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을 올리고 불을 켜던 날.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순간이 몇 있었다. 그중 가장 강렬했던 순간을 꼽아보면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이 바로 지붕을 올리던 날이었다. 나의 집은 바닥과 벽체, 지붕을 따로 만들어서 조립하는 방식인 패널라이징 방식으로 지어졌는데 이 날은 미리 만들어 둔 1층과 다락이 있는 지붕 부분을 결합하는 날이었다. 지게차로 지붕을 들어 올려 1층 벽체 위에 올리기로 했다. 나는 지게차 운전을 못하니 문작가님과 창수쌤이 도와주셨고 나는 조마조마하게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봤다. 몇 번 왔다 갔다 자리를 맞추더니 지붕이 벽체 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마침내 온전한 집 형태가 완성됐다. 벽이 생긴 것만으로도 안정적인 공간의 느낌이 들었는데 지붕까지 얹어지자 정말 내가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한참을 밖에서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봤다.
‘와, 정말 내 집이구나.’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온 동네에 소문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동네 사람들!! 제가 지금 집을 짓고 있는데요, 오늘 지붕이 올라갔어요!!!’라고.
그저, 행복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1년 전 건축학교에서 동기들과 함께 집을 지으며 지붕을 올렸을 때도 뿌듯하고 기뻤는데 이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정이었다. 신기하고, 벅차고, 집이라는 걸 직접 만들어 낸 나 자신이 마냥 대견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일을 마치고도 집을 떠나기가 아쉬워, 웬일로 깔끔히 청소도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그때 문작가님이 오셔서 등을 한번 달아보자고 하셨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작업실과 화장실에 전등을 달았다. 스위치 자리에 빼꼼히 나와있던 선에 스위치도 연결했다. 그다음 메인 전기선을 외부 콘센트에 꽂아 집 전체의 전기를 연결했다. 준비 완료. 내가 차단기의 전원을 올리자 문작가님이 스위치를 켰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반짝, 불이 켜졌다.
“와…”
내가 조용히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하자 문작가님도 함께 손뼉 치며 호응해 주셨다. 그렇게 조촐한 점등식(?)을 마쳤다. 이제 나 혼자만의 시간. 작은 불이 하나 켜진 집을 고요하게 둘러보았다. 작업실, 화장실, 그리고 주방까지. ‘싱크대가 여기로 들어가겠구나.’ 줄자로 다시 한번 사이즈도 재보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요리하는 흉내도 내봤다. 조금 옆으로 가니 거실이 있다. ‘여기 작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겠지.’ 설계를 하면서 시작했던 상상들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있던 소박한 일상이 어느새 성큼,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사다리를 타고 다락으로 올라가 가만히 앉아보았다.
‘여기가 내 집이구나. 내가 만든 소중한 나의 집.’
어둡고 조용한 집 안에서 내 마음은 기쁨으로 요동 쳤고 행복감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마음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느껴보았다. 그건 어떤 불순물도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복, 그 자체였다. 집을 짓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충만한 감정을 느꼈다. 어쩌면 살면서 처음으로, 이토록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행복했다. 한참을 거기 앉아 내 마음과 대화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해야 하는데 이 마음을 안고 숙소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기분을 어찌할지 몰라서 발을 동동거렸다. 동네방네 떠들고 싶으면서도 이 기분은 집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기에 누구나에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조용히 식당으로 가서 손작가님에게 말을 걸었다. 불을 켰다고. 너무 좋다고. 온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싶은데 말할 데가 없다고. 아니 할 수가 없다고. 빙그레 웃으셨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시는 것 같았다.
이 날 나는 이 경험으로 평생을 살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어보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어찌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집을 짓겠다고 결심했는데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멋진 일이었다. 나는 이 날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집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집이 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