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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와회계]부자감세 vs. 투자자감세

금투세 폐지 추진에 대한 단상 - 그건 팩트가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다? 

연초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금투세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 상품으로 연간 5,000만원이 넘는 양도차익을 거둔 투자자(해외 주식, 채권 등은 연 수익 250만원 초과 투자자)에게 3억까지는 20%, 3억 초과분에 대해선 25% 세율로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원래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2022년 12월, 여야 합의를 통해 2025년까지 시행이 유예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폐지 추진이 선언된 것이다.


세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금투세 도입 때부터 찬성하는 쪽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를 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고, 소득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수직적 형평성이나, 비슷한 소득을 가진 사람들은 유사한 수준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수평적 형평성에도 맞는다고 생각이다. 


이자나 배당소득에 대해서 종합소득세를 부과하면서, 투자차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 또한, 역진적인 부가가치세나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꼼짝없이 부담하게 되는 근로소득세를 감안하면 충분히 명분 있는 세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실 나의 관심을 끄는 단어는 ‘부자감세’보다는 ‘투자자감세’다. 며칠 전, 금투세 폐지가 부자감세가 아니냐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자감세’가 아니라 ‘투자자감세’라고 대답했다.


지난 2022년 말 기준으로 국내 주식 투자자가 약 1,500만명인데 정부는 이중 15만명 정도가 금투세를 내게 될 것으로 예상했단다. 단순계산으로 금투세를 폐지하면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은 상위 1%의 투자자라는 말이다. ‘부자감세’라는 말이 나올 만하지 않나? 그럼에도 ‘부자감세’가 아니라 ‘투자자감세’란다. 1,500만 투자자 중 상위 1%정도만 혜택을 보게 될 것이 뻔히 보이지만, 나머지 99%의 투자자들도 금투세 폐지에 찬성을 한다는 주장이다. 


진짜?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현 정부 하에서 부자감세 논란이 일었던 정책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우선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25%에서 22%로),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 상향 조정, 증여세 공제 확대(5천만원에서 결혼이나 출산시 1억씩 추가) 그리고 주식 양도소득세 관련 대주주기준 완화(10억에서 50억으로 상향) 등이 있었다. 


난 그리 부자도 아니고, 또한 주변에 이런 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렇게 ‘부자감세 논란이 되는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필자가 확인하게 되는 반응은 절반 이상이 긍정적 반응이었다. 


10% 법인세율에 이런 저런 세액공제로 내는 세금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 대표, 종부세와는 별 관련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1주택자, 자녀 결혼을 앞두고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 주려는 부모들(재산이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증여세를 안내도 세무서에서 전혀 신경 안쓰니 걱정말라고 몇번이나 상담을 해줬던), 기껏해야 총 투자액이 1억도 안되는 진짜 개미투자자들... 이번엔 수년간 주식투자로 번 돈을 다 합해봐야 5천만원이 될까 말까한 개인투자자들까지.


이들은 언급된 정책들의 직접적인 수혜자들이 아니다. 그런데 왜 찬성을 할까? 앞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나면 직접 혜택을 보게 될 지 모르니까? 아니면, 직접 혜택을 볼 진짜 부자들이 시장을 활성화(?)하면 간접적으로 혜택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감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극히 비공식적이고 제한적인 서베이에 불과하지만, 감세정책에 대해선 거의 언제나 찬성이 반을 넘는다. (심지어, 한 지인은 최근 주식투자를 잘해서 자신은 금투세 대상이라며 강력하게 폐지에 찬성했다. 뭐 이런 경우야 폐지를 주장하는 게 당연할 지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앞으로도 계속 성공 투자하길 기원한다.) 


이렇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를 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법 개정이 안되면 금투세 폐지는 힘들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폐지 추진을 선언했나도 싶다. 지금은 벌써 잊혀진 ‘김포의 서울 편입추진’처럼 말이다.


하여간, 내가 겪어본 바로는 보수냐 진보냐 같은 구분보다 자기가 낼지도 모를 세금이 줄어드냐가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판단기준이다. 그것은 – 부자감세냐 투자자감세냐에 대한 판단 – 팩트에 기반하기 보다 믿음(자기가 부담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 그럼으로 감세는 옳다는 믿음)에 기반하는 듯 하다.


“구태의연한 부자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인 상생을 위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


"증시는 국민과 기업이 함께 상생하는 장이며 국민의 자산 축적을 지원하는 기회의 사다리다"


이 말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팩트가 아니라 믿음에 기반한다는 말이다. 믿는다는 데, 어쩌겠나?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구멍난 세수는 줄어든 세출 – 저&중소득층을 위한 복지, 연구개발, 교육지출 등의 감소 – 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영향과 댓가는 크고 심대할 것이다. 눈 앞의 이익(어쩌면 실제로 누리지도 못할 이익)을 위해 희생하기엔 말이다.


결국 세 사람이 있다.


점심을 공짜로 먹은 사람과 점심값을 부담하는 사람.  


그리고 공짜로 점심을 먹지도 못하면서, 공짜로 먹은 것 같은 느낌 속에 점심값을 함께 부담하고 있는 사람.


솔직히 사람들의 느낌적 느낌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공평과세원칙이 구현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나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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