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배울 것 투성이다. 그래서 즐겁다.
20대 후반에 취업문을 두드렸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2년을 보내고 돌아와 막연하게 영어를 계속 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취업 박람회를 기웃거리는데 오빠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의 브랜드 회사가 눈에 띄었다. 마침 무역 관련 부서도 뽑고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원서를 냈고, 곧바로 부스에 계시는 분과 간이 면접이 진행됐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자전거 잘 탈 줄 알아요?" 아니. 자전거 못 타는 사람도 있던가. 당연히 탈 줄 안다고. 초등학생 때, 오빠가 나를 잡아 주는 척하다 몰래 손을 뗐는데, 그 길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곁들였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것처럼 보인건 나의 착각일까.
'자전거'라는 친숙함 때문인지, 건강한 취미 활동이 연상돼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봤는데, 운 좋게도 2차 면접을 봤다. 첫 취업치고 나이도 있고, 경력도 없었지만 한 번쯤 고민했거나 관심 갖었던 부분들에 대한 질문들이 많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었다. 3명의 면접관들도 당당한 나를 좋게 봐주셨고, 빠르게 취업 준비 늪에서 빠져나왔다.
본부장님을 시작으로 직원들 대부분이 자전거에 진심이었다. 단순히 사업을 하려고 모였다기보다는 자전거 타고 만지는 게 즐거워서 자연스레 업이 된 것 같았다. 틈나는 대로 자전거를 탄다. 출퇴근은 기본이고, 점심시간이나 주말까지. 남산 업힐을 즐기러 점심시간이 한 시간 반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나도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금방 그 무리에 섞였다.
주말에 젊은 직원들끼리 뭉쳤다. 가볍게 팔당댐에서 초계국수 먹고 돌아오는 코스였다. 왕복 40km 정도 되는 거리라고 설명을 해줘도 감이 안 왔지만 직원이 권장한 엉덩이 패드가 들어 있는 라이딩 바지는 하나 샀다. 등산용 바람막이를 걸치고, 헬맷과 고글은 빌렸다. 처음에 신나게 달리던 기세는 어디 가고, 금세 숨이 헐떡거리고 곧이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고, 뒤에서 밀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서 쉴 테니 다녀오라고 할 뻔했다. 얼굴이 뻘게져서 맛본 초계국수가 타들어가는 나를 달래 주었다. 며칠 동안은 다리를 절뚝이는 나를 보며 동료들은 즐거워했다.
그 뒤로 평롤러 타는 법, 페달에 연결하는 클릿 신발 사용법, 신호 기다리며 스탠딩, 오르막 댄싱 치기, 윌리로 장애물 넘기 등을 배웠다. (배우긴 했지만 다 마스터하지는 못했다.) 그때, 면접관이었던 부장님의 미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페달만 굴릴 줄 알았지, 자전거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구나. 하나씩 습득할수록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된다. 좀 더 높은 언덕을 오를 수 있게 됐고, 달리면서 물을 마실 수도 있고, 희망찬 만세도 할 수 있다. 배울수록 새로웠고, 내 것이 되어 자유자재로 쓰는데도 연습이 필요했다.
문뜩 모든 것에는 올바른 배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서 개헤엄을 칠 순 있지만 영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헬스장에서는 트레이너를 통해 기구나 몸 쓰는 법을 알게 된다.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배움을 통해 평범했던 대상도 특별해진다. 저절로 쉬어지는 호흡도 배우면 색달라진다. 걷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면 걸어지지만 잘 걷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세상엔 온통 배울 것 투성이다. 지루하기만 했던 삶이 새로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