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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 Oct 23. 2023

감자가 뭐

감자도 꿈이 있다

뭐 대부분 그렇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이직하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나한테 지인이 본인이 다니는 콜센터로 이직하라며 말했다.


“말하는 감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말하는 감자라니. 낄낄대며 웃었지만 왜 하필 감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미국에도 카우치 포테이토라는 관용어가 있는데, 소파에 누워서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잉여를 가리키는 말이다.


왜 감자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아사하지 않게 도와준 감자를 이런 관용구에 이용하는 것은 좀 부당하지 않나 생각했다. 같은 구황작물인 고구마에게는 그런 표현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또 묘하게 그 관용어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감자와 잘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이거 부당하지만 찰떡인데?

아마도 감자의 외모가 그런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게 아닐까? 땅에서 캐내서 씻어도 흙과 비슷한 껍질색에, 껍질을 까도 뭐 인상적일 것 없는 미미한 노란빛 속살. 울퉁불퉁 투박하면서 둥그런 밋밋한 외형. 근데 사실 맛도 그렇다. 심심하고 담백해서 사실 그 자체만으로 맛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외모, 맛 모두 어디 내놔도 특색 있지는 않다. 감자의 이런 요소가 잉여의 이미지와 맞긴 하다.





‘말하는 감자’는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어느 앱의 익명 글에서 시작했다. 대학 졸업한 지 열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는데 너무 공감 됐다. 교수나 후배들이 4학년에게 기대하는 선배로서의 모습, 최고 학년으로서의 역할이 있겠지. 근데 사실 좋아서 4학년이 된 것도 아닌데 모든 4학년이 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다. 그냥 시간이 흘러서 4학년이 됐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맡은 일만 하면서 없는 듯 있게 지낼 테니까 건드리지 말고 냅둬 줘. 이거 완전 회사에서의 내 심정이잖아! 나도 말하는 감자였어!

그래. 감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감자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관용어나 밈이나 그냥 감자를 갖다 붙인 건 아니었어.


뭐 그런데 난 감자 진짜 좋아한다. 고구마의 퍽퍽함보다 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삶은 감자가 식으면 심지어 쫀득해진다. 그래서 난 식은 감자를 더 좋아한다)이 참 좋다. 고구마의 단맛은 금세 질리지만 감자의 담백한 맛은 어떻게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카우치 포테이토라는 관용구를 조금 더 풀어보자면 소파에 누워 종일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잉여를 말한다. 고구마칩이 아닌 감자칩.

감자는 수수하고 밋밋하고 특색 없는 게 특색이지만, 그것만으로 존재감을 가진다. 어떤 재료와 함께 어떤 방법으로 요리하냐에 따라 감자는 달라진다. 어디에나 잘 어우러지며 시너지를 내주는 게 감자의 장점이다. 또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영양도 풍부하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지닌 감자가 밋밋하다고 해서 꿈이 없는 잉여이겠는가. 감자와 가까운 종인 토마토는 주스가 되고 싶기도, 케첩이 되고 싶기도, 심지어는 춤을 추겠다고 난리인데 감자라고 못할 게 뭐가 있어. 아니 감자는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감자에 철판을 꽂고 전선을 연결하면 전구에 불도 들어온다. 토마토는 못한다(사실 모름)


나도 이왕 말하는 감자인 김에 그런 존재감을 갖고 싶다. 어떤 팀원과도 케미 좋게 일하고 눈부신 성과는 아니더래도 꾸준한 성과를 내는.

은 개뿔. 그냥 말하는 감자 할래. 하지만 말하는 감자도 조금 쫀득할 수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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