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빈 얄롬의《죽음과 삶》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는 말했다. “타버린 성 외에는 죽음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라.”
‘얄롬 박사 부부의 마지막 일상’이란 부제가 붙은 《죽음과 삶》은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죽음을 선택한 얄롬 부부의 이야기이다. 매릴린이 암 선고를 받은 후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하여 아내가 죽은 후 얄롬은 책을 완성한다. 책 후반부에서 어빈 얄롬은 아내를 잃은 슬픔과 고통의 한가운데를 통화하며 슬픔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말한다. 그가 경험하는 현재의 순간을 글로 남겨 상실의 슬픔을 느끼는 시간을 남게 하려고 글을 쓴다면서 얄롬은 말한다. “그것은 모두 환영이다. 그러나 위로를 주는 환영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부부가 함께 쓴 이런 책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얄롬 부부의 특별한 인생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여 한 사람의 결핍과 트라우마에 집중하는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평탄하고 평온한 일생을 누리는 행운이 주어진 이 부부가 만들어간 친밀한 정서적 관계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열다섯에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자와 결혼을 하여 75년을 함께 살면서 정서적으로 친밀한 교류를 하고,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자 선물이다. 특별한 결핍과 트라우마가 없는 그들의 인생 이력이며, 글을 써서 얻은 엄청난 성공과 지적 능력 그리고 평온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 등. 이 모든 것이 매우 드물기에 그들의 인생과 그 인생의 결과로 만들어간 상호보완적이고 애정 어린 관계는 또 다른 측면에서 정신분석의 관심 대상이 될 만하다.
매릴린은 암으로 인한 통증으로 인해 삶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가 없는 87세의 여성이 죽는다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라며 호스피스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택한다. 죽음을 앞두고서 매릴린의 보여준 담대함이나 죽음에 대한 수용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충만한 삶이 죽음에 대한 평온한 수용으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내의 손을 잡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남자가 그토록 내밀하게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아내를 잃고 쓴 글에서는 슬픔과 고통이 느껴지지만, 그 가운데서도 얄롬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상실로 인한 슬픔과 고통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둘의 여정을 생각하면 신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사별을 한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얻은 얄롬의 결론에 따르면, 살아있을 동안 관계가 좋았던 부부가 상실의 아픔에서 더 빠르게, 더 순탄하게 회복된다고 하니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어빈 얄롬은 자신이 치료를 한 환자 이야기를 토대로 쓴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치료의 선물』『니체가 눈물 흘릴 때』 등의 책으로 유명하고, 불문학자인 아내 매릴린 얄롬은 문학과 페미니즘에 관한 여러 저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