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좋아하는 아들을 보며
아들 치아에 또 구멍이 났다. 오른쪽 아랫니를 신경치료하고 은색 크라운을 씌운 지 6개월 만의 일이다. 반대쪽에도 충치가 있다고는 했지만 잘 관리하면 1년 넘게 쓸 수 있다는 말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냥 충치도 아니고 구멍이라니. 한 달 뒤에 있을 정기검진을 기다릴 수 없어 다시 예약을 했다. 영재는 총 세 군데의 치과를 다녔다. 유아 전문 치과라 그런지 모두 놀이방이 있거나 누워서 만화를 볼 수 있었다. 치료가 끝나면 작은 장난감도 주었다. 그런 뇌물이 아이에게는 통할지라도 엄마 마음은 무겁기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치과의 이미지는 공포이다. 치과를 간 첫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삐뚤빼뚤한 치아를 가진 아빠의 유전자를 받아 송곳니가 튀어나온 오빠와 나. 엄마는 여자인 나만 걱정을 하며 치과로 데려갔다. 다행히 이를 뽑지는 않았지만 1년 넘게 교정을 하면서 충치가 많이 생겼다. 당시에 칫솔질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중 신경 쓰였던 충치는 앞니의 양쪽 옆이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치아색으로 새로 때웠지만 금세 경계선이 변색되었다. 후회해도 늦었다는 걸 이럴 때 하는 말이겠지. 활짝 웃을 때마다 한 번씩 흠칫 경직되곤 한다. 어쨌든 오랜 기간 치아를 손보는 동안 들었던 기계 소리와 그에 상응하는 아픔으로 치과 갈 때마다 공손함을 배웠다. 앞으로 두 손을 꼭 쥔 채 ‘저 무서워요. 제발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불쌍하고 두려움에 떠는 미약한 존재로 보일 수 있도록 과장되게 연기했지만 실제로 손에서도 식은땀이 났다.
아들과 나는 이어져 있다. 영재가 웃으면 나도 웃고, 울고 있으면 같이 슬퍼했으니까. 아이가 느낄 공포에 미리 겁을 먹었다. 이미 어렵고 아프다는 신경치료를 한번 경험했으니 이번엔 영재도 겁먹지 않을까? 치과 선생님은 지난번처럼 약간의 미소를 띤 채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줬다. “양치는 잘했는데, 옆에 이도 금 간 거 보니, 딱딱한 걸 씹었거나 이를 갈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닭고기가 끼어 있어 잇몸이 부어 아팠을 거예요. 임시로 구멍을 메꿔 뒀으니 2주 후에 잇몸이 가라앉으면 치료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차분함에 전염되어 긴장감이 누그러들었다. 오히려 영재는 짧은 치료에 아쉬워했다. 천장에 붙은 스크린으로 슈퍼윙스를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냥 돌아간다는 게 불만이었나 보다. 그래도 마음껏 고를 수 있는 미니 장난감으로 위안을 삼는다. 심란한 마음으로 데스크에서 치료비를 지불하고 있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해맑은 한마디. “치과에 또 언제 와요?”
지난번 신경 치료 때 마취를 했지만 아픈 구간이 있었다. 내 손을 꽉 잡고 "아윽!"하고 이겨냈으니까. 그럼에도 내 치료도 아닌데 치과를 갈 때마다 긴장하는 나와 아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건 첫 경험의 차이였다. 무시무시한 기계 소리와 양치를 제대로 못했다고 혼났던 나의 경험들과는 반대다. 기다리는 시간에는 책과 텔레비전이 있고, 의사 선생님의 자상한 목소리로 듣는 설명과 위로, 치료하는 동안에 헤드폰을 끼고 보는 만화 영상 같은 것들. 만약 나도 이런 처음을 겪었다면, 지금도 웃으며 치과 문을 열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