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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Oct 09. 2023

친절보다 무관심이 낫다

친절이 과하면 차별이 된다.


아내와 같이 시장을 지나오면서 지인에게 추석 선물을 하기 위해 동네 과일 가게를 들렀다.  가게 앞에 진열된 포도를 보더니 신선하고 상한 것이 없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계산하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바깥에서 아내에게 포도를 설명해 주시던 가게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몸이 아파서 저쪽이 고생 많이 했겠네." 


나와 전혀 친분이 없었고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 본 분이 아닌데 갑자기 내게 다가와 말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이 분이 어떤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인지 그 의미조차 처음에는 몰랐다. 나의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머니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 동생네도 거기처럼 장애가 있었지. 

 그런데 어릴 때 수술해서 지금의 거의 표가 안나. 

 목 뒤에만 조금 굽어서 목이 짧긴 해도 말이야."


나는 그때서야 이 분이 하려는 이야기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분은 내가 장애가 있으니 함께 사는 아내가 매우 고생을 했겠다는 의도로 첫 이야기를 건넨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남다른 관심과 반응을 보인 것은 이 분의 여동생도 어릴 때 나와 같은 척추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OO야, "


갑자기 이 분은 가게 안쪽에서 일하던 동생을 불렀다. 


"왜요?"


"아니야. 그냥 일 봐."


"봐봐. 재야. 이렇게 말 안 하면 모르겠지? 

 목 뒤가 조금 나왔고 목이 짧잖아."


아주머니는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어보는 동생에게 다시 계속 일하라고 하고는 나에게 동생이 많이 좋아진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내가 가게 안쪽에서 계산을 마치고 다시 내게로 나왔다. 내 곁에 있던 아주머니는 다시 아내에게 조금 전에 내게 했던 여동생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아.. 네.."라고 답하며 구입한 포도 상자를 들고 그 가게를 나왔다.


나는 가게 아주머니의 행동에 마음이 불편했다. 처음 보는 나에게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이 분이 나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선한 의도였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 말이었을까? 나는 앞으로 그 가게 옆을 지날 때는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모든 사람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 배려는 행위자가 아닌 상대방이 배려를 받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는 나의 선한 의도의 행위가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배려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특히 상대방의 약점을 언급하는 것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매우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오늘 이 가게 아주머니의 나에 대한 언급은 내가 듣기에 부적절했다. 사람들은 특별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연민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 질병을 낫게 하는 자신만의 경험담을 알려주려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분은 어떻게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이 모든 것이 좋은 의도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당사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자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다면 일방적으로 이러한 말을 건네는 것은 무례함으로 느끼기 쉽다.


그렇다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신의 눈에 특별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특별하게 대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게 주인이라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똑같이 친절하게 응대하고 판매하면 된다. 장애인이라고 극진하게 환대할 필요도 없고 특별한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고객이 원하면 그 부탁을 친절하게 들어주면 된다. 불리한 차별만 차별이 아니다. 과잉 관심과 과잉 친절도 또 다른 모습의 차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사자가 도움을 요청할 때 요청한 그 부분만 도와주면 된다.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묻지도 않고 먼저 돕거나,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것 또한 돕는 이의 순수한 의도와 상관없이 당사자를 당황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장애인들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을 주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는 것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가게에 휠체어 탄 장애인이 왔을 때 턱이 높아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점원이 휠체어를 들어서 옮겨주는 것은 착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경사로를 만들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장을 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착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명인이 사적인 일로 외출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위장(?)을 하고 나간다. 지나가는 행인이 자신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행인의 의도는 순수하고 선한 의도였지만 그들의 관심과 친절은 그 유명인에게는 사생활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무관심이 상대를 편하게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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