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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센도 Jul 16. 2023

드레스로 읽는 그림



메디치의 부와 명예를 말하다 


브론지노, 아들 조반니와 엘레오노라 톨레도, 1545년경, 패널에 유채, 115 × 96 cm ,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푸른 색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앉아 있다. 도자기 같이 매끈한 피부, 관람자을 내려다 보는 듯한 서늘한 눈빛과 냉담한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입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 장신구들이 이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케 한다. 

머리 뒤에서 번져나오는 미묘한 푸른 빛이 마치 후광처럼 보인다. 영원불멸 하는 신적인 존재처럼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당시 에스파냐에서 나폴리 총독으로 부임했던 페드로 알바레스데 톨레도의 딸이자, 피렌체의 최고 통치자였던 였던 코지모 데 메디치 1세의 아내였던 엘레오노라 톨레도이다. 이 그림에서 코지모 1세의 공식 궁정화가였던 브론지노(Agnolo Bronzino, 1503– 1572)는 엘레오노라의 개성과 인간적인 면모를 없애고, 그녀를 '영원불멸' 할 것 같은 비현실적 인물로 표현했다. 이처럼 세련되지만 차갑고, 우아하면서도 다가가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의 분위기는 브론지노의 특징이며, 매너리즘(후기 르네상스) 시기 궁정 초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브론지노, 코지모 1세 데 메디치 (재위: 1537 -1569), 1550년 경, 패널에 유채, 105 x 87 cm , 팔라초 피티, 피렌체

그녀의 남편 코지모 대공은 1530년에 메디치 가문이 공화정이 아닌, 전제 군주정 체제로 전환하여 피렌체로 복귀한 이후, 그 정권을 공고히 한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스페인 왕가의 혈통이자 당시 유럽 최고의 갑부였던 나폴리 부왕의 딸인 엘레오노라와 정략 결혼을 함으로써, 유럽 명문 왕실 혈통과 엄청난 부를 동시에 얻고자 했다. 

검은색 벨벳과 금사, 은사, 은회색의 새틴 실크 원단 등 다양한 텍스처들로 구성되어,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드레스.

엘레오노라가 코지모와 결혼함으로써, 메디치 가문에 가져다준 부와 명예는 실로 어마어마 한 것이었다. 그렇게 메디치가의 안주인이 된 엘레오노라가 가문의 미래인 자신이 낳은 아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절대 권력과 영원불멸의 왕실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해 낸 초상화로 꼽힌다. 

엘레오노라의 허리에는 조각가 첼리니와 금세공사가 협업으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벨트가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를 받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엘레오노라가 입고 있는 드레스이다. 귀걸이, 목걸이, 머리 장식, 의상의 곳곳에 달려있는 수많은 진주들. 검은색 벨벳과 금사, 은사, 은회색의 두꺼운 새틴 실크 등 다양한 텍스처의 최고급 원단들을 총집합해 정교한 기술로 완성한 드레스. 당대 최고가의 재료와 장인의 기술이 총집합된 이 드레스는 드레스 자체의 가치도 가치이지만, 그 고급스러운 질감와 빼어난 완성도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 자체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붓질의 흔적이 전혀 없이, 빛이 표면에 닿는 효과로 질감과 색감을 표현하는데 있어 최고의 대가였던 브론지노였기에 이 드레스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코코의 꽃, 그리고 지식인 여성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1756, Oil on canvas, 201 x 157 cm, Alte Pinakothek, Munich

웅장하게 늘어진 금빛 커튼 사이로, 화려한 초록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비스듬히 몸을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다. 주름과 레이스, 장미꽃 장식으로 가득한 드레스는 초상화의 주인공인 여인의 뽀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화려한 의상 때문에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녀의 오른쪽 손에는 작은 책한 권이 들려있다. 아마도 그녀는 책을 읽다가 잠깐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18세기 프랑스의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부셰( François Boucher, 1703–1770)가 그린 마담 퐁파두르의 모습이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르(1721-62)는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 왕실과 귀족사회의 최고 실세,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부셰 뿐만 아니라, 당대 수많은 분야의 예술가들과 계몽 지식인들을 후원하는 '살롱 문화'를 주도한 '지식인 여성' 이기도했다.

(좌) 부셰, 마담 퐁파두르, 1750-58,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 (우) 부셰, 마담 퐁파두르, 1758,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많은 궁정 화가들이 이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중에서 그녀의 사랑스럽고 우아하면서도 지적인 매력을 잘 표현한 화가는 부셰였다. 특히 책을 들고 느슨하게 기대 앉은 자세는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자세로, 일반적인 왕가 초상화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녀는 ‘지식인’ 혹은 ‘계몽적 철학자’으로서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염두해서 이러한 스타일의 초상을 화가에게 일관되게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도 처음에는 화면 가득 화려한 의상이 눈에 띄이지만, 자세히 화면릏 잘 살펴보면 그녀가 뛰어난 지성을 겸비한 여성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요소들을 화면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부인 뒤에 있는 큰 거울에 비친 책장과 손에 든 책, 열린 서랍과 편지 봉투, 촛대, 편지를 봉하는 인장, 잉크병, 깃털펜, 바닥에 놓인 백과전서로 보이는 두꺼은 서적 등이 그녀의 일과와 지적인 면모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핑크빛 실크 구두를 신고 있는 발 아래는 부인은 상징하는 장미꽃과 펜, 악보 등이 놓여 있는데, 그녀가 예술에 대한 조예 역시 깊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그려질 당시, 마담 퐁파두르는 삼십대에 접어들어 있었고, 이미 왕과 잠자리를 갖는 의무에서도 벗어나 있었지만, 삶의 윤택함이나 권력에 있어서는 가히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루이 15세의 공식정부로의 승인을 거쳐, 1752년에는 공작부인으로 승격되어 당시 여성으로서는 성취할 수 있는 최고 권력에 올랐으며, 그에 더해 왕비 다음가는 자리인, 베르사유의 수석 레이디로 임명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된다. 


부셰가 표현한 화려한 드레스는 여성적 장식성을 추구하는 로코코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며, 당시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던 마담 퐁파두르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부셰는 거기에 '현명한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살짝 얹어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로코코의 꽃', 마담 퐁파두르를 완성 시켰다.






19세기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초상


앵그르, 무아테시에 부인, 1856, 캔버스에 유채, 120 x 92 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앞서 부셰가 그린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보다 1세기 정도 뒤에 그려진 작품이다. 같은 프랑스 화가의 작품이지만, 100년의 시간차 만큼이나, 두 작가의 초상화 스타일도 많이 다르다. 부셰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화사하고 장식적이고 뭔가 나른한 느낌을 주는 반면,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작품에서는 깨끗한 선과 색채, 그리고 붓질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매끄러운 표면 촉감이 느껴진다. 로코코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이 보여주는 표현의 차이이다. 

티끌만한 결점도 보이지 않는 매끄러운 피부표현와 머리카락, 너무 우아하게 휘어져 뼈가 없어보이는 손가락. 앵그르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고전주의자였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당시 프랑스 고위관료의 딸이자, 은행가이며 레이스 거래업자였던 무아테시에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관료, 남편은 금융가이자 사업가로, 전통적 귀족 계급이 아니라, 평민 출신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하고, 당시 산업화의 진행 속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의 상류층 여성이 었던 것이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에 가볍에 기대고 앉아 있는 자세가 특이하다. 앵그르는 모델의 이 손모양과 자세를 고대 로마의 도시 유적인 헤라쿨라네발굴된 어느 저택 벽화에서 차용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신흥부르주아 계급이나 평민 계급이 자신들의 초상화를 주문해 그린 예는 이전에도 많았다. 앵그르 역시 당대 최고 인기 화가였던만큼, 다양한 상류 계층의 초상화를 그렸다. 특히 그는 최상류층 여성들의 초상화를 많이 의뢰 받았다. 인물을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하게, 그리고 완벽히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그리는 그의 능력은 부유한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 가장 빛을 발했다. 

(좌) 앵그르, 브롤리 공주, 1851–5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 (우) 앵그르, 오송빌 백작 부인, 1845, 프릭컬렉션, 뉴욕

그 중에서도 이 무아테시에 부인의 초상화가 보여주는 화려함은 남다르다. 리옹산 플라워 실크 드레스와 자수정, 가닛, 오팔, 에메랄드 등 찬란한 보석들로 치장하고 있는 부인의 모습은 그 어떤 왕족이나 귀족 못지 않은 고귀한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은 완벽한 세련미와 우아함을 추구했던 앵그르의 집요함과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의 독보적인 기량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최고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가슴 한 가운데, 꽂은 두툼한 자수정이 박힌 브로치가 정교한 드레스의 꽃무늬와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팔찌에 붉은 색의 가닛과 우윳빛 오팔, 초록색 에메랄드 같은 보석들이 모델의 부유함과 세련미를 돋보이게 한다.


뿐만 아니라, 부인이 앉아 있는 핑크색 공단 소파, 배경으로 보이는 중국 풍 도자기와 부채, 거울과 가구까지. 이 초상화는 19세기 중반 유럽, 특히 파리의 성공한 평민 계급, 즉 부르주아들이 향유했던 엄청난 부와 풍요를 반영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이 초상화는 무아테시에 부인이라는 한 여인의 초상이면서, 동시에 근대화와 산업화 이후, 유럽 사회의 중심으로 변화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초상인 셈이다.








참고문헌

후카이 아키코, 《오트쿠튀르를 입은 미술사, 씨네북스, 2009

최정은 ,《사랑의 그림》, 세미콜론, 2013

문소영, 《그림속 경제학》, 이다미디어, 2014

윤성원, 《세계를 움직인 돌》, 모요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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