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초롱 Mar 07. 2024

결단, 놓음, 자율을 찾아

14회 차 상담 중_내가 결정하는 대로 (8)

남편의 일주일 가량의 겨울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스케줄을 하나씩 정리했다. 먼저 둘째, 영재는 셔틀버스로 등원을 시작했다. 도보로 10분 거리 밖에 되지 않는 근거리라 직접 등하원을 했는데, 집에서 나오는 시간이 일정치가 않고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다 보니 2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었다. 선생님에게 인계를 하고 나면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하는 일 없이 점심시간을 맞이할 때가 많았다. 영재가 가장 먼저 스쿨버스에 타서 20분가량을 돌아 어린이집에 도착해야 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집 앞에서 배웅을 하고 나면 온전히 나를 위한 오전 3시간 정도가 확보됐다.


2주마다 장난감을 빌리러 갔던 육아종합센터도 발길을 끊었다. 인위적인 장난감에 의존해 한숨 돌렸던 날들이 있었지만, 아이의 관심이 하루 이틀이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풀지 못한 갈증으로 더 많은 새로운 장난감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사이 아이는 컸으므로, 내가 하루에 20분 정도 영재와 집중해서 놀아주면 더 오랜 시간을 혼자서도 잘 놀게 되었다. 1주일에 한 번씩 갔던 아이의 실내 체육 수업도 한 달을 쉬기로 했다. 셔틀버스가 따로 없고, 영재를 기다리면서 마땅히 시간을 보낼 장소도 마땅치 않아 교육비만큼의 돈을 편의점에서 사용하던 중이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하루들이 정리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궁금한 것이나 못마땅한 부분이 생기면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만약 신이 계시다면 나를 응원해 주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둘째가 하원 후 씻는 걸로 몇 번 나를 힘들게 하기에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아. 나는 너를 도와주고 있는 건데 왜 너는 나를 도와주지 않고,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지" 긴 잔소리를 끝으로 결심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너에게 휘둘리지 않고, 엄마가 정한 대로 리드해서 이끌겠다고.


3일이 지났다. 집에 오면 무조건 화장실로 직행한다. 예전엔 아이에게 선택지를 줘야 되는지 알았다. “지금 씻을래? 밥 먹고 씻을래?”라고 물었는데, 아이는 당연히 하고 싶은 게 먼저니 샤워하는 걸 계속 뒤로 밀었다. 네가 선택했으니 저녁을 먹고 안 씻는 건 너의 책임이라고, 못하면 아이를 탓했다. 이제는 그런 실랑이가 필요 없다. "집에 오면 바로 씻는 거야."라고 규칙을 정해주고 지키도록 했다.


그 뒤로 하루의 마무리가 평화롭게 끝난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을.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책임 회피 행동이 결국은 서로를 상처 주고 아이에게 좋지 않은 습관을 길러준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성장한다. 엄마로서 아직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아이를 위한 결정을 내가 대신해주고, 행동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게 엄마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12/16_14회 차 상담 후


이번 상담 시간에는 내가 갖고 싶었던 재능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담 2 회차쯤 선택했던 긍정, 결단, 놓음, 지혜, 유머, 자율, 자긍심을 다시 살펴봤다. 이미 몇 가지는 내가 행하기 시작한 것들이었다. 결단, 놓음, 자율, 같은 것 말이다.


예전에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미룸으로써 타인이 정해준 결정대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막상 직접 내가 선택하고 실천하니 뜻하지 않은 즐거움과 사고(思考)가 생겼다. 예측할 수 없어 두려웠던 미래나 남들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한 걱정으로 매번 눈치를 봤던 과거에서 벗어나 궁금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요구하고 물어보며 깨달았다. 사실 남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깊게 관심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아직 오직 않은 미래에 대해 지금 고민할 필요 없다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 되는 거다. 때로는 게으르더라도, 두렵더라도, 실패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 선택을 할 것이다. 내 인생은 나 말고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사 온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문뜩 지금까지 몇 번을 청소했더라 궁금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를 했다고 치면 50번만 하면 일 년이 간다니, 참 짧은 1년이다.


남편이 오랫동안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하루들을 열심히 달려줬으니 이제는 나도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느끼고 성장해야겠다. 나에게 매일 시간을 선물해 준 남편의 휴가가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하길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