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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Aug 30. 2023

영화가 아닌 글이어야만 했던 이유.

오랜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가장 1순위였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도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자책의 나날들을 한참 보내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게을러서도, 멍청해서도,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저 그럴 수가 없는 때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실은 집을 짓기 전까지도 나는 포기하지 못했었다.

‘집을 짓고 나면 작업실에서 꼭 영화를 만들어야지. 꼭 편집을 시작해서 완성을 시켜야지.’


하지만 집을 짓기 시작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고집스럽게도 쥐고 있었던 이 영화가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나는 어쩌면 영화라는 것 자체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무언가를 창작할 것이라면 지금은 오히려 글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다큐멘터리의 세계를 처음 만났을 때를 아직 잊지 못한다. 그 설렘과 흥분, 안도감과 확신이 한꺼번에 몰아쳐 오던 그 순간은 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거다. 이전의 나는, 삶에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처럼 공허함과 조바심에 허덕였다. 직업 바꾸기가 직업인 것처럼 그렇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여기에도 없다.’

‘아, 여기에도 없구나.’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도 독립 다큐멘터리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고 드디어, 그 길고 길었던 헤맴의 끝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 세계에는 내가 찾던 그 무언가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3년 동안,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도 나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영화는 때로는 스스로를 옭아매며 숨통을 조이는 밧줄 같다가도,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단 하나의 구원줄 같기도 했다. 마치 나의 삶처럼 어찌해볼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채로 변함없이 나와 함께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고, 이제는 인생의 한 챕터를 넘어왔음을 느낀다. 이제는 안다.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때를 만났을 때,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 어쩌면 해내는 것만큼이나 용기 있는 일일 수 있다는 것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놓아줌으로써 지켜지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집을 지으면서 나는 많이 변했고,  많이 배웠다. 매일매일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가 아쉬워졌다. 어떤 형태로든 이것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들었고, 처음엔 나에게 익숙한 방식인 영화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화는 지금의 나와는, 특히 집을 짓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었고, 특히 영화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크게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지금의 나에겐 아직 준비가 안된 일처럼 느껴졌다. 그보다 글이야말로 지금의 내가   있는 가장 솔직하고 온전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큐멘터리 장르가 재밌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힘들었던 이유가 결국엔 필연적으로 타인의 삶으로부터 나의 이야기를 길어내야 한다는 어떤 고통과 머뭇거림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나의 이야기를 한다 해도 타인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지금의 나는, 즐겁게 받아들일  없을  같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는 안될  같았다. 나의 이야기를,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 어떤 곳에도 숨지 않는 솔직함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글자도,  토시마저도 온전히 나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나만의 책임과 의지로 기록하고 싶었고, 그만큼 어떤 것에 있어서도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영화가 아닌, 글을 쓰게 되었다. 집을 짓는 과정과  속의 나에 대해서. 그리고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삶은 참 재미있다. 늘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꼭, 글이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다니. 늘 모든 것을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서, 못하는 것들은 아예 시작도 안 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 마음들을 조금씩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글을 못써도 괜찮다. 그냥 솔직하게, 있는 힘껏 쓰자고 나를 다독인다. 이미 나는 이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으니 그걸로도 충분한 거니까. 글을 쓰는 기쁨과 재미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면서 ‘글쓰기’의 매력에 푹 빠져있으면서도, 가끔씩 아주 사무치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영화가. 그리고 영화를 만들던 내가. 아직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어떤 것에 가슴을 열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게 좋겠다고, 이건 글이어야만 한다는 영감을 어느 순간 받은 것처럼 분명 그날은 올 것이다. 처음 영화를 사랑하게 됐던 바로 그 순간처럼, 확실하고 결코 모를 수 없는 강렬한 끌림으로, 아, 이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바로 그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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