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잉의 《단식 존엄사》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가련한 배우는 무대에서 뽐내기도 하며 초조해하기도 하면서 그의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그만 끝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_맥베스
오랜 세월 의사로서 생로병사를 지켜봤지만 삶과 죽음의 문제는 여전히 어렵다고 말하는 저자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존엄사 과정을 지켜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놀라운 것은 책이 다루는 ‘존엄사’라는 무거운 주제와 달리 저자의 글은 따뜻하고 죽음을 맞는 과정은 아침에 뜬 해가 저녁에 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죽음이란 삶의 완수이며, 어떤 죽음은 편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의 저자인 비류잉의 엄마가 죽음을 직면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의연함이 바로 그것을 가르쳐준다. 삶의 의무를 다했기에 이제는 떠나도 되는 길이 죽음이며,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것.
《단식 존엄사》는 타이완의 재활학과 의사인 비류잉이 엄마의 단식 존엄사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한 것으로,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 ‘비비의 하늘’에 엄마의 단식 존엄사를 기록할 당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단식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당사자가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기까지 여러 단계의 고민과 준비가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존엄사’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에 걸친 과정과 실제적인 단식 존엄사 과정에 대해 구체적이면서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고 좋았던 것은 엄마의 존엄사 과정에서 비류잉 가족들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단식으로 세상을 떠나겠다는 엄마의 결심을 아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들. 책 마지막 부분에 저자의 남동생과 제부가 각각 엄마와 장모를 보내며 쓴 글을 덧붙인 것도 인상적이고 좋았다. 죽음 앞에서 의연한 어머니의 모습도, 세상과 천천히 작별을 해나가는 어머니 곁에서 힘든 시간을 견디며 서로 격려하는 가족의 모습도 새롭고 신선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우연히 이 별에서 태어나 언젠가 필연적으로 죽는다. 죽음에 초연했던 엄마는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에 관한 수업을 해주고 떠났다. 21일간 비류잉 가족은 죽음이 있음으로 삶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어진다는 엄마의 마지막 가르침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아쉬움과 이별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나이 들어 늙어가고 몸의 기능을 하나씩 잃어가는 노화의 과정과 그 끝에 있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미지의 세계. 정신분석학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대중적 글로 쓴 정신의학자 어빈 얄롬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회고록 《비커밍 마이셀프》에서 이렇게 말한다.
“늙는 일은 삶이 그냥 하나씩 하나씩 상실해 가는 빌어먹을 과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고 나는 더 위대한 평정심을 발견했고, 내가 가능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70대와 80대와 90대의 행복을 발견했다. 기억 상실은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손을 놓을 줄 아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큰 경지이다.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기 힘들 때, 이 생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을 알았을 때 그때 편안하게 세상의 손을 놓는 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병원에서 온갖 의료기기를 단 채 ‘의료사’ 하는 것보다 자신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고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현실은 우리를 파괴할 수도 있으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도 한다.
***
우리로서는 어머니가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마지막 레슨을 해주신 것 같았다. 죽음은 이처럼 평온할 수 있기에 미지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그래서 살아 있는 시간을 소중히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 없이 용감하게 죽음을 마주하게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