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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Oct 14. 2023

꿈꾸는 부모님과 꿈 없는 아들

고민하는 부모님과 고민 없는 아들



주일 저녁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셨다. 이 시간에 전화하시는 분이 아니다. 아마도 무슨 일이 있나 보다.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어머니의 고민이 많아 지신 것 같다. 그리고 그분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고 싶으셨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전에 부모님께서는 교회 인근에서 오랫동안 사셨다.  그리고 집 근처 노인복지관이 있어서 자주 이용하시며 큰 어려움 없이 지내셨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새벽에 교회를 가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큰 고비를 넘기셨다. 그때 자녀들이 부모님 혼자 계시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향에서 사는 자녀는 막내딸 밖에 없었고 아들들은 미국과 서울에 생활 터전이 있어서 부모님을 모시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딸은 흔쾌히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퇴원하신 어머니는 딸 집에 들어가는 것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하셨다.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할뿐더러 두 분 무두 옛날 분들이라 아들보다는 딸네 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많이 불편하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이후 쇠약해 지신 어머나와 아버지 두 분만 생활하신다는 것이 자식들 입장에서도 많은 걱정이 되어 계속 설득을 했다.  결국 두 분은 아들들의 설득에 못 이겨 집을 팔고 딸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부모님은 자녀가 3명이나 있고 바깥일도 하는 딸과 사위 보기가 늘 미안하고, 본인들도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두 분이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는 건강이 있으니 분가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대신 교회 인근으로 이사하지는 않고 딸이 살고 있는 인근에 있는 아파트를 구해서 두 분만이 사시는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셨다. 혹시나 급한 일이 있으면 딸과 사위가 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아파트였다.


어머니는 분가한 아파트에서 생활해 보니 만족감이 크셨다. 사위와 딸이 아무리 잘해 준다고 해도 신경을 많이 쓰시며 지내셨기에 자유로운 생활이 훨씬 편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2-3년 뒤 다시 인근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다. 처음 이사한 곳은 대단지 아파트이고 조용하고 공기도 좋은 곳이었지만 경사가 있었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워커를 밀고 다니시는 부모님이 시장을 가거나 인근 식당을 다니기에는 많이 불편하셨기 때문이다. 새롭게 이사한 곳은 한 동짜리 아파트지만 평지였고 시장 근처에 있어서 조금만 나가면 식당도 많고 작은 시장도 있어서 편리했다.


딸과 함께 지내다가 분가 후 두 번째 이사한 아파트에서 어머니는 또다시 이사를 하고 싶어 하셨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교회 인근 동네가 그리워지신 것이다. 연세가 많으셔서 교회 교우들 외에는 친하게 지내는 분들도 없기 때문에 힘들지만 택시를 불러서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시는데 이것도 많이 힘드시다는 것이다. 교회 근처 살면 워커를 끌고 천천히 걸어가면 되는데 택시를 타려니 먼 거리에 택시비도 택시비려니와 워커를 트렁크에 넣어다가 빼는 일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여기서는 혼자서 교회 다니기도 어렵겠다는 생각까지 하시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의 생각을 모두 듣고 나니 그분의 뜻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녀가 많다고 하나 어느 아들 하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여건에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물리적 거리도 멀리 있다. 자녀가 3명인 막내딸 집에서 2년간 생활하신 후로는 딸 집에서 사는 것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유일한 생활의 낙은 오랜 시간 함께 해 왔던 교우들과 교제하는 것이다. 부모님께서 일주일 내내 두 분만 계시다가 주일날 교회에 가서 여러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면 낯 빛이 달라지신다. 부모님이 가장 행복한 시간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교회 옆에서 살면서 새벽 기도도 다니고 이웃 사람들과 오며 가며 서로 인사하며 지냈던 시간들을 어머니는 무척이나 그리워하셨다.


이전보다 훨씬 편리하고 안전한 아파트에 사시게 되었지만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 안에만 계시며 찾아오는 사람 없이 반복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이 연세에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실까 생각하니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죄송스러웠다.


"어머니, 그럼 그 집 팔리면 교회 근처에 집 한 번 알아보세요.

  어머니 생각이 그러시면 이사 가셔야죠."


"안 그래도 이번에 집 보러 왔는데 맘에 든다 카드라.

 그런데 집 보러 온 사람도

 자기 집이 팔여야 한다며 당장은 어렵단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든다.  지금 아무리 고운 사람도, 힘이 센 사람도 나이가 들면 고운 피부에 주름이 가고 근육이 빠지고 기력이 쇠하여진다. 주위에 가깝게 지내던 분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결국은 혼자만 남게 된다. 자녀가 있다고 하나 각자 바쁜 일상에 쫓기고 각 가정의 식솔을 챙기는 것에도 버거워하니 나이 든 부모를 돌아볼 여유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


부모님께서는 많이 약해지시긴 했지만 젊은 날의 총기를 아직도 유지하고 계시고, 늘 자녀들 걱정, 손주들 걱정을 하시며 기도하신다. 주일날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두 분이 택시를 호출해서 타고 먼 거리의 교회를 다녀오실 만큼 건강하시다.  이렇게 정신이 맑고 건강하시니까 고민도 많고 하고 싶으신 것도 많으신 것이다.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직도 부모님은 꿈이 많다. 교회 근처로 가면 어려운 교우들을 돌아보고 싶다는 꿈,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싶다는 꿈, 교인들의 길흉사에 참석해서 위로하고 싶다는 꿈,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꿈 말이다.


지금도 부모님은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을 모아서 손주들을 위해 용돈을 주시기도 하고, 교우들의 길흉사마다 부조를 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목돈이 생기면 자신들을 위해 쓰시기보다 교회에 헌금하거나 선교단체에 기부하시기를 즐겨하신다. 전기세가 나온다며 더운 여름에도 선풍기조차 틀지 않으시는 두 분, 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으시고 전기매트로 지내시는 두 분을 찾아뵐 때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쓰시라고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평생을 절약하며 살아오셨기에 늘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괜찮다."였다.




나도 곧 은퇴를 하고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90의 연세에도 꿈을 꾸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사실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많은 자녀들 중에서 나를 특별대우 해 주셨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나를 우선해서 배려해 주셨다. 경쟁이 치열한 직장에서 조차 나는 상대적으로 평탄한 길을 걸어왔고 지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면서 다녔으며 이제 은퇴라는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다.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라고 주위 분들이 자주 묻는다. 그런데 나는 딱히 답할 것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 나의 상황에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이제 더 이상 뭘 또 새롭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못할 줄 알았던 결혼도 했고, 두 자녀도 훌륭히 자라줬고, 주위에서 자기 앞가림조차 힘들 줄 알았던 내가 일반 직장에서 정년퇴직까지 일하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해 냈으니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이상 무엇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95세인 아버지와 88세인 어머니의 삶을 보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 도전하시는 모습에서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3년 전부터 인터넷에 입문하셨다. 안경을 쓰시고도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를 덧대야 글씨를 볼 수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배우고자 하시는 열정이 대단하시다.  


자녀들은 아버지 집에 인터넷과 IP  TV를 설치해 드렸고, 태블릿을 구입해 드렸다.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며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를 모두 뽑아 버리시고 전화를 오래 하면 전화비 많이 나온다며 역정내시는 아버지셨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 항상 어두웠다. 앞을 구분할 수만 있으면 불을 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자녀들이 올 때만 보일러를 켜신다.


이런 아버지가 WIFI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나 상시 켜 둬야 하는 모뎀과 셋톱박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인터넷을 설치한 처음에는 자주 전화가 왔다. 인터넷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평소의 습관대로 모뎀과 셋톱박스 연결한 전원을 꺼 버렸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항상 켜 두셔야 한다고 말씀드린 후부터는 더 이상 전원을 끄지 않고 그대로 두신다.


이제 아버지는 종이 신문 대신 태블릿으로 신문을 보신다. 그리고 유튜브로 좋아하는 목사님 설교도 듣고, 섬기는 교회의 유튜브를 통해 예배를 드리시기도 한다. 멀리 떨어진 자녀들과는 메신저 패이스톡으로 얼굴을 마주 보며 화상통화를 즐겨하신다. 뿐만 아니라 교회 가실 때는 집에서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시기도 한다. 물론 내가 자세히 설명드리고 쉽게 하실 수 있도록 환경을 설정해 드리기도 했지만 이 연세에 신문물에 입문하고 사용하신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옆에서 보면서 대단한 분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늘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다.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목돈 드리는 것을 고민할 정도다. 목돈이 생기면 항상 주위를 먼저 생각하신다. 그리고 꼭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내놓으신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다.  부모님의 자녀들이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사회에 기여하며 사는 것은 이러한 어머니의 이웃사랑과 믿음의 유산 덕분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어머니는 없는 중에도 나눔을 중단하신 적이 없었다.




은퇴를 몇 개월 남겨 놓지 않은 나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보면 오래 살 것 같지는 않으나 생명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늘 '죽음'을 맞이할 준비는 하며 살아야 하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의 은퇴 날짜는 내가 정할 수 있고 알 수 있지만 삶의 끝은 내가 알 수도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 삶이 허락되는 동안 우리는 '일'을 하며 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살아 있다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은퇴를 하게 되면 많은 시간이 오롯이 스스로 결정하며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돈은 공평하지 않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나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지금은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생각'이란 것을 시작하려 한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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