구하고 울면서 공부해야 했다. 


코로나로 고생하면서 공부하던 나.jpg

이제는 작년의 일이 먼 과거 같다. 이게 고작 일 년 전의 일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번 해에는 더 많은 독립성을 찾아내고자 한다. 특히 올해는 학교나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지는 스케줄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스케줄을 시도해 보는 것이라서 크게 기대하고 있다. 요즘은 정말 요일을 모르고 산다. 큰 마감일들만 머릿속에 있고, 나머지는 매일 자기 전, 다음 날의 캘린더를 확인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평일이든 주말이든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친구는 일터로 나는 발코니에

모건타운에서의 세 번째 날이었던 이 날은 월요일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의 학기가 시작되는 첫 월요일이었고, 내 친구는 교수로서의 첫 월요일을 맞이했다. 나는 11시에 지휘자와 줌 미팅이 있었기 에, 친구가 출근을 하고 한참 뒤에야 일어났다. 어릴 적부터 일찍 일어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던 나, 요즘은 가능한 모든 일정을 오후 2시 이후로 잡아서 밤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친구 남편은 매우 섬세하고 꼼꼼한 스타일이다. 내가 지휘자와 미팅을 하는 동안 일부러 내 차를 카센터에 끌고 가서 엔진오일 교체와 차 점검을 싹 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내일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기름까지 넣어 줬는데, 이렇게 세심한 친구들이 있는 나는 너무나도 복 받은 사람이다. (고마워 ㅠㅠ) 


이전 이야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휴스턴에서 친구의 남편과 나는 영혼의 밥친구였다. 고기뷔페, 초밥뷔페를 도장 깨기처럼 평정하며 맛있는 데를 찾아다니곤 했다. 내 친구는 채식주의자라 친구 남편이 가고 싶은 레스토랑들을 같이 안 가주기 때문에 내가 도착한 다음 날 친구의 남편이 동네에 중국 뷔페가 있다며 같이 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이지’라는 나의 답에 엄청 기뻐하며 친구가 하루종일 학교에서 일하는 월요일에 같이 가자고 계획을 했었다. 지휘자와의 미팅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중국뷔페로 향했다. 미국의 중국 뷔페는 대개 가격이 저렴하며, 중국 음식뿐만 아니라 미국 음식, 해산물 등 다양한 음식을 제공한다. 이 날도 우리는 푸드파이터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도-저히 더 이상은 못 먹겠다 말이 나올 때까지 밥을 먹었다. 


주부레벨 99인 친구 남편이 해 준 잊을 수 없는 남부식 디너

친구 남편은 요리도 잘하고 살림에 아주 탁월하다. (주부 레벨 99) 특히 장 보는 것을 좋아해서 중국 뷔페를 먹고 소화를 시킬 겸 모건타운의 다양한 슈퍼마켓을 구경하러 다녔다. 친구는 바깥일은 잘하나 살림에는 크게 흥미가 없어서, 친구 남편이 요리부터 청소, 빨래 모든 것을 도맡아 한다. 예전에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전통적인 역할 분담이 주류였지만, 요새는 많은 커플들이 상황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거나 서로가 잘하는 분야에 기여한다. 나는 요리는 꽤나 잘하는 편이지만 청소 때문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특히 바쁜 기간에는 물건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상황을 만들곤 하는데, 그러면 또 그걸 보면서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친구의 소개로 청소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주에 한 번 또는 출장에서 돌아오기 전 날 청소 아주머니가 오셔서 집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신다. 출장 후 마법처럼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집에 돌아오면 ‘행복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스스로 하지 못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기보다는 필요한 경우 도움을 받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응원해주던 친구의 모습.jpg

이 날은 모건타운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의 직장에서의 첫날과 나의 모건타운에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나는 중국 뷔페의 여파로 저녁은 먹을 수가 없었다...) 휴스턴에서 4년 전에 만난 친구들은 이제는 내 가족 같은, 내 속속들이를 아는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고, 이렇게 긴 여정 끝에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특히 내 친구는 내가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곁에 있어줬다. 작년 여름, 큰 바이올린 협주곡을 커미션 받아 작업을 해야 했다. 친구가 솔로이스트로 연주하게 될 곡이었는데, 20분이나 되는 규모가 매우 큰 곡이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실연으로 인해 완벽한 비련의 여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던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한심.. ㅉㅉ) 그런 나를 완벽하게 서포트해주고 '너는 할 수 있다'라며 내가 곡을 쓰면 무조건 달려와서 내가 실제로 들어볼 수 있도록 테스트를 해 주던 그런 속 깊은 친구였다. 이 때는 정말 정신없이 살던 때라 이 큰 곡을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 하루는 오후에 친구와 학교에서 미팅을 하기로 했다. 미팅 전 피아노 앞에서 엉엉 울면서 곡을 쓰면서 친구를 기다렸는데, 친구가 미디파일을 쭉 들어보고는 자기도 역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같이 울다가 친구가 바이올린을 꺼내서 내가 쓴 곡을 테스트해 주었는데 이때의 기억은 아직도 정말 선명하게 남아있다. 4년 전 만난 후 셀 수도 없이 많은 나의 곡을 연주해 준 친구여서 우리는 친한 친구사이를 넘어 서로 음악적으로도 이해하고 존경하는 그런 소중한 사이가 되었다.


굿빠이 씨유순

친구집에서 보낸 3일 동안의 소중한 시간을 뒤로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을 준비한 밤이었다. 이 로드 트립도 친구의 용기와 지지가 없었다면 나는 이 먼 길을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매일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특별해지고, 나 또한 그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 모건타운에서의 삶도 언제나 행복하길!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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