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현실이 된대 (다)
드디어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생겼다. 언제부터더라. 대학교 졸업을 하고 남들 취업 걱정할 때 호주로 날랐다. 있는 돈을 다 긁어 왔지만 일을 구하기 전까지 버티려면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래서 찾은 숙소가 방 하나에 5개의 2층 침대가 있고, 잠기지 않는 문 뒤로 누구의 짐인지도 모른 채 뒤엉켜 있었던 곳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가 뛰쳐나오며 내게 경고하듯 소리쳤다. "No, don't go there. lot's of bedbugs!!!"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정신이 살짝 없으신 분이신가 했는데, 후에 우리나라에서는 박멸한 '빈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도 그곳에 머무는 3주간 내 피를 좋아하는 빈대는 없었다.
우리 집은 침대 없이 바닥 생활만 한지라 독립하면 꼭 푹신하고 눕자마자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포근한 침대를 갖고 싶었다. 이번이 나에게 손에 꼽는 침대 경험이 되는 셈이다. 거기다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2층 침대라니. 침대를 반쯤 가리고 있는 흰색 커튼을 밀치면 솜이 없는 얇은 이불과 개별 조명과 콘센트가 있었다. 옆 사다리로 올라가 커튼을 치면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불현듯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자주 놀러 갔던 친구집이 떠올랐다.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거실 같은 공동 공간에 다락방이 있었다. 원래 위치보다 두 계단 정도 높아 몸이 다 펴지지 않는 낮은 천장에 쓰지 않는 각종 잡동사니를 모아둔 창고였다. 거기서 분유통을 발견했는데 몰래 가루를 찍어 먹었다. 입 속에서 침과 함께 섞여 오랫동안 달달함이 퍼지는 게 최고의 간식이었다. 친구와 나는 보물을 발견한 듯 숨죽여 키득거렸다.
저녁 시간이 되자 각자의 음식을 들고 응접실에 모였다. 누군가는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말아 피우고, 자기 나라와 이름을 대가며 서로를 알렸다. 궁금한 게 많은 우리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시끌벅적했다. 레게 머리를 한 젊은 청년이 기타를 가져와 치기 시작했다. 음악 위로 나누던 대화는 밤이 깊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같은 방을 쓰던 뉴질랜드 흑인 여성 친구가 오늘은 뭐 하냐며 나를 깨웠다. 내가 영어를 배우며 상상했던 꿈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내가 된 기분이었다. 나이도, 모습도 상관없이, 마음 맞는 대로 친구가 되었고, 그렇게 게스트 하우스와 사랑에 빠졌다.
2년간의 워킹 홀리데이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사내 연애를 해 결혼을 했다. 신혼집은 직장 근처에 있는 서울숲역과 뚝섬역 사이에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들 사이에 즐비한 낮은 주택들 중 하나였다. 25년 정도 된 빌라의 3층이었는데 바로 위의 옥상까지 덤으로 주어졌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서울숲이 배 속에 있던 행복이와의 최애 장소였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을 느끼다 주택들이 하나씩 상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에 내 추억과 낭만이 있던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이 없었다. 그 흔한 자동차 한 대도 없이 전세금 대출 갚느라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하는 남편과 나는 아주 나중에 꼭 한 번쯤은 손님들이 머물 숙소를 만들자 했다.
시간이 흘러 서울의 왼쪽으로 이사를 왔다. 신혼집이 있던 동네는 개성이 넘치는 핫플레이스로 변했다. 하지만 이곳도 매력적인 곳이다. 성수동처럼 지식산업센터들이 있어 먹거리 걱정이 없었고,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파트가 많았지만 계획한 도시라 그런지, 아니면 고도 제한 때문인지 미로처럼 답답하지 않았다. 가시가 박힌 장미로 벽을 세운 울타리들이 없어 통행하는 사람들도 쉬어 갈 수 있었다. '그래, 이곳에 정착하자!'
다시 잊고 있던 로망이 떠올랐다. 이제 아이들도 제법 컸고, 그동안 재산도 제법 축적했다. 딸기값 아까워 입맛만 다시고 아이들만 챙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될 때마다 부동산이나 경매 관련 된 책을 읽었다. 생소한 용어들 때문에 처음 고른 책은 몇 페이지를 읽다 덮어 버리고, 에세이 형식의 가벼운 책들로 호기심을 먼저 키웠다. 저자들이 다들 성공한 이야기였으니 집 한 채 겨우 마련하고는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단지를 오다가다 아파트 상가의 부동산에 들렸다. 목적도 없이 방문한 건 처음이라 잔뜩 긴장했는데 여자 사장님은 아주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줬다. 안 그래도 자녀들 다 키우고 심심풀이로 시작하다 심심하던 차라고. 주전부리를 들고 여러 차례 놀러 갔다 공유숙박업인 에어비엔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침 지인이 두세 개 정도 운영 하고 있다고 했다. 많은 공간과 큰 자금이 들어가는 게스트하우스보다는 괜찮은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에게 부탁해 지인분을 만나 전반적인 내용을 들었다. 법적으로 까다로운 부분들이 많아 쉽지 않아 보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땅, 건물, 공유 숙박에 대한 공부를 꾸준하게 했다. 관련 책도 읽고, 세미나도 가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도 만났다. 제법 부동산 용어에도 익숙해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굴리다 이제는 행동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8% 짜리 고금리 적금 통장 5개의 차례로 만기가 되어 모아 두었다. 방이 한 개 있는 오피스텔을 구해 리모델링했다. 깔끔한 하얀 바탕에 더블 침대, 2인용 탁자와 의자, 주방기구, 약간의 도서 등을 구비했다. 숙소에 대한 정보와 근처 갈만한 곳들을 정리해 책자를 만들었다.
방문객이 한 명씩 늘 때마다 부족했던 부분들을 더 채워나갔다. 웰컴 티백이나 커피도 마련했다. 방문객 노트도. 이용 후기가 적히면 다시 안 올지도 모르는 그분을 위한 답글을 밑에 썼다. 1년 정도가 지났을까. 같은 분이 재방문하기도 하고, 친구가 추천해 줬다며 예약해 주고. 휴일은 물론이고 평일까지 예약이 꽉 찼다. 반신반의하던 남편도 신기해하며 확장을 권유했다. 만일을 위해 천천히 장소를 물색하고 신중하게 2호점을, 3호점을 냈다.
5년 동안, 전 세계의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만나러 떠날 계획이다. 다시 돌아오면 모두를 초대할 숙소를 마련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