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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센도 Jul 31. 2023

머리카락, 유혹의 그림



성녀(聖女)가 너무 아름다울 때

티치아노,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33-35,   캔버스에 유채,   84x69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이 풍만한 몸을 나체로 드러내고 있다. 탐스럽고 긴 금발을 두 손으로 움켜잡아 몸을 가리고 있지만, 그럴 수록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눈동자에는 눈물이 어른거리고, 귀도 붉게 묽들었다. 그녀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격앙 되어있다. 화면의 아래 여인의 옆에는 작은 향유 단지가 놓여 있다. 길고 긴 머리카락과 향유병은 기독교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상징하는 것들이다. ‘육탐’으로 더럽혀진 타락의 아이콘에서 ‘참회의 성녀’로서, 예수의 제자 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준 인물, 마리아 막달레나. 이 관능적 여인이 바로 그녀이다. 

(좌) 막달레나 마이스터, 막달레나와 생애의 여덟가지 이야기, 1280 -1285,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 (우) 마리아 막달레나,스포르차 속인용 기도서 그림, 1490-1521

13세기부터 온 몸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감싸고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형이 나타난다.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은 일화와 예수 사후 광야에서 고행을 했다는 전설이 합쳐지면서, 이후 성녀의 긴 머리카락은 '참회'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일화와 기록은 성서와 전설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 버전은, 그녀가 막달롬 성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마귀가 들려서, 기사의 늠름한 길을 걸은 오빠 라자로, 긍휼의 아름다운 길을 택한 언니 마르타와 달리, 더러운 육탐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 그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아, 예수에게 다가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회개하였다고 한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긴 머리칼로 예수의 발을 닦은 후, 향유를 발랐다는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티치아노, 날 붙잡지 말라, c. 1514, 캔버스에 유채 110.5 x 91.9 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를 처음만난 사람 역시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

예수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그의 부활을 맨 처음 목격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13번째' 제자라고도 불릴만큼, 중요한 성인이다. 한 때 창녀 혹은 간음하는 여인이었던 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일화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전설이 덧씌워지면서 사람들을 매료 시켰다. 

(좌) 도나텔로, 마리아 막달레나, 1455년경, 나무, 188cm, 피렌체 대성당 세례당 / (우) 보티첼리, 성삼위일체, 1491-93 화면 왼쪽에 긴 머리의 노파가 성녀이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승천한 이후, 그녀는 풀도 나무도 없는 불모의 광야로 나가서 아무것도 먹지 않는 극도의 고행으로 참회의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은 일화와 예수 사후 광야에서 고행을 했다는 전설이 합쳐지면서, 이후 성녀의 긴 머리카락은 '참회'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광야에서 고행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대개 변변한 옷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발 아래까지 늘어지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감싸고 있는 초췌한 여인이나 노파의 모습으로 표현되곤 하였다.

엘 그레코, 마리아 막달레나, 1578-80, 캔버스에 유채, 108 x 101 cm, Worcester Art Museum, 메사추세츠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16, 17세기 화가들에게 가장 많이 주문이 들어왔던 주제였다. 특히 1517년 독일에서 시작된 마르틴 루터의 개신교 운동(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카톨릭에서는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는 그림들을 교화의 수단으로 내세운다. 신앙적 변절자들인 개신교도들에게 카톨릭으로 다시 개종할 것을 권유하는 '참회'의 슬로건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가장 잘 어울리는 성인이었던 것이다.

귀도 레니, 참회하는 막달레나, 1627, 캔버스에 유채, 178x138cm, 프란체스코 미켈리 컬렉션

문제는 죄악과 참회, 관능과 정숙이 공존해야 하는 이 성녀를 표현하는 데 있어 그 경계가 애매했다는 점이다. 성녀의 나체는 원래 신 앞에서 한 올의 거짓도 없는 진실만을 맹세하겠다는 '벌거벗은 진실 nuda veritas'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중세까지 만해도, 종교화에서 성인들은 옷을 꼭 갖추어 입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15세기 경부터는 남녀 할 것없이 종교화에서 성인들의 신체 노출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이러한 해석 때문이었다. 또 성녀의 긴 머리 역시 살펴보았듯이, '참회와 뉘우침'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인간적, 여성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 문제였다. 그의 작품 속 여인은 기독교 성인이라기 보다는 비너스 같은 이교의 여신이나, 작정하고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좌) 티치아노,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65,캔버스에 유채, 119 × 98 cm , 에르미타주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 (우) 티치아노,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560-67, 캔버스에 유채, 128 x 103 cm, 카포디몬테 미술관, 나폴리/ 비슷해보이지만 풍경의 묘사와 해골, 성서 같은 서술적 요소들이 다르다. 둘 중 나중에 제작된 카포디몬테 미술관 소장작이 성녀의 가슴을 좀더 가려주고 있다.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에서는 종교재판을 통해 이전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예술작품의 창작을 검열했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티치아노 역시 그러한 교회의 정책을 피할 수는 없었다. 1533년 작품 이후, 20여년 뒤에 그려진 티치아노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결국 다시 옷깃을 여미는 수 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요구하는대로, 옷으로 가릴 곳을 가려주고 머리숱도 줄여서 치렁치렁한 느낌을 단정하게 정돈시켰다. 또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그 위에 놓여진 성경, 풍경 묘사를 추가하여 종교적인 서사를 더 배치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종교적 요소로도 티치아노 특유의 아름답고 관능미 넘치는 성녀의 분위기를 다 가릴 수 없었다. 특히 다른 요소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성녀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으로 압도하는 티치아노의 표현은 성녀와 창녀, 참회와 유혹의 경계를 오가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특징을 가장 돋보이게 만들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레이디 릴리스, 1866–1868, 1872–73, 캔버스에 유채, 96.5 cm × 85.1 cm, 댈러웨어 미술관 

하얀 드레스와 백장미들, 여인의 매끄러운 흰 피부, 그리고 커다란 붉은 양귀비 꽃 한 송이와 여인의 손목에 둘러진 붉은 팔찌, 그녀의 붉은 입술이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여인이 빗고 있는 탐스럽고 긴 금빛 머리카락이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분위기가 강렬하다. 

(좌) 존 콜리어, 릴리스, 1887, 194×104 cm, 앳킨슨미술관 / (우) 로제티, 릴리스, 1867, 종이에 수채,과슈, 51.3x44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작품의 제목인 레이디 릴리스(Lady Lilith)는 유대 탈무드 전설에 나오는 여성이다. 그녀는 아담의 첫 아내였지만, 아담과의 결혼생활을 거부하고, 악마들과 어울리며 남자들을 유혹하고 아이들을 증오해 살해했다고 한다. 창녀 혹은 마녀이며, 동물로는 사악한 뱀으로 비유되어 온 전형적인 '팜므 파탈'이다. 작품의 뒷면에 화가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 – 1882)가 직접 쓴 짧은 시(sonnet) <육체의 미>에는 다음과 같이 그녀는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덫으로 남자를 끌어들여...
장미와 양귀비가 릴리스의 꽃이다. 오 릴리스여!
그대가 내뿜는 향기와 뱀의 허물처럼 벗어지는 부드러운 키스, 그리고 부드러운 잠의 유혹을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 남자의 심장은 자신을 목을 졸라 죽인 그녀의 황금빛 머리카락으로 둘러싸여 있네.


하지만, 릴리스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해도 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문제는 없다. 여성의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유혹적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화가가 이 작품에서 의도한 바이기 때문이다.

로제티, 파지오의 정부 Fazio’s Mistress, 1863–1873, Oil paint on mahogany, 43.2 × 36.8cm, 테이트, 런던

작품 <파지오의 정부> 역시 전형적인 로제티 스타일의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명 '로제티식 여인(Rossettian Women)'이라 불리는 이 여인들은 꽃이나 화려한 장식 무늬를 배경으로, 화려한 의상과 보석, 악세사리들로 치장을 하고 있다. 대개 넓은 어깨와 각진 턱, 풍성한 금발이나 붉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퇴폐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어딘가 남성적인 강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팜므 파탈'들이다. 화가는 이러한 작품들에 고대 신화나 전설, 중세 문학 작품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의 이름이나 제목을 붙이고, 작품 뒤에는 어울리는 짧막한 시(소네트, sonnet)를 덧붙여 작품을 완성했다.

티치아노, <거울을 든 여인>, 1515, 캔버스에 유채, 99×76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좌)로제티, 머리 빗는 여인, 1864, 종이에 과슈, 수채 외, 34.2 × 31.1 cm, 개인소장 / (우)로제티, 파지오의 정부, 1863- 1873

머리를 손질하는 관능적 여인들의 이미지는 여성의 머리카락에 대한 로제티의 페티시젹 취향을 반영한다. 또한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 같은 16세기 베네치아 화파의 여성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로제티는 19세기 중반 영국 화가, 시인, 비평가들의 모임인 라파엘전파 형제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핵심 멤버였다. 라파엘 전파는 말 그대로, 라파엘 이전(pre) 시대, 즉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순수함으로 회귀를 주장했다. 로제티는 그룹의 멤버들 중에서도 중세 문학과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가장 지속적으로 표현했던 화가였다. 1853년 라파엘전파가 해체 된 후, 그는 그림이 어떤 이야기나 서술이 아닌, 작품 자체의 순수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유미주의'를 표방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영국 상류층의 남성 고객과 후원자들의 취향을 겨냥한 치명적 매력의 '팜므 파탈'들의 반신 초상을 집중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한다.

(좌) 티치아노, 플로라, 1515년 경,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 (우) 로제티, 보카 박시아타 (키스한 입술), 1859, 보스턴 미술관

작품 <보카 박시아타 Bocca baciatia>는 '키스한 입술'이라는 의미로, 14세기 보카치오가 쓴 소설집 <데카메론>에 나오는 말이다. 이 이야기 속 여성 알라티엘이라는 여성은 8명의 남자와 천번의 잠자리를 하고 9번째 남자인 알가브왕과 서로의 즐거움을 위해 결혼했다. 복종, 순종, 도덕적 모범의 대상으로서 여성 캐릭터가 아닌 남성을 유혹하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새로운 캐릭터의 여성상이다. 

로제티, 푸른 내실, 1864, 캔버스에 유채, 84 x 70.9 cm, Barber Institute of Fine Arts, 버밍엄

작품 <푸른 내실>에서는 남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한 여성이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질감을 자랑하는 의상과 보석, 장신구들로 치장을 한채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또 동양의 도자기를 연상시키는 뒷 배경과 동양적인 악기를 등장시켜, 동서양의 이국적인 요소를 결합시키고 있다. 색감과 질감, 여성과 남성, 동양과 서양,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보이는 이미지 그 자체로, 관람자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좌) 로제티. 판도라, 1871, 캔버스에 유채, 131x79cm, 개인소장/ (우) 로제티, 페르세포네, 1874, 캔버스에 유채, 125.1x61 cm, 테이트, 런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와 페르세포네는 유혹에 넘어간 여성이다. 성경으로 치면 '이브'와 같다. 판도라는 열어보지 말아야할 상자를 열어 인류를 고통에 혼돈에 빠뜨렸고, 페르세포네는 석류 네 알의 유혹을 이기 못해, 영원히 지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에 빠졌다. 두 작품 모두 로제티의 불륜 관계 연인이면서 뮤즈였던 제인 모리스(Jane Morris)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이처럼 당당하고 노골적인 유혹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로제티의 여인들은 유혹과 공포라는 이중적인 매력을 남성 관람자들에게 어필한다. 사실 이러한 팜므 파탈적 여성 이미지는 로제티만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유럽 문화예술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개선을 요구하던 여성 해방 운동이 유럽에서 급격하게 성장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 여성 참정권 운동의 확산은 남성들에게 자신들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당시 예술 작품에 메두사, 유디트, 살로메, 릴리스 등 성경이나 고대 신화, 중세 문학 등에 원형을 둔 '쎈' 여자 캐릭터들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아름답지만,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남성을 유혹한 후 그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펠리시엔 롭스,  창부 정치 Pornocrates, 1878 , 수채화, 70 x 45 cm, Sammlung M. Mabille

여자는 정작 가려야할 곳을 가리지 않고 눈을 가린 채, 돼지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고 있다. 돼지의 발밑에서 회화, 조각, 음악, 시가 절망 하고 있다. 여성의 참정권이 생기면 이처럼 무지몽매한 여자들이 지배하는 타락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 대부분은 예술작품이 사회적, 도덕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 속에서,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가부장제를 위반하는 여성들이야 말로, 그들에게는 도덕적으로 '훈계' 하고 '교화' 시켜야할 대상이었다. 

홀먼 헌트, 깨어나는 양심, 1854, 테이트, 런던 /  홀먼 헌트, 페어베어부인과 아이들, 1864, Torre Abbey Historic House and Gallery

같은 라파엘 전파의 주요 멤버였던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 1827 –  1910)의 작품은 그러한 그룹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깨어나는 양심>에서 젊은 매춘 여성이 자신의 부도덕함을 깨닫고 남자의 무릎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페어베어 부인과 아이들>에서는 정숙한 아내,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범적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로제티, 창가의 여인La Donna della Fine , 1879, 캔버스에 유채, 100x 74cm, Fogg Art Museum,  Massachusett

그에 비해, 남성을 유혹하고, 남성적인 강인함 마저 드러내며 화면을 압도하는 로제티의 팜므 파탈들은 라파엘 전파 작품의 여성 이미지로서 상당히 예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녀들은 19세기 후반 유럽에 남성과 동등해지려고 하는 '위험한' 여자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한 시대적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처럼, 그녀들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굴복하는 게 나을 것이다. 








참고문헌


노성두, 성화의 미소, 2004, 아트북스

손영희, 라파엘전파 회화와 19세기 영국문학, 2017,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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