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가야 하는 길
꽃이 피었음에도 지독한 서리가 도통 녹지 못하여 결국 봄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니 꽃이 봄을 말한다고는 믿지 않으련다. 낙화(落花)의 축제는 침묵의 증인들에게 둘러싸여 소란스러운가. 나는 꽃잎의 흑백을 알고 싶지 않았음에도 채 다가오지 못한 봄날의 여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금 떠나도 돌아옴을 안다. 그런 거짓말. 기약을 남기는 연유는 무엇인가.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까. 어찌되었든 나는 그것에 매달리니. 불어온 바람은 나무를 향했지만 곧게 솟아있는 그 줄기의 두꺼움은 고지식의 이름으로 흔들림을 조롱한다. 그럼에도 바스락거리며 죽어가는 낙엽이 떨어지니, 아프지 않다 할 수 없다.
아이야. 그 고요한 밤에 찢어진 비명을 내지르는 아이야. 날리는 것들을 보아라. 저것이 눈발이냐. 또는 저것이 꽃의 조각이냐. 아이야. 손발이 얼어붙어 살아있는지도 모를 아이야. 함께할 수 없는 분홍빛 노래와 눈의 발자국은 추위를 더 매섭게 자아내는 것들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데 뒤섞여 엉망으로 그린 그림을 보면 이상하게도 푸근해진다.
자주 갔었던 곳이라고 하여 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가움에 대한 향수가 나를 부른다. 그럼 나는 못 이기는 척 다시 겨울의 동네를 간다. 반갑구나 아이야. 어찌 잊을까. 찬 물을 뒤집어쓰며 내일을 기도했던 역사를. 그리하여 나는 백 번의 발걸음으로 고향을 찾아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