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중한 육아 동지
어제 오후에 어린이집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 혹시 내일 6시에서 8시 사이에 연우 좀 부탁해도 될까요? "
" 네네, 가능해요!"
" 감사해요. 저녁 먹고 싶은 걸로 배달해 드릴게요."
" 괜찮아요. 부탁해 주는 걸로도 고마운대요?"
" 안되면 다른 지인들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사실 연우가 영재네 집에 제일 가고 싶다고 ㅎㅎ"
" 영광이네요^^"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 지 1년은 된 것 같은데, 반이 달라 인사만 겨우 하는 사이였다. 작년 가을쯤, 여느 때처럼 하원하고 영재는 바로 집으로 가고 싶은 엄마의 손을 잡고 옆 놀이터로 향했다. 영재와 키가 엇비슷하지만 몸이 좀 더 다부지고 강한 인상을 가진 연우도 있었다. 자신의 공간을 중요시하는 아이 같아 예민해 보였는데 영재가 눈치 없이 좋다고 따라다녔다. 알고 보니 둘 다 공룡이나 로봇 등 좋아하는 취향이 같았고, 금세 어울렸다. 영재가 좋아하는 친구라면 나도 용기를 내본다. 엄마들끼리도 친해야 어린이집 밖에서도 볼 수 있고, 교우 관계가 좋아지면 어린이집 생활도 즐거워지니까.
만들어진 외향으로 잠시 둔갑한 나는 집으로 초대를 했다. 아이의 친구집에 온 적은 처음이라고 하는 연우의 엄마는 고마워하며 초대에 응했다. 사실 이 단계까지 오기가 어렵다. 다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지만 막상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따로 약속을 잡아 만나고, 최종 단계인 집까지 방문하는 사이가 되는 건 손에 꼽는다. 어떻게 성공적으로 집을 공개했더라도 두 번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끼리 잘 맞는 것 외에도 어른들의 성격, 돈 씀씀이, 교육 가치관 등이 맞아야 비로소 육아 동지가 된다.
이제 연우 엄마의 이름도 알게 됐다. 물론 그녀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엄마로 불릴 테지만. 나리씨는 나와 같은 나이에, 전공도 같았다. 나는 졸업 후 다른 길을 갔지만 그녀는 여전히 전공을 살려 교육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수수한 옷차림에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는 게 매력적이었다. (나도 그런 외향인데, 그렇게 귀여우려나.) 책을 벗 삼은 남편이 예술의 혼을 묻어둔 채 회사를 다니는 것도 닮았다. 나름 던진 개그도 소리 내 웃어준다. 더 친해지고 싶다. 첫 만남은 나의 정신없는 수다로 끝난 것 같아 불안하다.
다행히 이번엔 나리씨가 우리를 초대했다. 이번엔 좀 더 진중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지 했는데, 또 내 입이 가만히 있질 않는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준다는 목적은 어디로 가고, 또 즐거웠구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친해진 지 6개월 정도 지났나. 그 사이 주말에 만나고, 엄마 없이 아이만 놀러 오기도 하고, 결국 지난달에는 가족 여행까지 성공했다. 인생에 친구들을 사귀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남을 갈구한 적이 있던가.
첫째가 아프고 집에만 있던 날이 있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인연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사람의 관심조차도 부담스러웠다. 둘째를 낳아도 마찬가지였다. 영재를 산책시킨다고 매일 오전에 나갔는데, 사람 없는 곳으로 피해 다녔다. 맞은편에 아기가 반가워 미소를 띠는 행인이 있으면 눈 마주칠까 고개를 떨구고, 제발 말 걸지 않길 바랐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기가 왔다. 자기보다 작은 아이를 경계하며 영재가 주춤, 내 다리를 붙잡았다.
사람을 기피하는 엄마를 닮아버린 둘째를 봤다. 세상의 고통 말고도, 무수한 즐거움도 사람들에게서 오는데, 나 때문에 알록달록 색을 알기도 전에 흰 도화지에 까만색이 칠해져 버린 것 같았다. 행복해질 기회를 뺏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곳으로 이사 오고 결심을 했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어떻게 관계를 맺는 건지 인사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누군가 첫째 이야기를 물을까, 조마했다. 그렇게 친구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음을 나눴다.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관계들이 더 많았지만, 계속 용기를 냈다.
어느새 영재가 바뀌었다. 초대하고 싶은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싶은 친구들이 생겼다. 옆 그네를 친구를 위해 맡기도 하고, 자기보다 훨씬 큰 형에게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물론 그러다 혼쭐이 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나도 동네 친구가 생겼다. 주말 동안 아빠가 일하느라고 없었는데 친구가 초대를 해줬다. 그 다음날 하루 정도는 아이와 둘이 보내야지 하고 도서관을 갔는데, 이런, 또 마주쳤다. 내 친구는 예약된 일정도 취소하고 나와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이 뭐 필요한가, 아이 보내고 할 일 없이 브런치 먹으며 수다 떠는 거 부럽지 않았는데. 나에게도 친구가 생겨 다행이다. 시시콜콜 투정 부릴 수 있고, 힘들 때 의지 할 수 있어서.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내가 또 그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사는 의미가 하나 더 더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